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마들렌의 부모님들

프랑스 귀족집안 출신 마들렌의 아버지와 마들렌을 키워주신 어머니 실비아

by 방동원

1회. 마들렌의 부모님

마들렌은 프랑스에서 자랐지만, 그녀의 어린 시절은 남미의 칠레에서 시작되었다. 그녀가 태어난 곳은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였다. 아버지 앙투안 드벨몽은 파리의 명문 대학을 졸업한 우수한 인재로, 키도 크고 잘생겼으며 성격도 온순하고 성품도 단정한, 장래가 유망한 프랑스의 젊은이였다. 그는 같은 대학을 나온 재원이었던 실비 마르탱이라는 여학생과 사랑에 빠졌고, 졸업하자마자 유명한 다국적 기업에 취업하자 곧 결혼하게 되었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오랫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아이를 간절히 원하던 두 사람에게 자녀가 없다는 사실은 감출 수 없는 아픔이자 부족함이었다. 특히 실비에게는 더 큰 고통이었다. 아이가 생기지 않자 부부는 병원을 찾아가 상담과 검진을 받았고, 결국 실비의 몸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녀는 커다란 충격을 받아 한동안 우울증을 앓았지만, 남편 앙투안은 한 번도 내색하지 않고 변함없이 아내를 사랑했다. 그는 다른 여자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실비는 그런 남편에게 더욱 고마움을 느꼈지만, 사랑하는 이에게 자녀를 안겨주지 못하는 마음의 부담은 날로 커져갔다. 그러던 중 앙투안은 회사의 방침에 따라 중견 간부로서 해외 근무를 하게 되었다. 실비는 외국 생활을 두려워하여 혼자 남기로 하고, 앙투안은 혼자 몸으로 칠레 산티아고 지사로 3년간 파견되어 근무하게 되었다.

현지에 도착하여 근무를 시작하던 첫 해, 그는 지사 회계부서에서 일하던 젊고 똑똑한 칠레 여성과 사랑에 빠졌고,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바로 마들렌이었다.

둘은 처음에는 연인처럼 만났으나 나중에는 실제 부부처럼 아이를 같이 키우며 한집에서 살았으며 마들렌의 부모들마저 그들의 관계를 허락해주고 있었다. 그들 부부는 비록 나이차이는 있었지만 정말 행복한 가족으로서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본국인 프랑스에는 이미 결혼한 아내, 실비아가 있었고, 비록 아이는 없었지만. 드디어 마들렌이 세 살이 살이 되던 해, 피에르는 파견 임기를 마치고 파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프랑스에는 이미 결혼한 아내, 실비가 있었고, 비록 자녀는 없었지만 이중생활은 오래갈 수 없었다. 마들렌이 세 살이 되던 해, 앙투안은 파견 임기를 마치고 파리로 돌아갔다.

프랑스로 돌아온 앙투안은 처음엔 어쩔 수 없이 실비에게 사실을 숨기고 직장생활을 이어갔지만, 결국 더는 견딜 수 없어 모든 것을 고백했다. 칠레에서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는 지금도 그곳에서 자라고 있으며, 이제는 아이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 충격을 받은 실비는 처음엔 말을 잃었지만,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차라리 그 아이를 데려오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한 그녀는 남편을 향한 사랑과 어린 소녀에 대한 연민으로 마음을 열게 되었다.

결국 앙투안은 다시 칠레로 향했고, 마들렌과 그녀의 어머니에게 프랑스로 함께 가자고 설득했다. 루시아는 처음엔 망설였지만, 앙투안의 진심과 실비의 의지를 전해 듣고는 마들렌의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렸다. 그녀는 마들렌을 프랑스로 보내기로 하고, 자신은 칠레에 남기로 했다. 몇 년 뒤 그녀는 현지에서 한 칠레 남성과 재혼했다.

이렇게 해서 마들렌은 여섯 살이 되던 해, 마침내 자신의 아버지가 살고 있는 나라 프랑스로 건너가게 되었다. 그녀는 공식적으로 실비에게 입양되었고, 두 사람은 진짜 모녀처럼 살았다. 실비는 마들렌에게 차별 없이 따뜻한 사랑을 주었고, 앙투안 역시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안은 채로 마들렌을 정성껏 키워나갔다.

마들렌에게 프랑스는 낯선 세계였지만, 동시에 오래도록 그리워하던 세계이기도 했다. 그녀는 곧 프랑스어를 배우고, 파리의 학교에 잘 적응해갔다. 마들렌은 잘생긴 아버지와 아름다운 어머니를 닮아 어릴 때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빼어난 미모를 지녔고, 공부도 잘하며 성품 또한 훌륭해, 말하자면 최고의 아가씨로 성장하고 있었다.

칠레 시절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졌지만, 무의식중에 때때로 산티아고의 햇살과 어머니의 목소리가 떠오르곤 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두 개의 나라가 존재했다. 하나는 떠나온 칠레, 그리고 또 하나는 앞으로 살아갈 프랑스였다.

그렇게 마들렌은 두 문화 사이에서 자라며, 언제나 조금은 복잡한 마음을 품은 채 소녀 시절을 지나게 되었다.

마들렌은 프랑스의 평범한 공립학교에서 시작해, 학업 성적과 언어 감각, 그리고 타고난 감수성 덕분에 파리의 명문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녀는 문학과 예술에 관심이 많았고, 어린 시절부터 읽은 다양한 책들과 유럽, 남미를 잇는 독특한 배경 덕분에 사고의 폭이 넓었다.

고등학교 시절, 그녀는 영어와 스페인어, 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력을 발휘했고, 교환학생으로 짧은 기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다녀온 경험도 있었다. 이 경험은 그녀가 글로벌한 감각을 키우는 데 큰 영향을 미쳤고, 이후 국제관계와 경영을 접목한 전공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마들렌은 결국 파리 정치대학(Sciences Po)에서 국제경영학을 전공하며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졸업 직전에는 글로벌 명품 브랜드 그룹의 인턴십 프로그램에 합격하여 실제 현장에서 실무를 경험할 기회를 얻었다. 그녀는 인턴십 기간 동안 책임감 있고 꼼꼼한 업무 태도, 그리고 유연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인정받아 졸업과 동시에 정식 입사를 제안 받았다.

그녀가 배정된 부서는 아시아·남미 시장 전략을 담당하는 국제 마케팅팀이었다. 마들렌의 다문화적 배경과 언어 능력은 회사 내부에서도 큰 장점으로 작용했고, 특히 남미 시장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탁월한 기량을 발휘하였다. 그녀는 본사에 있는 동안에도 각국의 동료들과 원활하게 협업하며, 상사들로부터 빠르게 신뢰를 얻었다.

처음 1~2년은 파리 본사에서의 업무로 바쁜 나날이었지만, 그녀는 현장 경험의 중요성을 느끼고 자원하여 브라질 상파울루, 홍콩, 도쿄 등지의 해외 지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특히 도쿄에서는 일본 시장에 맞는 맞춤형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 프로젝트의 핵심 멤버로 활동했고, 그 결과 해당 브랜드의 일본 내 인지도 상승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성과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커리어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30대 초반, 마들렌은 그룹 산하의 특정 브랜드에서 브랜드 매니저로 임명되었고,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게 되었다. 늘 차분하고 성실한 태도로 업무에 임하면서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따뜻하고 유연하게 대하는 그녀의 성격은 조직 안팎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마들렌은 명문대 출신이라는 배경과 더불어, 다양한 문화 속에서 자라난 이질적인 정체성을 단점이 아닌 자신만의 강점으로 승화시켰다. 때로는 칠레에서 자라던 유년기의 기억들이 회의 도중 문득 떠오르기도 했지만, 그녀는 그 모든 시간들을 현재 자신의 일에 녹여내며 살아가고 있었다.

세계적인 명품 그룹 안에서도 그녀는 점점 눈에 띄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상사들은 그녀를 다음 세대 리더로 평가하며, 더 큰 프로젝트와 책임을 맡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들렌 자신도 앞으로 브랜드 전체를 이끄는 디렉터의 자리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고, 그러기 위해 필요한 역량과 경험을 하나씩 쌓아가고 있었다.

퇴근 후에는 요가나 클래식 발레 수업을 들으며 자기 관리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주말이면 오래된 책방이나 전시회를 찾아다니며 감수성과 상상력을 채웠다. 그녀의 일상은 바빴지만, 그 속에는 명확한 목표와 균형이 있었다.

그녀는 이제, 단지 한 브랜드의 일원이 아니라, 글로벌 문화 산업을 이끄는 인재로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었다.

2회. 프랑스 귀족집안 출신 마들렌의 아버지

마들렌의 아버지, 피에르 라콩브는 프랑스 남부의 고성 근처, 오래된 석조 저택에서 전통 있는 귀족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라콩브 가문은 수 세기에 걸쳐 귀족의 지위를 유지해온 전통 있는 집안으로,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도 상류 계층으로서의 영향력을 잃지 않고 살아남았다. 가문은 오랜 세월 정치와 외교, 학문 분야에서 이름을 떨쳐왔고, 그 명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피에르의 조부는 유럽 각국을 오가던 외교관이었고, 부친은 프랑스 국립의료원에서 요직을 맡았던 저명한 의학자였다. 모친은 파리 제1대학 철학과의 교수로, 지성과 예술적 감수성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어린 피에르는 전통과 품위가 깃든 교육 속에서 자라났다. 아침이면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고풍스러운 식당에서 가족과 함께 조용히 아침식사를 하고, 저녁이면 벽난로 앞에서 고전 문학이나 철학서적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의 부모는 피에르가 자연스럽게 가문의 명예를 이어받아 의사, 고위 행정직, 혹은 학계로 진출하길 바랐다. 특히 아버지는 아들에게 늘 강조하곤 했다. "라콩브 가문은 특별한 가문이야. 우리는 사회를 이끄는 위치에 있어야 하고, 귀족이란 특권이 아니라 책임과 의무를 의미하는 거란다." 그 말은 마치 가훈처럼 피에르의 성장 내내 따라다녔다.

하지만 피에르는 어릴 때부터 그런 무게감 있는 기대에 눌려 있었다. 그는 학업에도 뛰어났고, 파리의 명문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엘리트들이 모이는 고등행정학교(ENA)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지만, 그 길을 따르지 않았다. 대신 그는 경제와 국제관계에 관심을 두고 상경계열 명문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다국적 대기업의 국제 부문에 입사했다.

그 선택은 가문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부친은 "너 같은 아이가 사기업에서 돈을 벌겠다고?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야"라며 격노했고, 모친은 며칠간 식사를 거부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피에르는 담담하게 말했다. "저는 가문의 이름이 아니라, 제 자신으로 평가받고 싶어요. 제가 선택한 일에서 의미를 찾고 싶습니다."

피에르의 인생에서 가장 큰 갈등은 결혼이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의 단아하고 교양 있는 여성과 결혼하길 바랐다. 이미 몇몇 유력 가문들과의 정략적인 혼담도 오갔고, 가문 간의 인연을 통해 사회적 기반을 더욱 견고히 하려는 계획도 있었다. 하지만 피에르는 이러한 기대를 정중히 거절했다.

그는 어느 날, 박물관의 문화 후원 프로젝트를 계기로 전시 기획자로 일하던 실비아를 만났다. 실비아는 작고 수수한 외모였지만, 말투는 단정했고 설명은 조리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피에르는 실비아의 꾸밈없는 태도와 따뜻한 성품에 점차 끌리게 되었고, 짧은 만남 속에서도 그녀의 진심을 알아보게 되었다.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자 피에르의 부모는 단호히 반대했다. 실비아는 귀족 집안도 아니었고, 학계나 공직에도 종사하지 않는 "평범한 집안의 장녀"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고 마른 체격에 특별히 뛰어난 외모도 아니었기에, 부모는 실비아를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피에르의 어머니는 "이 아이가 정말 네 아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라며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고, 아버지는 가족회의 자리에서 실비아를 끝까지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피에르는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실비아와의 결혼을 감정의 결과이자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는 첫걸음이라 여겼고, 결국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용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에도 부모는 실비아를 공식 석상에서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았고, 오랫동안 가족 행사에도 초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피에르와 실비아는 묵묵히 서로를 의지하며 가정을 꾸려갔다.

피에르는 결혼 후 10년째 되던 해, 회사의 인사 정책에 따라 중견 간부로 승진하면서 칠레 산티아고 지사로 3년간 파견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또 하나의 운명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3회. 마들렌을 키워주신 어머니 실비아

실비아는 프랑스 중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목수였고, 어머니는 동네 제과점에서 일하며 세 아이를 키웠다. 그녀는 일남 이녀 중 장녀로서, 어린 시절부터 집안 살림과 동생 돌보기를 도맡으며 자랐다. 부모는 실비아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곧바로 일자리를 찾아 집안을 돕길 바랐지만, 실비아는 대학에 가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유럽은 대부분 대학 학비가 무료에 가까웠지만, 생활비와 등록 비용, 교재비 등을 감당하려면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가 필요했다. 실비아는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늦은 시간까지 카페나 서점에서 일하고, 부족한 공부를 보충하기 위해 일하지 않는 날에는 항상 저녁 늦게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며 학교를 다녔다. 그녀는 그런 환경에서도 결코 불평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박물관학을 전공한 그녀는 졸업 후 파리의 한 역사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기 시작했다. 많지 않은 급여였지만, 실비아는 항상 단정했고 성실했다. 그녀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따뜻하고 섬세한 성품으로 동료들과의 관계를 쌓아갔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맡은 전시 하나하나에 애정을 가지고, 배경 조사부터 설명문 작성까지 성실히 수행했다.

피에르와의 만남은 박물관 전시회에서였다. 그는 기업의 문화 후원 프로젝트 관련 업무로 박물관을 방문했고, 전시 기획자였던 실비아가 그를 안내했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서로에게 편안한 인상을 받았고, 몇 차례의 대화 끝에 가까워졌다.

피에르는 그녀의 지성과 배려 깊은 말투, 그리고 겉치레 없는 태도에 점점 끌렸고, 실비아는 자신을 귀하게 대하고 진심으로 존중하는 피에르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피에르의 진지한 고백 후에도 실비아는 둘 사이에 신분의 차이가 너무커서 한동안 망설였지만, 결국 그 진심을 받아들였고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혼 후에도 실비아는 시댁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피에르의 부모는 공식 석상에서 실비아를 언급조차 하지 않거나, 사회적 지위가 맞지 않는다고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실비아는 그런 대우에도 결코 격한 감정을 보이지 않았고, 늘 조용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남편 곁을 지켰다.

결혼 후 몇 년간 아이가 생기지 않자 실비아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병원 검진 결과 자신의 건강 문제라는 진단이 나오자 큰 충격에 빠졌다.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피에르가 끝까지 그녀의 편에서 흔들림 없는 애정을 보여준 덕분에 실비아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녀는 삶의 많은 것을 잃은 듯했지만, 동시에 피에르와의 조용한 일상 속에서 진정한 동반자의 의미를 되새겼고, 그가 칠레에서 데려온 마들렌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게 된다. 실비아는 마들렌을 처음 본 순간부터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으며, 그녀를 친딸처럼 길러냈다.

그녀의 침묵과 단단함은 마들렌에게도 전해졌고, 어린 마들렌은 종종 실비아의 조용한 강인함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다. 실비아는 결코 큰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그녀의 존재는 언제나 가족의 중심에서 무언의 힘으로 버텨주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했지만 약하지 않았고, 온화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실비아는 그렇게 마들렌의 또 다른 뿌리가 되어주었다.

제4회. 마들렌의 친어머니 마르타

그 남자의 이름은 라울 에스피노사였다. 산티아고 시내에서 간호사 한 명과 함께 작은 규모의 치과를 운영하는 내성적인 성격의 치과의사였고, 마르타와는 대학 시절 동문 행사에서 처음 알게 된 사이였다. 그는 눈에 띄는 외모도 아니었고, 부유한 집안 출신도 아니었지만, 성실하고 배려심 깊은 사람이었다. 마르타에 대해서도 언제나 거리를 두되 진심 어린 관심을 놓지 않던 사람이었다.

라울은 오랜 시간 마르타를 바라보며, 말없이 그녀를 지켜보는 방식으로 애정을 표현해 왔다. 마르타가 좋은 집안 출신에 똑똑하고 빼어난 미인이라는 걸 알기에, 그는 쉽게 자신의 감정을 내보일 용기를 갖지 못했고, 조심스럽게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다. 그녀가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에서 커리어를 쌓고 바쁜 일상 속에서 조금씩 이름을 알려갈 때도, 그는 뒤에서 묵묵히 그녀를 응원했다. 자신도 치과 의사 면허를 따고 조그만 진료실을 차릴 때, 그의 부모는 이제 좋은 짝을 찾아 가정을 이루라고 권했고, 때론 다그쳤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마르타를 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삶에 프랑스에서 파견 나온 남자가 나타났고, 두 사람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라울은 깊은 상실감을 느꼈다. 마르타가 아이를 낳고, 다시 홀로 아이를 키우다 결국 딸마저 프랑스로 보내게 되었을 무렵, 그는 그녀가 겪는 슬픔과 허무함을 묵묵히 지켜보았다. 처음엔 자신도 상처받은 마음에 그녀에게 실망과 원망을 품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다시금 그녀를 향한 연민과 따뜻한 감정이 되살아났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그 감정은 사라진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라울은 그 모든 아픔을 포함한 그녀를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그녀의 침묵과 상처, 때론 공허한 눈빛까지도 오히려 그녀를 더 인간적으로 느끼게 했고, 그 무엇보다 진심으로 아끼게 만들었다. 그가 바랐던 것은 열정이나 반짝이는 사랑이 아니라, 함께 인생길을 걸어가고 어려울 때 옆에서 버텨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마르타는 처음엔 그의 마음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다. 다시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건 이미 닫아버린 마음의 문을 다시 여는 일이었고, 그녀는 그럴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라울의 고백은 조심스러운 설득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진심이었고, 마르타는 그 말 앞에서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가진 아픔까지도 제가 함께 짊어질 수 있다면 좋겠어요. 당신의 웃는 얼굴을 다시 보고 싶어요. 억지로가 아니라, 당신이 스스로 웃고 싶을 때 웃을 수 있도록…”

그 말 앞에서 마르타는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그는 그녀에게 무엇인가를 기대하거나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녀가 다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곁에 있고 싶어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마르타는 그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그것은 한순간의 감정이라기보다는, 오랜 시간 마음속에 고여 있던 감정이 조금씩 흐르기 시작한 결과였다. 그렇게 그녀는 라울의 아내가 되었고, 세상의 눈으로는 더할 나위 없는 안정적인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결혼식 날, 그녀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었고,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도 마음 어딘가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침묵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가 입은 하얀 드레스는 지나치게 밝았고, 오히려 그 빛이 마음의 그늘을 더 짙게 드리우는 듯했다.

그 후에도 마르타는 성실한 아내로 살아갔다. 라울은 그녀를 존중했고, 그녀에게 열정적인 감정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들 사이엔 큰 갈등도 없었지만, 타오르는 감정도 없었다. 그저 서로를 배려하며 조심스럽게 이어가는 삶이었다.

그리고 마르타는 때때로 창가에 앉아 멀리 프랑스 하늘을 바라보며 마들렌을 떠올리곤 했다. 그리움은 언젠가 사라지리라 믿었지만, 여전히 그녀의 일상 속을 천천히 감돌고 있었다.

5회. 네팔로 가는 길

세렝게티를 떠나던 날, 그는 특별한 작별 인사 없이 숙소를 나섰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들판은 여전히 평온했고, 아침 햇살은 초원 위를 부드럽게 덮고 있었다. 그동안 몸에 밴 먼지 냄새며, 새벽마다 들리던 동물 울음소리, 그리고 흙길을 달리는 차의 흔들림은 이제 일상처럼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파견지가 네팔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그 익숙함을 곧 다시 내려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네팔이라는 단어는 그에게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하게 다가왔다. 어릴 적 교과서나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셰르파, 그런 이미지들이 뭉뚱그려 떠오르긴 했지만, 실제 그곳에서의 삶이 어떤 모습일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탄자니아와는 전혀 다른 문화권, 전혀 다른 언어와 풍경, 그리고 또다시 낯선 사람들과의 새로운 관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약간의 긴장과 동시에, 묘한 기대감을 느꼈다.

이삿짐은 많지 않았다. 현지에서 산 책 몇 권과 가벼운 옷가지, 아프리카 생활을 기록한 노트 한 권이 전부였다. 떠나기 전날 밤, 그는 세렝게티에서 찍었던 사진 몇 장을 노트북에 정리해두고, 마지막으로 숙소 근처 가게에서 탄자니아 커피를 한 봉지 샀다. 특별한 의미는 없었지만, 이곳에 머물렀던 시간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비행기는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공항에서 출발해 두바이를 경유한 뒤, 카트만두 트리부반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환승 시간은 길었고, 공항 안의 소음과 인파는 그를 점점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비행기 좌석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옆자리에 한 중년의 남성이 자리를 잡았다. 짙은 갈색 피부와 약간 굽은 어깨, 그리고 정중한 인사의 말투에서 그는 오랜 해외 체류 경험이 있는 네팔 인이란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비노드'라고 소개하며,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는 런던에서 일하다 잠시 귀국하는 길이라고 했다.

야마모토는 영어로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고, 둘은 금세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비노드는 네팔 사람들의 가족 중심적인 가치관과 도시의 급격한 변화, 그리고 수도 외곽에서 아직도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들려주었다. 야마모토는 그 이야기를 조용히 들으며 자신이 가게 될 도시와 사람들에 대해 조금씩 상상해보기 시작했다. 그는 특히, "네팔은 가난하고 조용한 나라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의 자연은 위대하고 사람들은 겸손합니다."라고 말했는데, 그 한마디가 왠지 야마모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와 닿았다.

비행기가 카트만두에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야마모토는 자연스레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원래 비행기 안에서는 창문 밖을 오래 바라보는 편이 아니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예외였다. 멀리서부터 히말라야 산맥의 하얀 설산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 거대한 봉우리들은 마치 하늘을 떠받치듯 솟아 있었다. 처음엔 그저 멀리서 희미하게만 보이던 산들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그 장엄한 형태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구름 사이로 간헐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산들은 마치 무언가를 말없이 전하고 있는 듯했다.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는 흰 눈의 결은 사진으로 보던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림처럼 완벽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울 만큼 생생했고, 그 크기와 정적은 마치 시간마저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야마모토는 숨을 고르듯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감정은 경외감과 묘한 평온함이 섞인 복합적인 것이었다.

그는 이 광경을 바라보며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천천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탄자니아의 넓은 초원, 해안가에서 불어오던 바람, 잔지바르에서 보았던 새벽의 바다—all of it felt far away now. 이곳은 또 다른 세상이었고, 그 장엄한 침묵은 그에게 ‘이제 정말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는구나. 하는 실감을 선명히 안겨주었다. 단지 다른 나라로 향하고 있다는 개념이 아닌, 스스로도 몰랐던 새로운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비행기의 엔진 소리는 그대로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든 소리가 멀어지고, 창밖 풍경만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는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곁에 앉은 비노드에게도, 누구에게도 그 순간의 감정을 정확히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저 조용히 입을 다문 채 계속해서 산맥을 응시했다. 거대한 자연의 벽, 그 벽 너머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무언가를 상상하며.

그리고 동시에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이곳에서 야마모토는 어떤 시간을 살아가게 될까?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갈까? 그 질문들은 아직 대답이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두렵지는 않았다. 히말라야의 장엄함이 그에게 그런 확신을 준 듯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지금이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묵시적인 위로처럼 느껴졌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희미한 햇살과 기내의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야마모토는 잠시 눈을 감았다. 앞으로 마주하게 될 수많은 경험들과 사람들, 그리고 일에 대한 복잡한 마음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기대와 설렘이 섞여 있었다.

비행기가 천천히 카트만두 공항을 향해 접근하기 시작하자, 비노드는 조심스럽게 야마모토에게 말했다. "카트만두는 생각보다 많이 혼잡하니 처음엔 적응이 어려울 수 있어요. 하지만 곧 익숙해질 거예요. 여긴 천천히 움직이는 곳이니까요."

야마모토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처럼, 이 모든 것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고, 그 역시 그 속도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비행기는 곧 착륙 준비에 들어갔다. 그는 안전벨트를 조이며, 처음으로 네팔 땅을 밟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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