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인 직무와 비과학적인 위로 사이에서, 내가 점을 보는 이유
“4월엔 취업합니다.”
그때 타로 리더는 그렇게 말했다. 얼굴은 단호했고, 카드는 예쁘게 깔려 있었다. 나는 믿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믿었다.
그게 3월이었다. 그 뒤로 나는 수십 군데 지원서를 냈고, 서류 통과 몇 개, 면접도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지원자님의 역량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 회사 상황상 뽑을 수 없어 미안하다"는 이메일, 혹은 연락 없음.
그러다 한 달이 지나고 그 리더의 말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다시 유튜브에서 타로를 뽑았다. 왜 또 뽑았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사람마다 절망을 흡수하는 패턴이 있다. 어떤 사람은 잠을 자고, 어떤 사람은 산을 오른다. 나는 타로를 뽑았다. 그러면서 속으로 질문을 했다.
‘나 이제 뭐 해먹고 살아야 해?’
타로는 말이 없다. 그 대신 모호하고 상징적인 답변을 보여 준다. “끝났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같은 식의 말들. 당연히 확신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안에서 작은 힌트를 찾는다. 가끔은 자극을, 가끔은 정당화를.
누군가는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기도 한다.
그 말도 맞다. 하지만 의미 없으면 안 되나? 우리는 결국, 어떤 식으로든 견뎌야 하니까.
나는 지금도 가끔 뽑는다. 다음 주에는 사흘 연속 회사의 면접이 잡혀 있다.
또 뽑았다. 결과는 흐릿했다. ‘기회가 온다’는 카드와 ‘주의가 필요하다’는 카드가 동시에 나왔다.
그러자 문득 웃음이 났다. 내가 PR을 하며 자주 썼던 단어들이 타로 카드 안에 있다는 게 웃겼다.
기회. 위험. 판단. 선택. 메시지.
결국 모든 건 해석의 문제였고, PR도, 인생도, 타로도 그 점에선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타로는 맞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계속 뽑는다.
그날그날의 방향을 잡기엔, 꽤 괜찮은 나침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