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압 경고등을 마주하다
‘어제 자동차 점검받았는데, 계기판에 공기압 경고가 뜨더라. 수리해 주시는 분이 손 보긴 했는데, 혹시나 또 뜨면 정비소에 가라고 했어. 내일 운전하면 확인해 봐.’
내일 나 차 쓸게.라고 말하자 지난밤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냥 대충, 응, 하고 대답했다. 그런데 아침에 시동을 켜니 계기판에 바로 경고등이 떴다.
느낌표 모양의 노란 경고등. 인터넷에서나 봤던 그것을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해당 경고등은 계기판 오른쪽 가장자리에 있었는데, 그곳은 내 시선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어제 뜬 걸까? 아니면 기존에도 떴는데 보이지 않았던 걸까? 만약 후자였다면 큰일이었다. 나는 원래 차에 타면 출발 전에 계기판을 한번 살피는 좋은 습관이 있는데(어디 잘못된 곳은 없는지, 사이드는 내렸는지) 이제 운전이 좀 익숙해졌다고 그런 좋은 버릇을 잊은 게 될 테니까! 정말 그런 거라면 나, 너무 건방지지 않나? 아직도 주차장에서 차를 빼면서도 다른 사람의 차를 긁을까 긴장하는 주제에?
운전하는 내내 나는 계기판이 신경 쓰였다. 그 덕분에 운전이 더욱 잘 안 되었고…. 휘청이는 차의 운전대를 붙잡으며 나는 정비소를 들를 걸 그랬나? 하고 후회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이른 시간이라 정비소도 문을 열지 않은 시간. 그래. 빨간 경고등도 아니고! 노란색이니까! 게다가 위치도 잘 안 보이는 곳이잖아? 그렇게 위험한 표시는 아닐 거야. 나는 애써 자신을 설득시켰다. 그런데 운전을 하면 할수록 내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오른쪽 앞바퀴 쪽으로 차가 기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닐까? 나는 최대한 차에 자극이 가지 않도록 천천히 운전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장애물에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불안이 솟구쳤다. 내가 잘못된 판단을 한 건 아닌가, 그 생각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다행히 목적지에는 잘 도착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산이었다. 무릎이 좋지 않아서 등산은 피하는 편인데, 최근 무릎이 좀 좋아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지금의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서는 몸을 혹사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등산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렸고, 지루했다. 내 모든 목적은 달성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차에 대한 것은 잊을 수 있었다. 택시를 타고 들머리로 돌아왔을 때가 되어서야 나는 잊고 있던 계기판의 경고등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내일은 엄마가 탈 테니까, 수리해야겠지?
집에 들어가기 전에 수리를 맡겨야겠다. 그렇지 않아도 예상보다 귀가 시간이 늦어졌는데 정비소까지 들리면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더 늦어질 것 같았다. 게다가 타이어 구멍은 어디서 수리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정비소를 가야 하나? 아니면 타이어 전문점? 늦을 거라는 말과 함께 혹시나 엄마가 알아본/알고 있는 내용이 있을까 싶어 엄마에게 전화했다.
“계기판에 불이 들어와서 정비소에 들르려고 하는데, 혹시 아는 정비소 있어?”
“불 들어와?”
“응. 아침부터 들어왔는데?”
“뭐? 계기판에 불 들어오는데 거기까지 간 거야?”
“어. 아침이라서 정비소 문 안 열었잖아.”
내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엄마는 몹시 당황했다. 엄마는 주변에 정비소를 들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나는 등산을 위해 완전히 낯선 곳에 와 있었다. 처음 간 정비소에서 유튜브에서나 보던 ‘지금 엔진오일이 문제가 아니에요!’를 당한 이후, 정비소는 나로서는 달갑지 않은 선택지였다. 낯선 장소에서 불편한 곳을 찾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러자 엄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천천히 운전해서 오라고 하고 전화를 종료했다.
“.....”
전화는 종료했지만, 마음이 편해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무엇보다, 정비소는 정말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현실적인 결정을 해결하지 못한 나는 결국 아는 직원분에게 전화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차를 좋아하고 잘 아는 사람이 그였다. 그에게 전화를 걸다 문득, 결혼한 여자들이 교통사고가 나면 남편한테 전화한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금까지는 왜 배우자에게 전화하는 걸까? 생각했는데, 내가 경험하니까 알 것 같았다. 내가 너무 모르니까, 나보다 이 영역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알 것 같은 사람 중에, 가장 편하고 가까운 사람이 떠오르는 것일 뿐…. 엉뚱하게 세상에 대한 이해도가 넓어진 기분이었다. 다행히 전화는 금방 연결되었다.
“계기판에 공기압 경고등 들어왔는데 운전해도 돼요?”
“안돼! 정비소 가!”
“정비소면 어디요? 전에 갔던 블루핸즈 가면 돼요?”
“어. 근데 그냥 가지 말고. 사무실 뒤에 농기계방 가서 말하고 공기 넣고 가.”
“..... 저 사무실 아닌데요?”
“멀리 나갔어? 아는 곳 아니고?”
“네.”
“그럼 긴급출동 서비스를 불러.”
“...... 아?”
“자동차 보험 가입한 곳에 전화해. 그리고 공기압 경고등 뜬다고 말하면 와서 도와줄 거야.”
전화를 끊고 나는 잠시 멍하게 있었다. 자동차 보험이……. 이럴 때도 쓰는 거구나…? 나는 언젠가 오빠에게 물어서 저장해 두었던 자동차 보험 회사를 휴대전화에서 찾았다. 보험회사 이름으로 저장해 두면 당황했을 때 못 찾을 것 같아서 그냥 ‘자동차 보험’이라고 저장해 둔 그 번호. 그걸 이렇게 처음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긴급출동 신청은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다. 내 위치는 개인정보에 동의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파악되었고, 상담사는 사무적인 목소리로 내게 공기압 충전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며, 타이어에 구멍이 있을 시 1개까지는 무료로 처지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럼 구멍이 1개를 초과하면 얼마를 내야 하죠?”
“그건 출동 나오신 기사님에게 여쭤봐야 할 것 같아요.”
“아, 그렇군요.”
긴급출동은 10분 안에 도착할 거라는 안내와 함께 전화는 종료되었다. 기사님을 기다리며, 트렁크에 넣어둔 비상용 에너지바를 우걱우걱 씹으며 허기를 때우던 나는, 엄마에게 다시 전화했다. 아까 통화할 때 엄마의 목소리가 너무 걱정스럽게 들렸기 때문이다. 내가 긴급출동을 요청했다는 말에 엄마는 너무 잘했다고, 자기도 아까는 당황해서 생각을 못 했다고 이야기했다.
나만 몰랐네, 긴급출동….
나는 긴급출동이라는 서비스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냥 자동차 보험은 차 사고 났을 때나 쓰는 건 줄 알았다. 그래서 절대 부르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서비스도 제공할 줄이야…. 세상에 몰라서 못 쓰는 서비스가 엄청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자동차 보험에서도 그런 영역이 있을 줄 몰랐다. 내가 얼마나 차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지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정말 앞으로 갈 줄만 아는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긴급출동 차가 도착했다. 정말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낡은 차의 등장에 처음에는 무척 당황했지만, 문득 저 정도 차를 수리해서 다닐 정도면 보통 고수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기사님은 내게 어느 바퀴에서 바람이 세냐고 물었다. 아니, 보통의 운전자는 그런 것도 아는 거야? 나만 모르는 건가? 나는 어리바리하게 모르겠다고 했고, 기사님은 알겠다고 했다. 나는 어제 엄마가 한 말을 제대로 들을 걸 후회하며, 대충 기억을 더듬어 오른쪽 앞바퀴인 것 같다고 급히 대답했다. 하지만 정작 바람이 세는 곳은 오른쪽 뒷바퀴였다(나중에 물어보니 엄마는 오른쪽 뒷바퀴라고 말했다고 했다. 내가 제대로 안 들은 거였다.).
기사님은 지렛대 같은 것으로 차를 들어 올리더니, 차에서 타이어를 분리했다. 그리고는 이리저리 살피더니, 타이어에 박혀 있는 못을 찾아내어 보여주었다. 아니, 저 못이 어디서 박힌 거야? 내가 위치를 고민하던 사이, 기사님은 능숙하게 못을 제거했다. 그와 동시에 피시시식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저걸 어떻게 때우는 거지? 고민하는데, 기사님은 송곳 같은 것으로 구멍을 더 크게 만들었다. 엥? 내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기사님은 두꺼운 끈 같은 것을 틈에 집어넣어서 구멍을 막아버렸다.
시, 신기해!!
타이어에 구멍을 때우는 모습은 태어나서 내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내가 생각한 구멍을 때우는 이미지는 납땜의 느낌이었다. 타이어 펑크를 해결하는 이미지는 찢어진 것을 꿰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달랐다. 구멍을 때우기 위해서 더 큰 구멍을 만들다니…. 피부과에서 하는 치료는 해당 부위에 더 큰 상처를 내어 그 상처를 피부가 재생하는 원리를 이용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상처를 더 큰 상처로 치유한다니…. 언젠가 들었던 영화 속 음악이 떠올랐다. 물에 빠질 거면 더 깊은 곳에 빠져야 한다고. 바닥까지 떨어져야 그래야 올라올 수 있다고 말하던 그 노래. 지금의 괴로움을 이겨 내기 위해서 나는 더 큰 괴로움을 감수해야 할까? 내가 지금 성장하지 못하고 힘들기만 한 것은 내가 덜 상처 입었기 때문일까?
다행히 더 이상의 펑크는 없었다. 바퀴를 원래의 자리에 달고, 공기까지 충전한 기사님은 서비스가 마무리되었음을 알렸다. 감사합니다. 인사와 함께 차에 올랐다. 후끈한 열기가 몰려들었다. 시동을 켜자 여전히 노란 느낌표 표시가 나를 반겼다. 놀란 내가 차에서 내렸다.
“아직 안 사라졌는데요?”
“한 500m 운전해서 가면 사라질 거예요.”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기사님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나 출발하고 500미터 이상을 운전한 후에도 경고등 표시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잘 된 게 맞을까? 계속 사라지지 않으면 어쩌지? 다시 서비스를 불러야 하나? 아니면 출발했으니까 그냥 처음 생각처럼 집 근처로 가서 정식으로 정비소를 가야 하나?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경고등이 사라졌다.
산을 오르다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남았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내려오는 사람들은 ‘10분만 더 가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10분이 지나도 정상은 여전히 멀다. 계기판 경고등이 사라지는 시간은 자동차 전문가인 그에게 500m지만 나에게는 그의 몇 배는 되는 거리였다.
이것은 당사자와 당사자가 아닌 사람의 차이가 아닐까? 과거형과 현재진행형의 차이 같기도 하고. 끝난 사람들에게 그것은 과거의 것. 지나간 일은 시간으로 정제되어 미화된다. 죽을 것 같던 일도 그럴 수 있었던 일이 된다. 하지만 그것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에겐…. 고통과 의심으로 점철된 시간. 하지만 현재는 얼굴 과거가 되어버리니까….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현재가 과거가 될 때까지 버티는 힘일까? 계기판의 경고등이 결국은 사라졌듯이, 나는 그저 믿고 견뎌야 할까?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엄마는 간도 크다며 계기판에 불 들어왔는데 그대로 운전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아침에 불이 들어왔으면 정비소 문 열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갔어야지! 다음부터는 계기판에 불 들어오면 무조건 운전 중지야! 라며 맞는 말을 퍼부었다. 나는 그러겠다고 약속하며, 긴급출동서비스에 대해 알아보았다. 음. 별게 다 있군.
어느 순간, 운전을 시작한 지, 300일이 넘었다. 그동안 내 누적 운전은 7천 킬로를 조금 넘긴 상태. 1년 안에 1만을 타야지 했던 목표는 이제 달성 불가능한 영역이 되어버렸다. 간신히 주 1회 운전하는 거로는 역시나 힘든 목표였던 것 같다.
무언가를 시작하고 이렇게 매일매일 날짜를 세어본 것은 처음이다. 곰이 100일 만에 사람이 되었으니, 100일이면 그래도 무언가가 될 줄 알았다. 그러나..../말못잇 다른 사람들의 초보운전 후기는 보통 6개월, 길게는 1년 정도가 지나면 슬그머니 사라진다. 운전이 익숙해져서 쓸 사건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어째서……./말못잇222 물론, 완전히 처음과 똑같은 건 아니다. 이제는 차에 타서 시동을 걸 때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지 않다. 블로그에서 초보운전 후기를 찾아보는 일이나 유튜브에서 초보운전 꿀팁 영상을 찾아보는 일도 거의 없다. 아무도 없는 국도를 달릴 때면 ‘그래, 운전을 이렇게 안 하는데 이 정도 하면 잘하는 거지!’ 하며 자신감이 드는 날도 있다.
문득 운전 초반 나에게 운전을 가르치던 오빠가 ‘너는 2년은 타야 초보운전 때겠다’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오빠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골목길은 어렵고, 저 길이 내가 갈 수 있는 길인지 못 가는 길인지 알 수 없고, 차를 뺄 때마다 옆에 차를 긁어먹지 않을지 걱정된다. 차도 많고 도로도 많은 도심은 여전히 들어가기가 겁나다 못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여전히 심장이 쿵쾅거린다. 여전히 다른 차들의 눈치가 보인다. 차를 뺄 때 각도를 잘못 잡아서 차의 엉덩이가 데일 것 같아서 심장이 타들어 가는 날이나, 방지턱을 제대로 보지 못해 차 천장에 머리를 찧는 날이면 ‘나 따위가 운전해도 괜찮은 걸까?’ 하는 회의감에 휩싸인다. 하지만 오빠는 그 말만 한 것은 아니다. 오빠는 이 말도 했다.
운전은 재능이 아니라 기능이라고. 많이 타면 느는 거라고. 나는 그러니까 절대적인 운전량이 부족한 거다. 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고…. 또르르르.
인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100일을 넘기고, 보통 사람이 되고자 하는 기도로 6개월을 넘기다 보니 어느새 329일이 되었다. 300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러니까 딱 이 속도로 (어쩌면 그것보다 빠르게) 앞으로의 300일도 금방 지나가겠지. 그리고 그때쯤 되면 운전이 조금은 능숙해지겠지. 차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되겠지. 그러니까 앞으로도 안전운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