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료를 다음에 주겠다고요?
사주를 봐주고 돈을 떼일 뻔했다
최근 사주 상담업을 개시하면서 지인들 톡방에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당장 사주를 보겠다며 상담료를 미리 지불한 지인도 있었고, 액맞이 명태 장식을 선물로 보내준 친구도 있었어요. 나중에 유명해져서 유퀴즈와 같은 TV에서 보는 거 아니냐며 너스레를 떠는 친한 동생의 말에 빵 터지기도 했죠. 따뜻한 응원과 축하 인사를 받아 부담도 되면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일상을 감사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다음 주에 예전에 다니던 회사 사람들과 저녁을 먹기로 했어요. 그중 친하게 지내던 대리님이 이번 모임에 자기 여자친구와의 궁합을 봐달라며 연락이 왔습니다. 그와 저와는 회사 다닐 때 워낙 친하게 지냈던 터라 오빠 동생하는 남매 같은 사이입니다. 겉과 속이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해서 소개팅도 많이 해줬는데 그의 연애는 잘 풀리지 않았죠. 그런데 이번 여자친구는 6개월 이상 만나기에 결혼도 생각하는 눈치더군요. 지금 여자친구와는 사귀기 전부터 저에게 이 여성분 사주 어떠냐고 미리 생년월일시도 보내주어 대충 사주 구조가 머릿속에 있었어요.
저에게 궁합 요청하면서 그는 가격이 어떻게 되냐고 물었습니다. 개인 사주는 5만 원, 궁합은 둘의 상성과 앞으로의 흐름을 보는 것이므로 9만 원이라고 했죠. 그는 지인 찬스 좀 쓰자며 가격을 깎아달라고 했어요. 내키진 않았지만 뭐 상담업 초반이기도 하고 깎아달라는 지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조금 내린 가격을 제시했고 그도 수락했습니다.
모임자리에서 간명지를 주기로 한 터라 어제 궁합 풀이의 반 정도쯤 작성하고 있었어요. 본래 선입금이 원칙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도 있는 자리에 돈을 주고받는 것보다 미리 받을 게 좋을 것 같아서 (이때부터 촉이 발동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에게 "오빠, 원래 선입금이 원칙이야. 전에 말했던 간명비 입금해 주면 예쁘게 작성해서 가겠습니다"라고 보냈습니다. 몇 분 뒤에 그에게 답장이 왔어요.
"돈은.. 다음부터 내는 걸로 하자 ㅋㅋㅋ"
.. 잉? 뭣이라?
"내 인생에서 너한테 사주 볼 게 한둘이니? 애 이름도 지어야지, 아주 많지 ㅋㅋ"
결혼도 아직 안 한 사람이 애 낳을 생각 하며 그때 줄 것처럼 간명비를 이야기해서 어이없었습니다. 제게 궁합 봐달라고 요청하면서 가격 딜까지 한 사람이 다음에 낸다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심지어 배신감까지 들었습니다.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궁합을 보고 있는 찰나에 제 정성과 시간, 노력이 무시받는 기분이었어요.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제가 아닙니다. 아시는 분은 아실 테지만.. 야무지게 할 말은 하는 성격이죠. (ㅎㅎ) 불편한 마음을 최대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으로 가리며 한쪽 어금니를 꽉 물었어요. 저는 이전에 간명비 할인해 달라고 해서 깎아 준 것부터 요목조목 이성적으로... 최대한 감정 섞지 않고 설명했습니다. 이어지는 그의 답변입니다.
"알았어, 지금 바로 보낼게~~"
진작 보낼 것이지, 사람을 돈 가지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상한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서운함을 더 증폭시키는 말 한마디가 또 나오네요? 역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가 보군요?
"그럼 앞으로도 좋은 금액으로 부탁해 ㅋㅋ"
다음번엔 그냥 다른 사람에게 사주 보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그냥 궁합 다른 곳에서 보라고 돈 보내지 말라고 하려다가 똑똑하고 마음 넓은 제가 참기로 했습니다. 역시 상처는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받나 봐요. 애초에 깎아달라며 요청하지를 말던가, 친했다고 생각한 사람과 돈으로 엮여 쪼잔하게 굴고 싶지 않은데 말이죠.
원래 이 사람은 사주를 믿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공부 초반 당시에 처음 사주 본다며 그의 사주를 풀어준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부터 너무 잘 맞다고 그의 친구 사주까지 갑자기 전화해서 봐달라고 했던 사람이에요. 이후 본인이 이직할 때도 다른 회사로 가도 될지 말지 조언도 제게 구했고요. 그렇게 필요할 때마다 저를 찾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간명비를 다음에 주겠다니요.... 제가 공부하고 상담하고 있는 학문과 직업에 대한 가치를 떨어뜨리는 발언이 참으로.. 열받고 섭섭했습니다.
제 잘못도 물론 있을 거예요. 전에 너무 봐달라고 할 때마다 격의 없이 봐주긴 했었죠. 어쩌면 이 과정도 필요한 거라 생각합니다. 실은 사업자등록까지 한 이유 중 하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제는 무료로 사주를 봐주지 않겠다는 의미도 내포한 셈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존중받지 못할 줄은 몰랐습니다.
조만간 만나는데 과연 어떤 말들을 주고받을지? 기대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