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수꾼 May 19. 2023

덴마크 소도시 여행(1)

바이킹의 흔적을 찾아서

덴마크에서는 부활절이 특별한 휴일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명절처럼 가족들이 모이는 때가 부활절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휴일도 길다. 무려 일주일간이 휴일이 계속된다. 긴 시간 동안 뭘 해야 할까 했는데 고맙게도 덴마크인 친구가 부모님이 여행을 떠나신다고 놀러 올 생각이 있냐는 말에 냉큼 받아들였다. Slagelse라는 작은 덴마크의 도시였는데 참 편안한 힐링 여행이었다. 

Slagelse에는 바이킹 박물관이 있다. 덴마크 하면 바이킹의 나라인데 코펜하겐에서는 딱히 찾아볼 수가 없어 아쉬웠는데 여기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위의 사진은 바이킹 터라고 한다. 이상하게 해외여행을 가면 그곳에서 한국의 흔적을 찾아 어떻게든 연결시키려는 버릇이 있는데 여기 터를 보고는 딱 경주의 황룡사 터가 생각났다. 이곳도 예전에는 무언가 건물들이 있었겠지. 

바이킹이 살았던 집을 재현해 놓은 곳이다. 내부도 들어가 볼 수 있었는데 정말 영화에서 보던 바이킹족이 나타날 것 같은 곳이었다. 다만 뭔가 투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투로 유명한 민족이라 그런지 미적인 영역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은 느낌. 함께한 덴마크 친구가 이야기해 주기로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바이킹의 방패가 발굴된 곳이라 한다. 우리가 바이킹 하면 모자를 쓰고 칼과 방패를 든 모습을 상상하지만 사실 방패는 딱 이곳 한 군데서만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역사나 북유럽 신화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는데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딱이었다. 

굉장히 작은 박물관이었는데 여기가 좋았던 이유는 야외가 넓어서였다. 푸른 잔디밭 옆에 언덕으로 빙 둘러싸인 채 남아있는 바이킹 터, 옛 건물을 재현해 놓은 모습, 그리고 한국민속촌처럼 바이킹 시대의 사람들을 재현하고 있는 분들이 계셨다. 생각보다 굉장히 실감 나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옷도 잘은 모르겠지만 바이킹 때 입었을 법한 옷을 입고 계시고 진짜 마을에 온 듯이 대장간에서 일하시는 분부터 차를 끓이시는 분, 빨래나 옷을 지으시는 분까지 진짜 바이킹 시대에 들어와 마을의 모습을 구경하는 여행객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다들 굉장히 친절하셔서 사진도 흔쾌히 찍어주시고 차도 얻어마실 수 있었다 정말 양동이에서 나무 주걱으로 퍼서 마신 차였는데 미묘하게 흙맛이 났다. 그분이 말씀하시길 예전 바이킹 시대에서 위생은 관심사가 아니었다고. 호탕하게 말씀하시는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기억에 남는다. 덴마크 전통 놀이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도 있었는데 말 인형, 공을 던져서 조각을 넘어뜨리는 놀이 등등 다양하게 있었다. 성공하면 친구가 바이킹 시험에 통과했다고 하고 실패하면 바이킹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계속 버라이어티 한 반응을 보여줬는데 그래서 더 재밌었던 것 같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폐장시간을 넘기고도 야외 벤치에 앉아서 가져온 음료수를 마시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탁 트인 평야에서 잔디와 바이킹의 흔적을 보면서 평화롭게 있으니 이게 휘게구나 싶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바이킹은 정말 전투에 특화된 민족인데 지금의 덴마크인들이 그렇게 싸움을 하는 모습은 정말 상상이 되지 않는다.  

다른 날에는 옛 교회 터로 향했다. 덴마크는 독일 바로 위에 있는데 그래서인지 언어가 비슷하다고 한다. 발음은 몰라도 적혀 있는 글자를 보고 뜻은 알 수 있다고. 그래서 독일에서 온 교환학생 친구도 마트에서 쓰여 있는 물건들을 번역하지 않고도 대부분 알 수 있다고 한다. 또 여행도 많이 와서 그런 것인지 여기도 영어, 독일어, 덴마크어로 교회의 역사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었다. 이런 걸 보면 언어가 비슷한 나라들이 신기하고 부럽다. 다른 한 언어를 배우는 데 드는 노력이 덜하고 뭐든지 조금이라도 말이 통하는 곳이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한국어와는 비슷한 언어가 전혀 없어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게 한국어가 특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 같다.

사실 여기는 친구가 태어나서부터 대학을 오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길을 걸으면서 계속 옛 추억들을 이야기해 줬는데 그때마다 들뜬 모습이 보여서 참 귀여웠다. 시내로 가는 길에 공원이 있었는데 날이 좋아서 그런지 공원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모습들도 공원의 풍경 속 일부인 것 같았다. 그렇게 계속 걷다가 시내에 도착했다. 이곳 시내의 첫인상은 영화 속 세트장 같다는 것이었다. 이스터라 그런지 사람들도 얼마 없고 차들도 없어서 더 그랬다. 그런데 그게 스산하거나 음산한 게 아니라 정말 동화 같은 곳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가게들이 많이 문을 닫아서 아쉬웠지만 또 그 평화로운 거리의 모습을 보는 맛이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친구가 정말 별거 없는 시골 마을이라 우리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걱정했는데 오히려 코펜하겐을 벗어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코펜하겐을 제외하고 덴마크 대부분의 곳은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오히려 진짜 덴마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아 좋았다. 어딜 가나 내가 사는 곳은 볼 게 없다고 말하는 건 공통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관광객이 아니라 로컬 같은 여행을 원하지 않나. 딱 그 욕구를 충족시켰던 여행이었다. 너무 덴마크의 모습이라 친구는 걱정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정말 좋았던 여행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덴마크에서 보낸 생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