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의 흔적을 찾아서
덴마크에서는 부활절이 특별한 휴일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명절처럼 가족들이 모이는 때가 부활절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휴일도 길다. 무려 일주일간이 휴일이 계속된다. 긴 시간 동안 뭘 해야 할까 했는데 고맙게도 덴마크인 친구가 부모님이 여행을 떠나신다고 놀러 올 생각이 있냐는 말에 냉큼 받아들였다. Slagelse라는 작은 덴마크의 도시였는데 참 편안한 힐링 여행이었다.
Slagelse에는 바이킹 박물관이 있다. 덴마크 하면 바이킹의 나라인데 코펜하겐에서는 딱히 찾아볼 수가 없어 아쉬웠는데 여기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위의 사진은 바이킹 터라고 한다. 이상하게 해외여행을 가면 그곳에서 한국의 흔적을 찾아 어떻게든 연결시키려는 버릇이 있는데 여기 터를 보고는 딱 경주의 황룡사 터가 생각났다. 이곳도 예전에는 무언가 건물들이 있었겠지.
바이킹이 살았던 집을 재현해 놓은 곳이다. 내부도 들어가 볼 수 있었는데 정말 영화에서 보던 바이킹족이 나타날 것 같은 곳이었다. 다만 뭔가 투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투로 유명한 민족이라 그런지 미적인 영역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은 느낌. 함께한 덴마크 친구가 이야기해 주기로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바이킹의 방패가 발굴된 곳이라 한다. 우리가 바이킹 하면 모자를 쓰고 칼과 방패를 든 모습을 상상하지만 사실 방패는 딱 이곳 한 군데서만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역사나 북유럽 신화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는데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이었다.
굉장히 작은 박물관이었는데 여기가 좋았던 이유는 야외가 넓어서였다. 푸른 잔디밭 옆에 언덕으로 빙 둘러싸인 채 남아있는 바이킹 터, 옛 건물을 재현해 놓은 모습, 그리고 한국민속촌처럼 바이킹 시대의 사람들을 재현하고 있는 분들이 계셨다. 생각보다 굉장히 실감 나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옷도 잘은 모르겠지만 바이킹 때 입었을 법한 옷을 입고 계시고 진짜 마을에 온 듯이 대장간에서 일하시는 분부터 차를 끓이시는 분, 빨래나 옷을 지으시는 분까지 진짜 바이킹 시대에 들어와 마을의 모습을 구경하는 여행객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다들 굉장히 친절하셔서 사진도 흔쾌히 찍어주시고 차도 얻어마실 수 있었다 정말 양동이에서 나무 주걱으로 퍼서 마신 차였는데 미묘하게 흙맛이 났다. 그분이 말씀하시길 예전 바이킹 시대에서 위생은 관심사가 아니었다고. 호탕하게 말씀하시는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기억에 남는다. 덴마크 전통 놀이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도 있었는데 말 인형, 공을 던져서 조각을 넘어뜨리는 놀이 등등 다양하게 있었다. 성공하면 친구가 바이킹 시험에 통과했다고 하고 실패하면 바이킹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계속 버라이어티 한 반응을 보여줬는데 그래서 더 재밌었던 것 같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폐장시간을 넘기고도 야외 벤치에 앉아서 가져온 음료수를 마시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탁 트인 평야에서 잔디와 바이킹의 흔적을 보면서 평화롭게 있으니 이게 휘게구나 싶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바이킹은 정말 전투에 특화된 민족인데 지금의 덴마크인들이 그렇게 싸움을 하는 모습은 정말 상상이 되지 않는다.
다른 날에는 옛 교회 터로 향했다. 덴마크는 독일 바로 위에 있는데 그래서인지 언어가 비슷하다고 한다. 발음은 몰라도 적혀 있는 글자를 보고 뜻은 알 수 있다고. 그래서 독일에서 온 교환학생 친구도 마트에서 쓰여 있는 물건들을 번역하지 않고도 대부분 알 수 있다고 한다. 또 여행도 많이 와서 그런 것인지 여기도 영어, 독일어, 덴마크어로 교회의 역사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었다. 이런 걸 보면 언어가 비슷한 나라들이 신기하고 부럽다. 다른 한 언어를 배우는 데 드는 노력이 덜하고 뭐든지 조금이라도 말이 통하는 곳이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한국어와는 비슷한 언어가 전혀 없어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게 한국어가 특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 같다.
사실 여기는 친구가 태어나서부터 대학을 오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길을 걸으면서 계속 옛 추억들을 이야기해 줬는데 그때마다 들뜬 모습이 보여서 참 귀여웠다. 시내로 가는 길에 공원이 있었는데 날이 좋아서 그런지 공원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모습들도 공원의 풍경 속 일부인 것 같았다. 그렇게 계속 걷다가 시내에 도착했다. 이곳 시내의 첫인상은 영화 속 세트장 같다는 것이었다. 이스터라 그런지 사람들도 얼마 없고 차들도 없어서 더 그랬다. 그런데 그게 스산하거나 음산한 게 아니라 정말 동화 같은 곳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가게들이 많이 문을 닫아서 아쉬웠지만 또 그 평화로운 거리의 모습을 보는 맛이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친구가 정말 별거 없는 시골 마을이라 우리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걱정했는데 오히려 코펜하겐을 벗어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코펜하겐을 제외하고 덴마크 대부분의 곳은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오히려 진짜 덴마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아 좋았다. 어딜 가나 내가 사는 곳은 볼 게 없다고 말하는 건 공통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관광객이 아니라 로컬 같은 여행을 원하지 않나. 딱 그 욕구를 충족시켰던 여행이었다. 너무 덴마크의 모습이라 친구는 걱정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정말 좋았던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