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으로
나는 그동안 네이버 블로그를 위주로 개인적인 글을 올렸었다. 목록명도 ‘사사로운’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지극히 사적이고 쓸모없어 보이는 일상과 내면의 소리를 담았다. 그게 4년 전부터였다.
그러던 중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브런치는 심사를 거치면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이 주어졌다. 때마침 그때 나는 단행본으로 연애 실용서를 냈던 시기와 맞물렸다. 난생처음 출판사나 강연 업체에서 “작가님” 소리를 듣기 시작해서 어깨에 작가 뽕이 들어갈 때였다. 이런 플랫폼에 내가 빠질 수 없지! 하며, 블로그에 써둔 글로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다. (재밌는 사실은, 여섯 번 만에 합격했다는 점이다) 그 이후로 간간히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한다는 건,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것과는 결이 달랐다. 브런치는 우선 광고의 개념이 없다. 또한 이웃이 아니라 ‘구독자’였다. 내 글을 구독한다라, 읽는 이들을 위해 글을 써야 한다는 왠지 모를 책임이 생겼다. 블로그는 상업적 목적으로 이웃을 신청하거나, 무분별한 좋아요, 그리고 요새는 AI로 보이는 댓글이 판을 치는 반면, 브런치는 적어도 글에 진심인 사람들이 더 많아 보였다.
브런치의 글을 구성하는 법 중 ‘매거진’은 책 한 권을 미리 보기 해주는 버전 같았다. 블로그에도 목록 설정을 할 수 있지만 브런치의 ‘매거진’이란 단어 자체가 주는 매력이 달랐다. 내가 정한 매거진 명으로 나만이 할 수 있는 깊이 있는 글을 쓰고 싶은 느낌이 든달까. 또한 매거진에 글들이 쌓이면 나중에 ‘브런치북’으로 엮어 결과물을 낼 수 있다. 그러면서 책의 내용과 추천 독자를 설명하는 과정은, 마치 출간기획서를 쓰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쓴 글을 한 권의 온라인 책으로 발행할 수 있다는 건, 벌써 이북으로 출간하는 성취감을 안겨주었다.
이렇게 쓴이를 위한 브런치의 매력과 장점이 많지만 이상하게 모를 불편함도 있었다. 이전에 블로그에서 자유롭게 휘갈기던 글쓰기가 브런치에서는 되지 않았다. 따라서 나의 경우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 중에서 ‘(내가 생각할 때) 읽기에 괜찮고 글의 길이도 충분한’ 글 위주로 추려서 브런치에 발행해 왔다. 그래서 블로그 이웃들 중에서 브런치 구독자가 겹치는 경우엔 같은 글을 두 번 보게 될 수도 있다. 이웃과 구독자 수가 많지 않기에 큰 영향은 없겠지만, 그만큼 블로그의 글 중에서 ‘고르고 또 골라서’ 브런치에 올리게 된다. 뭐 여기까지만 보면 글쓰기에 큰 문제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2년 전부터 블로그를 통해 사주 상담을 업으로 하고 있다. 역학인으로서의 배움과 깨달음의 글을 올리긴 하지만 그보다도 고객님들이 작성해 준 사주 상담 후기 글이 이제는 메인으로 자리 잡았다. 카카오톡, 메일, PDF 형식으로 글을 통해 사주 상담을 하고 있는데, 나도 업으로 지속시켜야 하므로 후기 글도 올리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글로만 가득 찼던 네이버 블로그는 점차 광고도 붙게 되면서 ‘상업적’으로 바뀌었다.
쓴이와 역학인의 삶, 두 가지 일을 하는 건 즐겁고 만족스러운 삶이지만, 그걸 하나의 공간에 두는 게 어느 순간부터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상담 후기를 쓴 뒤 사적인 글을 올리려 하면 어색하고,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내 상호명을 검색해 들어와 글을 보고 내가 기록했던 일들을 ‘아는 체’ 했던 경험이 많아지자(특히 좋지 않았던 일)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는 더는 올릴 수 없겠구나 싶었다.
개인적인 글을 올리기 어려워진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글을 대하는 내 태도의 변화였다. 블로그에 자유롭게 글을 올리는 건 좋지만, 플랫폼에서 주는 자유로움 속 편안함에 취해 글을 대충 쓰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더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주제도, 어느 순간부터는 ‘썼으니까 됐지’ 하는 마음으로 넘겨버렸다. 더 나아갈 수 있는데, 더 사유할 수 있는데, 그냥 그대로 놔두는 것이다. 편안하게 힘을 빼면 이 글, 저 글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느새 쓰기에 손을 놓아 버린 셈이었다. 그 안락함에서 이제는 벗어나고 싶었다.
다른 플랫폼을 염두에 두지 않은 건 아니다. 이전에 가끔 비밀 일기장처럼 티스토리 블로그도 사용해 봤다. 하지만 아무리 비밀스러운 이야기라도 방문자 수 0명에, 나를 모르는 불특정 다수로부터 공감받고 싶은 이야기를 써도 봐주는 이가 없어 자연히 손이 잘 가지 않았다.
스레드에도 계정이 있다. 그런데 글의 용량이 정해져 있어 입사지원서의 ‘성장과정을 500자 이하로 설명하시오’처럼 쓰고 싶은 글을 500자 이하로 압축할 수 없다는 면에서 탈락이었다. 인스타는.. 음... 더는 말을 하지 않겠다.
반면 브런치는 쓴이의 정체성을 일깨워준다. 그런데 아직 그 정체성이 강하게 자리 잡혀있지 않은 나로서는 어떤 글을 써야 할지부터 막막했다. 그 순간 나는 ‘그래, 바로 이거지!’ 깨달음을 얻었다. 이런 디테일한 고민을 하고 싶어서 지금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글은 브런치에서 차근차근 풀어갈 생각이다.
스스로에게 선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성미 덕분에 글로 정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