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내 편일까, 남의 편일까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 붙여서 남편인 건가요

by 김다인

저녁을 먹으러 나갈 준비 중이었다. 집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고, 배도 고파 남편이 카카오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현관문을 나서려는 순간 근처 택시가 바로 잡혀 생각보다 빨리 택시가 도착했다.


아파트 정문에는 어린이집 버스나 차량이 설 수 있는 승강장 같은 공간이 있어 택시를 부르면 보통 그곳으로 온다. 우리 집은 정문과 가까운 동이라 동에서 나와 모퉁이를 돌면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엘리베이터도 탈 수 있는데 마침 엘리베이터가 잡혀 있었다. 한 여성이 유모차를 끌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중이었고 우리도 뒤 이어 탑승했다


택시가 도착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나는 빨리 내리려고 문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눈앞에 택시가 보여 그대로 뛰어 나갔다.


그런데 뒤통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자기야 왜 먼저 내려. 먼저 내리면 어떡해.”


순간 나는 당황했다. 뛰어가던 발을 멈추고 뒤따라 나오는 아이 어머님께 죄송하다고 사과드렸다. 그분은 수줍게 웃으며 “아니에요, 괜찮아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러곤 택시를 탔다.


그런데 무언가 기분 나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물론 내가 잘한 행동은 아니었다. 엘리베이터에 유모차나 휠체어가 있으면 배려해서 늦게 내려야 한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도착한 택시에 꽂혀 있었고, 이미 문 앞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던 터라 큰 무례를 범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화가 나는 건 남의 편의 말인데, 그것도 ‘공개적인’ 말 때문이었다. 내가 잘못하거나 부족한 점이 있으면 누구라도 내게 지적할 수 있다. 나도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사람이다.(기분은 좀 상하겠지만 잘못은 인정한다.) 그런데 아이도 있고 아이 엄마도 있는 자리에서 내 잘못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건 교정이 아니라 비난으로 들렸다.


“나도 잘한 건 없어. 그건 인정해. 그런데 그렇게 다른 사람 앞에다 대고 할 소리야? 나중에 따로 말해도 되는 거잖아.”


“잘못했으니까 그분께 사과하라고 일부러 말한 거야. 그리고 사과 바로 했으니 됐잖아. 뭐가 문제야?”


“…”


말문이 막혔다. 사과하라고 일부러 말한 거라니. 나는 다시 반박했다.


“부모가 아이를 훈육할 때 왜 공개적인 곳에서 안 하는지 알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잘못이 공식화되면 그때 수치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야!

그 아이는 평생의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거라고!(난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지만..나도..!)”


조금 멀리 간 논리이긴 하지만 큰 틀에서는 비슷하다고 생각해 아이 훈육 이야기를 꺼냈다.(참고로 우리는 아직 아이가 없다) 그럼에도 남의 편은 잘못된 건 고쳐야 하고 내가 한 행동은 무례하다고만 말했다. 그래서 나도 그건 잘못된 거 알고 죄송하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그거 내가 왜 먼저 내리냐고 말했기 때문에 자기가 깨닫고 사과한 거지,

안 그랬으면 사과를 안. 했.겠.지.”


내 말의 뜻은 그 정도로 내가 잘못을 인지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걸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정당성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벽이랑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 아침 먹고 점심도 거른 상태라 배가 많이 고팠는데,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싶지 않은 감정까지 올라왔다.


“진짜 계속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나 집에 간다.”

“왜 이래.”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잠시 후 그때까지 조용히 운전만 하시던 택시 기사님이 입을 여셨다.



“오늘이 정월 대보름이에요. 우리 때 정월 대보름이면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면서 밥이랑 나물 반찬을 나눠 먹었답니다.~~~~~~~(샬랴샬랴롸롸롸)”


갑작스러운 ‘정월 대보름’ 이야기였다. 무슨 말인가 싶어 백미러로 기사님의 얼굴을 보니 우리 부모님 또래쯤 되어 보였다.


“아 오늘이 정월 대보름이었군요. 몰랐어요. 호호호호호호호호....”

나는 남의 편에게 열을 내던 목소리를 내려놓고 최대한 부드럽지만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지금 가시는 곳이 상호를 보니 이자카야인가요?(야끼니꾸 집이었다) 오늘 정월 대보름인데 즐겁게 맛있는 거 드셔야지요”


“네 그러려고 하는데…” 남편이 대답했다.


“들어보니 옛날에 저도 아내와 비슷한 걸로 많이 싸웠어요.

우리 아내도 남들 앞에서 ‘자기편’을 안 들어주면 그렇~게 서운해하더라고요”


“…!”


그 말을 들으니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남편은 아차 싶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른 거 돠~ 필요 없어요. 내 아내 말이 다 맞고 최고예요.

그것만 지키면 가정이 평화롭답니다.”


“아 제가 그걸 놓치고 있었네요!”


자주 놓치는 남편이 멋쩍게 대답했다.


그 순간 내 화의 근간을 명확히 알게 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 앞에서 잘못을 지적당한 것 때문에 화가 난 줄 알았다. 물론 그것도 일정 부분 맞지만, 배우자인 남편이 나를 보호해 주는 게 아니라 공격하는 느낌을 받아 서운했던 것이다. 내 잘못을 둘이 있을 때 말했더라면 나도 차분히 인정하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내 편이 내 편 같지 않아 섭섭함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어느덧 택시는 식당 앞에 도착했다.


“두 분 맛있게 식사하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기사님도 즐거운 저녁 되세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나는 기사님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실은 택시에서 내리면 식당에서 2차 잡도리를 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에게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다만 딱 한 가지, 늘 내 편이 되어주고 공감해 주고 인정해 주는 것. 그것뿐이다. 연애할 때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남편은 여전히 그게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고 한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기사님의 말 한마디가 쌓여 있던 내 불만의 핵심을 단번에 정리해 주었다. 그 기사님은 우리 가정의 평화를 지켜준 귀인이었다.


가게에 들어가 고기를 주문한 뒤, 마주 앉은 남편을 보고 말했다.


“자기 나한테 뭐 하고 싶은 말 없어?”


“음..

내가 자기 생각 안 하고 고쳐 주려고만 해서 미안해. 그게 진짜 자기를 위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네.”


“나도 내가 잘한 게 없는데 화낼 건 아니었어. 감정이 앞선 것 같아. 미안해”


앞으로 비슷한 문제가 생기면 이날의 택시기사님을 언급할 것이다. 우리 부부만의 다툼 해결 치트키가 생긴 것 같다.


남편은 이날 카카오 택시 기사님께 서비스 별점 다섯 개를 드렸다고 한다.

⭐️⭐️⭐️⭐️⭐️




작가의 이전글초보운전자의 운전을 안 할 핑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