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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마소 Apr 11. 2023

[알라딘] 행복한 중고서적 분양센터

가격표 안 보고 중고서적 사는 멋진 사람입니다만

알라딘 커뮤니케이션즈


알라딘 커뮤니케이션즈는 중고서적 전문기업이다. 연 5천억 매출을 내는 어엿한 중견기업이지만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해 보면 정겨운 촌스러움이 묻어난다. 입구에 '오늘 들어온 책'의 권수를 큼직하게 표기해 놓는 건 알라딘의 고유한 특징이다. Today's book이 아닌 우리말로 적어둔 것도 마음에 든다. 




 알라딘, 왜 자꾸 가게 되지?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본질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운동화면 뉴발란스처럼 가벼워야 하고, 식재료면 컬리처럼 신선해야 한다. 알라딘을 애정하는 이유도 '좋은 보관상태의 책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새(것 같은) 책 사기

 요즘엔 새 책 한 권 가격이 기본 1만 4천 원 내외다. 책 사는데 돈 아끼지 말라하지만 선뜻 몇 권을 담아 사기에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알라딘에서는 동일한 1만 4천 원의 책을 보관상태에 따라 5천 원~ 1만 원 사이에 구입할 수 있다. 보관상태 상급 제품도 50%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으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풍족한 곳간 같은 장소이다.


 보관상태는 하급/중급/상급/최상급으로 나누어진다. 최상급 책 기준으로 대개 신권가격의 70% 가격으로 판매하고 육안상 새 책처럼 보인다. 반면 하급은 신권가격의 20~30%이다. 저렴한 대신 누가 봐도 헌 책이고 책 내부를 보면 찢어지거나 낙서가 되어있기도 해 개인적으로 추천하진 않는다. 


'책'임감이 없어도 OK

 난 책을 사놓고 읽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다. 문체가 지나치게 딱딱하거나 내용이 지루하면 억지로 읽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 책을 살 때 종종 망설인다. "다 못 읽으면 어떡하지?" 그놈의 게으른 완벽주의가 책에서도 나타난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책을 피하던 내가 알라딘을 알고 나서 책을 좋아하게 됐다. 정확히 말하면 책을 다 못 읽는 걸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는다. 누군가한테서 한 번 거쳐온 책이어서 그런가 산 책에 대한 '책임감'이 좀 덜하다. 덕분에 서점에 자주 가게 되고, 쉽게 책을 사고, 결국 독서하는 습관까지 생겼다. 어릴 때 그렇게 읽으라고 할 땐 안 읽다가 스스로 책을 사는 모습을 생각하면 가끔 생소하다.


재고 확인하고, 득템 하자

 요즘엔 알라딘 어플을 이용하면 매장별 재고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평소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검색해 보고 살 수 있다. 당장 필요한 학습 서적이 아니라면 참을성을 갖고 기다려보자. 그렇게 어렵게 구입한 책은 더 소중하다.


 그리고 '알라딘 MD 추천도서'에서 새로운 책을 발견하는 경험도 좋다. 책을 읽다 보면 특정 분야의 책만 읽게 되는데 추천도서 중 아무거나 골라서 읽어보면, 새로운 분야의 책도 꽤나 잘 읽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단, 모든 회사들의 추천도서는 마케팅의 일환이니 좋은 책이라고 단정 짓고 읽지는 말기. 나한테 잘 안 읽히면 나에겐 안 맞는 책이다.




 중고서적 대기업의 과제 


 빛이 밝으면 그림자가 어두운 법이다. 알라딘은 출판업계의 수익을 저해한다는 질타를 받고 있다. 중고서적의 거래가 새 책의 판매를 저해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간도서의 구매자가 그 책을 중고시장에 판매한다면, 신간의 잠재 소비자가 새 책이 아닌 중고책을 구매하는 식이다. 그래서 알라딘은 2016년 출판문화산업진흥원, 출판유통심의위원회, 서점조합연합회, 출판인영업협의회 등과 자율 협약을 맺고 출간 후 6개월이 지난 책만 중고서점에서 팔기로 했다.


 누군가는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중고서적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를 저자, 유통사에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이는 정가제의 가격에 소유권이 포함되어 있는 가격이라고 주장한다. 마치 내가 산 자동차를 자유롭게 중고차 시장에 팔 때처럼 말이다. 어떤 게 맞는 걸까? 둘 중 어떤 판단이 맞건 왜 타 업계에서 통용되지 않는 '생산자의 지속적인 소유권'이 출판업계에서만 인정되어야 하는지는 명분 입증이 필요하다.




*알라딘의 사소한 배려에 감동한 SSUL

알라딘에서 한창 책을 '구입'하는 걸 좋아할 당시, 책을 사는 속도가 읽는 속도보다 빠를 때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팩트풀니스'라는 책을 구매한 지도 모르고, 다음번에 방문해서 똑같은 책을 또 들고 카운터로 갔다. 그때 카운터 직원분이 '손님 이거 구매한 기록 있으신데 구매하시는 건가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책을 '사기만'하는 사람인 걸 들켜버려서 민망했지만 최대한 태연한 척 '아 그래요? 그거 빼주세요'라고 넘어간 적이 있다. 중복된  책을 구매하게 둘 수도 있었을 텐데 뜻밖의 사소한 배려에 고마웠다. (읽지도 않는 책을 여러 권 사는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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