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 번째 도전, 해파랑길을 가다.

by 휘리

나는 나태하고 걱정 많은 전형적인 내향인이자 내성적인 인간이다. 나는 음식 하나, 간식 하나를 고를 때에도 새로운 것을 선택하기보다 항상 먹었던 안정적인 선택을 한다. 이런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내가 반평생 동안 무슨 도전을 했겠는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estrogen)과 프로게스테론(progesteron)의 분비가 점차 감소되는 갱년기여서 그런가 이제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싶어졌다. 더 늦기 전에 대단한 도전은 아닐지라도 ‘도전’이란 이름을 달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그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2022년 4월 1일 금요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1박 2일 일정으로 해파랑길을 가게 되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23시 50분에 심야 우동버스를 타고, 울산에 가 해파랑길 9코스를 걷는 것이었다. 이 나이에 심야 버스를 타 본 적도 처음이었고, 울산을 가는 것도 처음이었다. 아직은 아쉽게도 혼자 이런 계획을 실행할 정도의 용기는 없다. 언젠가는 반드시 혼자 당당하게 해파랑길을 갈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그런 용기를 내가 낼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이번은 친구의 도움으로 생에 처음 도전다운 도전을 하게 되었다.


친구의 도움으로 준비물을 꼼꼼하게 챙겨 서둘러 집을 나셨다. 서늘한 바람이 부는 저녁거리는 새로운 도전에 용기와 축복을 주는 듯 설렘을 선물했다.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했다. 친구를 만나 심야 우동버스를 타고, 23시 50분에 울산을 향해 출발했다. 친구는 처음인 나를 위해 이것저것 유의 사항을 알려줬다. 서울을 벗어나자 버스 안은 불이 꺼졌다. 우리도 20㎞의 대장정을 위해 잠을 청했다. 몇 번의 뒤척임을 반복하다 보니 드디어 다음날 04시 20분경에 울산에 도착했다.


우리는 첫 시내버스를 타기 전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어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다. 감염병이 창궐한 시기였던지라 이른 아침에 식사할 마땅한 식당이 없었다. 몇 번을 돌아 결국은 터미널 안에 있는 식당에서 김밥을 먹었다. 첫차를 타고 아침 7시쯤에 일산 해변에 하차하여 우리는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거리마다 붙어있는 표시를 따라 꼬불꼬불한 길을 갔다. 베테랑인 친구는 표시를 잘 찾았다. 나는 그런 친구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남목 마성((南牧 馬城)을 지나 주전봉수대(朱田烽燧坮)에서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봉호사 해수관음상에 이르니 눈이 부시게 푸르른 동해가 눈앞에 펼쳐졌다. 11㎞ 이상을 걸은 고단한 일정에 대한 보상이라도 되는 듯한 확 트인 경치는 인간의 언어로는 형용이 안 될 정도로 너무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한여름 밤의 꿈같은 휴식을 갖고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산을 내려와 주전해변을 지났다. 코앞에 펼쳐진 바다는 산 위에서 봤던 경치와는 또 다른 묘미가 있었다. 근데 솔직히 말해 여기부터는 발바닥이 아프기 시작해 슬프게도 경치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끝이 서서히 보이기에 힘을 낼 수 있었다. 주전마을과 구암마을을 지나 제전마을을 향해 가는데 마지막 고비가 왔다. 발바닥이 아픈 단계를 지나 허리가 아팠다. 친구는 자꾸 나의 허리가 굽어지는 것을 봤는지 동네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자고 했다.


카페에 들어가 달콤한 휴식을 가지면 그만 걷자고 친구에게 포기하는 추한 모습을 보일까 걱정되었지만, 당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달달한 커피를 마시니 기운이 좀 나는 것도 같았다. 걷는 것 하나는 자신했는데 역시 20㎞는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걷는 길이 평지만 있는 것도 아니고, 산을 오르내리면서 걷는 길은 나에게는 정말 도전다운 도전으로 느껴졌다. 당 충전하고, 친구와 수다를 떨다 보니 더 이상 허용된 휴식 시간이 없었다. 돌아갈 버스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는 이제 무거운 엉덩이를 자리에서 떼야했다. 나의 엉덩이는 카페 의자에 딱 달라붙어 쉽게 떼 지지 않았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만 가자는 말이 목구멍을 지나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그래도 아직은 이성을 놓지 않았나 보다. ‘포기’라는 말을 겨우 삼키고, 마지막 힘을 내었다.


제전마을을 지나니 정자항의 유명한 붉은 고래등대가 보였다. 붉은 고래등대에 가니 맞은편에 흰 고래등대도 보였다. 7시간 이상을 걸어 드디어 해파랑길 9코스를 완주한 것이다. 친구와 얼싸안고 완주의 기쁨을 누렸다. 누가 보면 42.19㎞ 마라톤을 완주한 줄 알았을 것이다.


버스터미널에서 식사하고 서울로 출발해야 하는 우리는 완주의 기쁨을 짧게 누리고 서둘러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식사하자 몸도 마음도 노곤해졌지만, 스스로 대견하기 짝이 없었다. 이 순간만큼 나는 완전 나르시시스트가 되었다. 나의 첫 도전을 훌륭하게 성공으로 이끌어 준 친구도 나의 첫 도전을 칭찬해 주고, 기뻐해 줬다. 이 성취감으로 나는 다음 도전도 용감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이상 나는 나태하고 걱정 많은 나태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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