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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Apr 11. 2024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반갑다 친구야

시할아버지의 빈소를 지키다가 마지막 유골함을 모시는 날이었다. 납골당 1층 로비에서 가족들과 직원의 안내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낯이 익은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나는 긴가민가한 상태로 2층 납골당으로 향했다. 그 남자는 익숙하게 유골함을 납골당에 안치시키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그의 절도 있는 목소리와 행동에 따라 조용히 할아버지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목소리만 들었을 때는 내가 알던 목소리가 아니었는데 의식이 점점 진행될수록 본인의 진짜 목소리가 마지막에 나왔다. 그때 확신했다. 왠지 친구일 같았다.


가족끼리 납골당에서 할아버지를 좀 더 기리는 시간을 보내다가 1층 사무실로 내려왔다. 그 친구가 우리를 배웅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가족들이 화장실을 가는 틈을 타 나는 그 친구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혹시 OO이 맞아요?"

"혹시 너 다인이야?"


그제야 우리는 안심한 듯 환하게 웃으면서 '네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친구도 가족들 사이에서 나를 처음 봤을 때 긴가민가했다고 한다. 우리가 대화하는 걸 본 가족들도 "친구라고?" 하면서 신기해했다. 순식간에 남편과 시댁 식구들까지 전부 친구에게 소개하는 자리가 되었다. 친구는 "결혼도 하고 잘 살고 있었네!"라며 반가워했다.


그 친구와는 초, 중, 고를 같이 했지만 1대 1로 친하다기보다는 같이 어울려 다녔던 친구였다. 학원만 같은 반이었지 학교에서는 같은 반을 한 적은 없었다. 고등학교 때 과학 발명 동아리를 했었는데 걔도 들어와서 적잖이 놀랐지만 당시에는 그러려니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랜 시간 동안 같은 공간에 있었던 친구였다.


지난 추억을 되새겨보니 수능 끝나고 친구 몇몇과 첫 소주를 같이 나눠마신 사이이기도 했다. 대학교 1~2학년 때까지는 친구들 모임에서 가끔 만난 것 같은데 기억도 나지 않는 이런저런 이유로 멀어졌다. 나중에 만나고 싶었을 때는 내가 핸드폰 번호도 바꿨고, 이미 때는 늦은 것 같아 연락해서 만나자고 할 용기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 만날 이유가 생긴 것이다.


"야 너 진짜 하나도 안 늙었다"

"야 너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바로 알아봤지!"


안 본 지 14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어색함 없이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했다. 누구누구는 잘 지내냐 하면서 다음엔 다른 친구들과 한번 뭉치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할아버지 유골함을 안치시키는 일을 옛 친구가 해준 게 뭔가 마음이 놓였다. 확대해석 같지만 할아버지께서 친구와의 우정을 다시 이어주는 것도 같았다.


할아버지도 그립고, 옛 친구들도 그리워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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