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는 사실 가격 대비 성능이 별로다.
달달한 할인 그리고 가성비
'총 할인액 8200원'. 마트 계산대 앞 모니터에 총 할인 금액이 표시된다. 전체 장보기 금액 중 20% 할인을 받으니 소비를 했지만 왠지 이득을 본 것 같다. 그런데 집에 와서 장바구니를 풀어 보니 살 생각이 없었던 물품이 가득하다. 1+1 행사 중인 그래놀라 시리얼,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할인하는 생닭 등. 조금 전까지 느꼈던 잠깐의 행복이 호수 위의 엷은 안개처럼 사라진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한 가지 물어본다. 이런 소비, 진짜 맞아?
할인하는 제품을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분명 필요 없는 물건임에도 할인은 우리 뇌에게 '저건 필요해'라며 악마의 속삭임을 한다. 평소보다 낮은 가격에 구입하는 게 되려 이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예로 똑같은 가격이라면 품질이 더 나은 제품인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높은 상품도 선호한다.
가성비란 단어는 처음엔 PC, IT커뮤니티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CPU는 모델에 따라 성능과 가격이 달랐는데, 모델별 성능 차이에 비해 가격은 비교적 크게 차이가 났다. 따라서 적당한 가격 대비 높은 성능이 중요했고 이것이 가성비란 단어의 시초이다.
가성비 말고 '가치 담긴 소비'
다만 가성비란 단어가 점점 다양한 상황에서 쓰이면서 본래의 의미가 조금씩 바뀌어 갔다. 원래 가성비의 초점은 적당한 가격 대비 높은 성능에서 느끼는 '만족감'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가성비란 단어가 '적당한 가격'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다. 우리는 어떤 물건이 꼭 필요하지 않아도 그저 가격이 적당하다는 이유로 사곤 한다.
가성비가 좋아서 사는 물건은 사실 돈을 절약하는 방법은 아니라는 걸 종종 느낀다. 가성비 제품은 품질면에서 일부를 타협하고 가격을 낮췄다. 그래서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더 높다. 만약 평균가 70% 가격의 가성비 좋은 제품을 샀는데 고장이 나서 재구매를 하게 된다면, 처음부터 좋은 물건을 오래 쓰는 게 더 절약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하지만 물건을 살 때는 정확한 실제 사용기간 대비 가격을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가격이 아닌 다른 가치를 기준으로 소비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꿩 대신 닭을 사지 말기, 그냥 꿩을 사자
어떤 소비를 하는가는 곧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의미한다. 부모님이 당신들의 돈 한 푼은 아끼면서 자식들에게 돈을 아끼지 않는 건 그만큼 우리들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다른 예로 여행 예산을 짤 때 비행기값은 최대한 아끼지만 식비에는 돈을 후하게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좋은 이동수단을 이용했을 때보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훨씬 행복하다고 느낀다. 즉 소비는 돈을 사용하는 행위를 넘어 스스로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뮤지컬을 정말 좋아한다면 가성비 좋은 좌석에서 보지 말자. 무대와 음향을 100%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좌석으로 예매하자. 또 가성비 좋은 식당만 찾아보지 말자. 때로는 '이런 금액을 주고 먹는다고?' 생각이 들 만큼 비싼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어보자. 훌륭한 레스토랑에서 하는 식사는 스스로에게 주는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생각은 행동을 결정한다. 유리병 안의 벼룩처럼 스스로를 가격이란 유리병 안에 가두지 말자. 자기 범위 밖의 소비를 부추기는 게 아니다. 본인의 소비능력 안이라면 꿩 대신 닭을 사지 말자. 꿩을 사자. 꿩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가치 있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