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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산 가까운 산(32)

by 김헌삼



노추산에 낙엽 눈 날릴 때



같은 이야기를 두 번만 들어도 곧 머리가 아프고 짜증이 나는 별나다면 별난 성격 때문인지 먼 산을 찾아 나설 때도 이왕이면 가보지 않은 새로운 곳을 택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자연 그 대상이 이름을 갖추고 있어도 지명도가 낮은 산일 때가 많다.

노추산을 찾아가게 된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하였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산으로 들어가는 정선 땅이 온갖 훤소(喧騷)와 잡답(雜沓)을 훌훌 떨쳐내고 정선아리랑의 구성지고 한 어린 가락처럼 절절한 외로움과 한적함을 온몸으로 체험 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강원도 오지 중의 오지이기 때문이었다.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이 산과는 멀지 않은 거리에 영동고속도로가 지나가고 태백선이나 영동선과 접속되는 정선선의 마지막 기차역 구절리가 산 입구 부근에 위치한다. 그렇다 하여 접근하기 수월하다고 지레짐작했다가는 큰 오산이다. 주변에 1천 미터가 넘는 발왕산(1,458m), 가리왕산(1,560m), 석병산(1,055m)이 들어서 있다. 그 사이를 끼고 흐르는 아오라지천을 따라 굽이굽이 돌자면 직선으로 잡아 짧게 보이는 거리를 두 배 또는 세 배 이상 멀게 가야 하는 점 때문이다. 다만 그 높은 산마다 곱게 물든 절경에 지루한 줄도, 고개를 한껏 치켜들고 올려다보느라 목이 뻣뻣해 와도 그것을 잊을 뿐이다.

깊은 산속까지 철도가 놓여있지만, 이곳을 오가는 열차는 하루에 고작 한두 번이고 산행과 연결하자면 시간이 잘 맞지 않아 이용할 일은 별로인 듯하다.

노추산(魯鄒山 1,322m). 산 이름에서 중국의 냄새가 풍기듯이 공자가 태어난 나라 노(魯)와 맹자의 나라 추(鄒), 두 자를 합성해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지만 왜 이 두 사람이 산 이름에 연루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미흡하다. 정상 턱 밑에 세워진 이 층집 모양의 여각(旅閣) 이성대(二聖臺)라는 곳에서 의상대사를 비롯하여 설총, 율곡선생이 한 때 수학했다 하니 학문숭배의 표시로 두 거유(巨儒)의 나라를 지칭한 것인가 짐작해 본다.

우리는 산으로 진입하는 절골을 약 2,3킬로 앞둔 동네 구절본동에 마지막으로 정차하여 간단한 볼일을 봤다. 산행 중 먹을 간식을 보충하기도 하고 장거리 승차로 굳어진 몸을 풀거나 흐트러진 매무새를 추스르는 등 마무리 점검시간을 가졌다.

아무리 한번 스쳐 지나가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나그네 길이라 해도 구절본동의 폐허가 되다시피 한 모습을 접하고 무심할 수는 없다. 깊은 산골짝까지 철길이 놓이게 된 것이나, 동네가 꽤 넓게 차지하고 있는 것만 봐도 한때 이 고을을 끼고 대규모의 탄광이 개발되고 이에 관계되는 사람들로 시끌벅적해지고 지역경제 또한 활기 있게 돌아갔을 것이라 짐작한다.

교회도 두어 곳이나 눈에 띄고 광업소 관련 직원 숙소인 듯한 연립형 주택 등 무연탄 먼지를 뒤집어쓰고 시커메진 집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으나 그것은 다 과거 번잡했던 시절 흔적인 듯하다. 지금은 나다니는 사람조차 눈에 띄지 않고 대부분 텅텅 비어 을씨년스러운 정적만이 감돌고 있다. 영고성쇠의 한 표징이랄까? 먹을 것이 있으면 꼬이고 볼 장을 다 보면 미련 없이 떠나가는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것이련만 그것이 인생무상으로서, 하나의 아픔으로서 마음에 닿는 감회를 어쩌지 못하겠다.

산행 초입 대승사를 지나 남동쪽 사자목으로 올라타 능선을 힘겹게 오르면서부터 이런 쓸데없는 잡념들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무덤이 있는 지점 아래에서 능선을 벗어나 샘터 쪽으로 들어서며 새로운 세계가 전개되고 있었다. 아마 1천 고지쯤은 되지 않았을까. 키가 껑충 커진 나무들, 그래서 더 의젓해 보이는 떡갈나무들이 꽉 들어선 이곳에 가을은 깊어 있고 물든 잎들은 대부분 떨어질 채비가 이미 끝난 상태인가. 간헐적으로 불어 닥치는 바람이 휘파람 소리를 길게 뽑으며 휘이익 지나가면 그때마다 나뭇잎은 서걱서걱 소리와 함께 새까맣게 떼 지어 내려앉는 비둘기들의 날갯짓처럼 난무하며 떨어져 쌓이고 있었다. 그것은 세찬 바람결을 타고 온통 하늘에 폭탄처럼 흩어졌다 뒤덮는 낙하여서 비록 일과성일망정 바라보는 마음이 강설(降雪) 보다 더 진한 감동으로 가슴에 와닿는 것이었다.

나뭇잎. 떨어지는 나무의 잎들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우리도 언젠가는 저들과 같이 쇠락하여 결국은 생명줄이 끊겨 버릴 것을, 그래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영원한 소멸의 길로 잦아들 것을 시사하는 것인가. 위세 등등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자도 결국 그늘지고 후미진 곳에서 힘없는 손 벌리고 구걸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백 년도 채 되기 전에 이 세상에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지금 막 바람에 실려 날리는 저 나뭇잎들은 보여주는 듯하다.

이성대는 탁 트인 곳 높이 위치하여 하늘에 뜬 달처럼 뚜렷하였으므로 줄곧 산행의 목표 구실을 했다. 이성대로 건너기 직전에 너덜지대가 넓게 차지하고 있었으며 널려있는 바위 사이사이에 고만고만한 돌탑이 누군가 치성의 표상으로 군데군데 쌓여있다. 아마 이성대에 유숙하며 심신을 수련하는 사람들의 기원일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여각 곁으로는 위장병에 좋다는 약수가 긴 대롱을 통하여 쫄쫄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기에도 역시 자연석을 골라 사람 키 정도로 쌓아 올린 돌탑이 시선을 끌었으나 그때뿐이다. 다만 갈참나무 숲을 지나며 큰 눈발처럼 또는 비상하는 새들처럼 날리고 떨어져 쌓이고 또 발에 차이던 나뭇잎들이 시종 머릿속을 맴돌며 가슴에 뻐근함으로 오래오래 남아있다.

이성대의 대롱 물을 마시고 한 차례만 더 용쓰면 정상 능선에 닿는다. 산을 오르며 항상 정상을 염두에 두는 것은 정상에 도달함으로써 힘겨운 일은 대충 끝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상 부근의 능선을 걸으며 푹푹 빠지는 낙엽을 밟았고, 조그만 바람결에도 우수수 떨어지던 가련한 나뭇잎의 인상과 함께 그때의 낙엽 밟히는 소리가 오랫동안 귓전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낙엽 따라가버린 사랑, 낙엽과 함께 가버린 세월, 낙엽처럼 간 사람들을 떠올리고, 페이터의 산문 명구(名句)를 다시 읊어 본다.

「잎, 잎, 조그만 잎, 너의 어린애도, 너의 아유자(阿諛者)도, 너의 원수도, 너를 저주하여 지옥에 떨어뜨리려 하는 자나, 이 세상에 있어 너를 헐고 비웃는 자나, 또는 사후에 큰 이름을 남긴 자나, 모두가 다 한 가지로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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