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위플래쉬(재개봉)

데이미언 셔젤

by 김민정

2015에 개봉하여 벌써 10살이 된 위플래쉬가 재개봉한다고 하여 돌비사운드로 즐기기 위해 달려간 하루였다.


앤드류, 플레쳐, 돌비와의 만남 기쁘다 기뻐..

사실 10년 전 개봉했을 당시에는 보지 못했지만 이번에 제대로 극장에서 보게 된 영화였다.


그 당시에는 아마 “가스라이팅”이라는 워딩이 익숙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지금에서 보니 플레쳐의 모습은 아주 완전한 가스라이터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정신적 가혹행위는 사람을 극한에 몰아붙이고, 이를 이겨내지 못하면 큰 좌절에 빠지게도 만든다. 그는 학교에서 나와서도 여전한 면모를 자랑하지만 자신은 할 일을 한 것뿐이라는 합리화한 모습은 정말 현실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플레쳐만큼은 아닐지라도 저런 모습을 한 주변인물들이 몇몇 떠올랐다. 내가 실제로 그랬듯이 영화를 볼 때도 플레쳐가 웃어주며 당근을 던져줄 때면 ‘음 맞아 나쁘기만 한 사람은 아니야’라고 착각하다가도 지휘자로서 채찍을 휘두르는 그의 모습을 보면 다시 정신 차리고 그를 보게 된다. 일말의 기대감을 번번이 무너트리는 장면들이 몇 번이고 나오는데 그때마다 이 사람이 바뀌었나? 기대하다가도 다시 실망하고 그는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었다. 앤드류의 표정도, 행동도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따라 바뀌는 것을 보니 마치 입시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물론 예체능은 아니지만)


앤드류의 열정은 영화 내내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단지 good job에 그치지 않기 위해, 최고의 뮤지션이라는 꿈이라는 목표가 있었기에, 손이 피로 물들 정도로 연습하고,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플레쳐가 만든 강박과 집착은 스스로를 갉아먹는데, 성공을 위한 극한의 고통이 그만큼의 스스로를 돌보지 못할 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기도 했다. 그는 넘어지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하지만 결국 플레쳐와의 공연에서 자신의 연주를 보여준다. 마지막까지 플레쳐는 앤드류의 재능을 끌어올리기 위함인지 사이코 같은 날카로운 말들로 그를 계속 자극한다. 좌절할 뻔하였으나 다시 돌아와 무대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앤드류의 모습으로 막은 내린다. 영화는 정말 간단명료하다고 느꼈다. 대신 그 안에 앤드류의 열정이 가득 찬 영화였다. 나는 저렇게까지 무언가를 위해 노력한 적이 있었나 생각이 들게 만든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앤드류가 보여준 연주는 기립박수를 쳐야 할 정도의 연주였다. 플레쳐의 교육론(?)이 결코 맞다고 할 수 없지만 앤드류는 그걸 발판 삼아 자신을 더욱 성장시킨 건 맞다고 느꼈다.


내가 어떤 일에 열정을 밝히고, 완벽을 추구할 만큼 깊게 파고드는 것이 있는가라는 생각을 곱씹으며 영화관을 나오게 되었다. 또 각자의 삶에서 마주친 플레쳐들을 다시 만난다면 나는 어떨지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그때는 싫어했지만 지금 보면 그들처럼 애증의 관계로 남아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목표를 이루는데 과정에서 스스로를 챙기며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이 과연 플레쳐말대로 불가능한 걸까라는 씁쓸한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브루탈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