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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지킴이 May 07. 2023

나는 코아였다. 알콜 중독자 자녀의 회고록

14화. 2장 소녀가장.  정동 유원지

  정동 유원지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자주 큰 집에 가서도 행패를 부렸다. 그래서 사촌들 역시 삼촌을 치가 떨리게 싫어했다. 그런데 그 싫은 삼촌 집 살림을 도맡아서 해야만 했으니 아무리 사촌 동생들이 불쌍했어도 언니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언니는 아버지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어떨 때는 화가 나서 아버지에게 대들었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대드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는 그런 언니가 용감해 보였다. 대들다가 언니는 아버지에게 욕을 먹기도 하고 맞기도 했다. 아버지의 행패가 심해지던 어느 날 급기야 언니는 집을 나가 버렸다. 

  내가 중 2였던 여름 방학이었다. 언니도 어머니처럼 한 달이 지나서야 다시 돌아왔다. 언니가 어디 갔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다. 언니가 다시 돌아올지, 언제 돌아올지 그것만이 궁금했고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건지 무서웠다. 아버지와 우리 남매들만이 오롯이 남겨졌다. 내 생애 처음 맞이하는 그 상황이 너무나 막막하고 암담했다. 언니가 집을 비운 한 달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가장 끔찍했던 시간이었다. 밥은 어떻게 해 먹었는지, 빨래는 누가 했는지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두 가지 사건이 선명히 내 기억 속에 박혀 있다. 

  매우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정동 유원지로 놀러 가자고 했다. 어렸을 때 온 가족이 함께 놀러 간 기억은 지금은 에버랜드가 된 용인 자연농원을 갔던 것이 전부였다. 행복하고 즐거웠던 느낌만 남아 있는 걸 보니 그날에는 아버지가 술을 마시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느닷없이 정동 유원지에 가자고 하는 아버지는 이미 술에 조금 취한 상태였다. 그 상태로 놀러 간다면 그곳에서 술을 더 마시고 만취가 될 게 뻔했다. 당연히 가기 싫었지만 안 가겠다고 할 수 없었다. 

  망원동에서 정동까지 가는 길은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이상 걸렸다. 이미 우울한 날이 될 것을 예감한 나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뗐다. 동생들이 어떤 기분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버스 안에서 아버지가 혹시라도 실수하면 어쩌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놀러 가는데 먹을 것도, 갈아입을 옷도 아무것도 챙기지 않은 채였다. 물놀이를 하는 곳이라는데 이런 기분으로 무슨 물놀이람. 가는 내내 불안하고 우울했다. 

  정동에 도착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여서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다. 가족 단위로, 친구끼리 다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즐거워 보였다. 산 아래 암벽 같은 것이 있고 물이 많은 곳에서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아버지와 동생들은 웃통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놀이하는 동안만큼은 동생들도 아무 생각 없이 신나 보였다. 그러나 나는 물에 발만 담근 채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불안해하며 눈으로 아버지와 동생들을 쫓고 있었다.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동생들이 안쓰럽기만 했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자꾸만 눈물이 나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는 그곳에서 술병을 사들었다. 그리고 혼자 술을 마셨다. 제발 한 병만 마시기를 빌고 또 빌었다. 아버지가 만취가 된다면 여기서 어떻게 집까지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정신이 아득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졌다. 누구라도 좋으니 아는 어른이 한 명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아빠, 술 많이 마시지 마세요. 집에 가야 하잖아요.” 나는 용기를 내서 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다. “알았다. 많이 안 마신다.” 이미 얼굴이 붉어진 아버지는 내 마음을 알았던 것일까. 더 이상 술을 마시지는 않았고 난동을 부리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물놀이하는 동생들 사진을 찍어주었다. 나는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앨범을 꺼내 보면 그날 동생들의 사진이 있다. 물속에 나란히 서서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어색하게 사진에 찍힌 동생들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려왔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그날의 기억은 가장 슬펐던 가족 여행으로 내 뇌리에 새겨져 있다. 이후 우리 가족은 단 한 번도 함께 여행을 간 적이 없다.      


두 번째 입원

     

  언니가 없는 동안 아버지의 폭음이 갈수록 심해졌다.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이 지옥 같았다. 어릴 때 어머니가 계셔서, 그 후에는 언니가 있어서 얼마나 든든했었는지 실감이 났다. 나는 이 세상의 온갖 불행을 다 짊어진 기분이었다. 이 시간이 어떻게 끝날지 가늠할 수 없었다. 나도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내가 집에 머물러 있었던 건 갈 데가 없어서가 아니라 동생들 때문이었다. 나 혼자야 어디든 가서 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동생들까지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보육원에라도 가고 싶었다. 그곳이라면 아버지에게서 벗어나 아무 걱정 없이 공부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부터 밖에 나갔던 아버지가 술에 잔뜩 취해 집에 돌아왔다. 주인 가족도 집을 비웠고 동생들도 놀러 나가 나밖에 집에 없었다. 아버지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언니와 내가 지내는 방에 들어가더니 마구 언니 욕을 하면서 언니 옷을 옷장에서 꺼냈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 알지 못한 채 겁에 질려 아버지가 하는 행동을 보고만 있었다. 아버지는 언니 옷을 다 꺼낸 후 베란다 창문을 통해 하나씩 옷을 밖으로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다 없애 버릴 거야.” 아마 돌아오지 않는 언니에게 부아가 난 모양이었다. 옷을 다 내던진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더니 쌓여있는 옷에 불을 붙였다. 연립주택 마당은 텅 비어있었다. 아무도 내다보지 않았다. 옷가지는 순식간에 재로 변해버렸다. 

  아버지의 그런 기행을 처음 본 나는 경악했다. 이제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옷을 타 태운 아버지는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대면서 부엌으로 가더니 과도를 손에 집어 들었다. 머리가 쭈뼛해졌다. 아아, 이게 무슨 일일까. 아버지가 칼을 잡는 모습을 어렸을 때부터 여러 번 보아왔고 그때마다 별일 없이 끝났지만 나는 그 광경에 도저히 적응할 수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큰일이 터지겠구나. 아버지가 누군가를 해치고 경찰에 잡히고 감옥에 가는 모습이 저절로 그려졌다. “따라와라.” 아버지는 무서운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나는 어디 가느냐고 묻지도 못하고 자석에 끌린 듯이 아버지를 따라갔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 나중에 무슨 일을 당할지 두려웠다.

  아버지는 과도를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고 차가 다니는 큰길로 향했다. 그리고 지나가는 택시를 멈춰 세웠다. “타라.” 아버지가 택시 앞좌석 문을 열었을 때 주머니에 있던 과도가 땅에 떨어졌다. 아버지는 다시 과도를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택시 운전사가 그 모습을 보았다. 그는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지만 승차를 거부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오산!”이라고 말했기 때문일까. 서울에서 오산까지 택시를 타고 가다니 그런 횡재를 놓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어디에 가려고 하는 것인지 알아챘다. 큰 집이 오산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뒷좌석에 앉았다. 

  택시를 타고 그렇게 먼 길을 간 건 그때가 유일하다. 기사는 가끔 아버지를 흘낏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술 냄새를 풍기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지만 가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큰 집에 가서 아버지가 무슨 행패를 부릴까. 저 칼로 누구를 어쩌려는 것일까. 나는 큰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공포에 몸이 마비된 듯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 끔찍한 예감에 시달렸다. 

  큰 집 앞에 택시가 멈춰서자 아버지는 엄청난 요금을 지불하고 부리나케 차에서 내려 빠른 걸음으로 큰 집 대문으로 들어섰다. 내가 따라오는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나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큰 집 문 옆에 서 있었다. 안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아버지가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다 나와! 오늘 다 죽여버린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몸을 돌려 쏜살같이 뛰기 시작했다. 도저히 그 자리에 머물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도망친 것이다. 한참을 뛰다 보니 동네에서 벗어나 논이 나타났다. 여기까지는 아버지가 따라오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엉엉 울면서 논길을 배회했다. 무슨 일이 나면 어떡하지. 나는 혹시라도 경찰차가 나타나지는 않는지 동네 쪽을 바라보면서 제발 아무 일이 없기를 빌었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얼마나 그곳에 있었는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석양이 물들고 저만치 보이는 집들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지금 큰 집에서 벌어지고 있을 일과 전혀 조화되지 않는 너무나 낯선 모습이었다. 조금 더 있으면 날이 완전히 저물 것이란 생각에 나는 천천히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내가 보게 될 광경이 과연 무엇일지 무섭고 섬뜩했지만 확인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큰 집에 다가갔는데 아주 조용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도 아무 기척이 나지 않았다. 잠시 마당에 서서 귀를 기울여보고 있는데 방문이 열리며 큰어머니가 나왔다.

“에구, 선화야, 어디 갔었니?”

“아빠는요?”

“큰아버지가 병원에 입원시키셨다. 아까 같이 가셨어. 이게 무슨 일이냐, 대체?”

큰어머니가 언제나 이런 일이 끝날까 하는 표정을 짓자 이마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비로소 숨을 크게 쉴 수 있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아버지는 병원으로 갔다.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이었다. 온몸에 긴장이 풀리며 깊은 안도감이 몰려왔다. 큰어머니가 차려주는 밥도 맛있게 먹었다. 삼 년 만에 다시 입원하게 된 아버지. 이제 몇 달은 마음 편히 지낼 수 있겠구나. 내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아버지는 두 번째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삼 년이라는 기간은 공식처럼 그 후에도 매번 딱 맞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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