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짓누르는 중력이 너무나도 세다고 느껴졌을 때, 나는 가벼워지기를 원했고, 자유로워지기를 원했다. 그래서 약물 과다복용을 통해 나의 몸과 마음을 짓누르는 이 세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렇게 남아있는 나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했던 이들은 나의 고통을 이어받아 하루하루의 삶을 이어나가는 생존자가 되었다.
20여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은퇴를 하여 인생의 제2막을 준비하시던 아버지는 모든 의욕을 잃으시고 방에만 틀어박혀 계신다.
신앙의 힘으로 버티고 계시던 어머니는 쓰러지시고 다시 일어나신 후에 이전의 밝은 모습은 사라지시고 말하는 법을 잊어버리신다.
마지막으로 친형은 결혼을 앞두고 심리가 흔들려 선생이라는 직업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어하지만, 예비 형수님의 도움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죽고 나면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내가 저지를 일로 인해서 남은 사람들이 간신히 살아가는 ‘생존자’라는 것을 인지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시간의 흐름이 그들을 더 힘들게 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그 힘듦이 점점 가시처럼 나를 조여와 고통스럽게 한다는 점을 알지 못한 체 말이다.
01.
조울증, 공황장애, 분리불안, 대인기피증 등 다양한 정신과에서 말하는 증상들이 나에게 있었다. 미성년 즉, 고등학생 때까지는 다 숨기고 참고 살아서 사람들이 알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성년이 되고 학교로 인해 지방에 떨어져 살다 보니 조금씩 숨기고 참는 일을 내려놓으니 내가 느끼고 겪고 있던 것이 정신과적인 증상이었다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고 그럼에도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는 일은 없었고, 점점 증상이 심해지고 언제부터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일 년에 한 번씩은 생명을 끊으려고 시도를 했다. 그렇게 어떻게든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가 때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를 짓누르는 이 세상에서 벗어나게 되는 때가 말이다.
죽음을 인지하게 된 때는 모든 감각이 이상해져 버리고 이유는 모르겠으나 망연자실하듯 멍하니 있는 가족들에게 말을 하려고 하는데 전혀 소리라는 게 밖으로 나오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상황을 받아들이게 된 때였던 것 같다.
처음엔 ‘이게 내가 생각하는 자유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과 마음이 어디에도 구속되어있지 않고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지내고 싶었던 게 내가 생각하는 자유였는데, 한 번도 본적 없었던 가족 구성원들의 모습에 나의 자유는 무너져내렸다.
나는 나의 선택에 대해서 후회한 적이 많이 있다. ‘중학교 때 농구를 했으면 키가 더 컸을 텐데’, ‘학교를 자퇴하지 않고 계속 다녔으면 나도 지금쯤 돈을 벌고 있을 텐데’ 이런 후회를 수도 없이 많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하고 있는 후회는 다른 차원인 것 같다. ‘내가 몇 사람의 삶을 무너뜨려 버린 거지?, 분명 나는 사는 게 너무 힘들었고 온몸과 마음을 누르고 있는 절망과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인데 그대가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토록 고통스러워 하는 걸 바라만 보고 있는 거라고?’라는 생각이 나를 그동안에 했던 후회 중에 가장 깊은 후회를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어떤 방법도 없다는걸.. 누구도 말 안 해줬지만 알 수 있었다. 아마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면 고통스러운 지옥에 가게 된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게 정말 그 지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02.
생존자께,
당신이 이렇게 힘들어할지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저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저의 고통밖에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어요. 당신이 이렇게 힘들어할 줄 알았다면 저의 선택에 조금이나마 변화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같이 힘듦을 공유하고 이겨내 간다는 게 쉽지 않지만, 노력이라도 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소중한 것을 놓쳐버렸네요.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지만, 당신은 꼭 주변에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당신의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당신의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고요? 당신의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꼭 그 한 사람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