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어떻게 먹고살았나
잠을 자지 않고는 여행이 어렵겠지만, 먹지 않고는 우리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여행 중이라도 하루 세 때 끼니를 꼬박꼬박 때워야 하는 것은 최우선의 과제였다.
6명이 레스토랑에서 잘 먹으면 100달러 내지 150 달러 가량이 들어갔다. 서비스를 받는 보통의 식사로는 5,60 달러, 햄버거나 샌드위치 등 간이음식으로는 2,30 달러가 들었다. 17일간 삼시 세끼를 모두 합치면 50번쯤 되는데 이것을 모두 사 먹는다면 평균 60 달러만 잡아도 3천 이상은 써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중 단지 8끼만 사 먹었을 뿐이다. 나머지 42 끼니 가운데 아침 6일간은 숙소에서 무료 제공하여 그것으로 때웠으니 나머지 36번을 모두 전기밥솥과 쌀과 준비해 간 밑반찬이나 월마트 알버트슨 등 할인점의 슈퍼에서 구매한 즉석 부식을 싸 들고 다니며 해먹은 셈이다.
숙소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식사는 컨티넨털 식이라고 해서 빵류와 커피가 기본이고 과일로 왜소한 사과나 오렌지 등과 주스, 인심을 조금 더 쓰면 우유가 있는 아주 간소한 것이다. 햄 소시지 베이컨 달걀 등 육류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그래도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식사에 필요한 시간을 단축하고, 마음대로 갖다 먹기 때문에 영양은 양을 늘려 보충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침은 간단해도 되지 않는가.
그동안 매식한 비용이 750달러가 채 안 되고 만들어 먹기 위하여 구매한 재료비까지 쳐서 약 1천 달러쯤이 식비로 지출되었다면 2천 달러 정도는 절약한 셈이다. 이는 온전히 마나님들 덕이다. 고마움과 미안한 생각으로 아내들을 앞에 모셔 앉혀놓고 무릎 꿇어 절을 하고 또 해도 부족할 지경이다.
우리가 17일간 여행하면서 총 들어간 비용이 공동경비만을 따져서(실은 공동경비를 제외하면 따로 쓴 것이 별로 없다) 7천7백 달러 정도로서 한집 당 약 3백만 원, 인원으로 나누면 1인 당 1백5십만 원을 가지고 미국에서 보름 이상 산 셈이다. 다만 미국까지 왕복 항공임은 그동안 생활비 대부분을 카드로 결제하며 죽어라 하고 쌓아온 마일리지를 썼으니 여기서 비용이 크게 절감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아침을 사 먹거나 인 또는 모텔에서 제공하는 날을 뺀 8일간은 숙소에서 일어나면 남자들은 염치없이 언제 밥 먹으러 오라고 부를 것인가를 은근히 기다리지만, 여자들은 그사이에 점심 저녁용을 따로 싸 놓고, 아침을 또 해서 대었으니 얼마나 콩 튀 듯 바빴을까는 보지 않았다고 모를 리 없다. 이 중에 아침만 덜어도 얼마나 편하게 느꼈을까?
이런 날은 자연히 다음 목적지로의 출발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빨라도 8시 반, 늦을 때는 10시 가까이. 그 많은 짐을 전부 내렸다가 또 싣기를 매일 반복했음은 물론이다. 나중에는 요령이 생기고 호흡이 잘 맞아 마치 기계같이 짧은 시간에 척척 잘 되기는 했지만.
시카고를 떠나 아이오와주와 일리노이주 접경도시 데이븐포트(Davenport) 부근에서 I-80을 만날 때까지의 약 140마일가량 되는 I-88 구간이 여행을 끝낼 때까지 유일하게 고속도로비를 지불한 곳이다. 40센트 두 번 95센트 한번 모두 세 차례 동전을 준비하고 있다가 화장실의 남자 소변기 모양의 스틸 통 속에 흘리지 않도록 휙 집어던져야 뒤탈 없는 통과가 된다. 심심할 만하면 돈을 집어넣도록 하면서, 지루할 만하면 있어야 할 레스트 에어리어는 나오기를 아무리 기다려도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7,80마일쯤 되었을까? 딕슨(Dixon) 방향 출구(exit)에서 차에 가솔린도 넣고 쉬기도 하자고 하이웨이를 이탈했는데, 이것이 잘된 일이었다. 딕슨은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온 지 얼마 안 되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소년 시절에 살던 집이 위치하는 곳으로 마침 일반에 공개되고 있었다. 레이건의 부모는 세 살 위의 형 네일(Neil)과 9살짜리 레이건을 데리고 이곳 「816 S. Hennepin」 2층짜리 목조주택으로 1920년 이주해와 23년까지 살았다고 한다. 이날로부터 일주일 후 레이건이 93세를 일기로 별세했을 때, 이곳 TV에 우리가 방문했던 이 집[Reagan's Boyhood Home]이 소개되는 것을 보고 기억을 새롭게 하기도 하였다. 그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거실 침실 카우보이모자 등을 둘러보고 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나니 마침 점심시간이 가까워 왔으며 이미 표지판으로 보아둔 르엘 공원을 찾아간다.
때가 되어 공원을 찾아가면 거기에는 십중팔구 피크닉 에어리어가 있고 또한 어김없이 우리 6명이 앉아서 식사하기에 딱 맞는 규격의 간이용 식탁이 준비되어 있다. 공기 좋은 숲 속 호숫가 무심코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나무 그늘 아래에서 갖는 식사는 비록 한정되고 별 변화 없이 매번 올라오는 메뉴들이었지만 밥맛이 좋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여의치 않았던 하루 이틀을 빼놓고는 점심은 항상 그것이 국립공원(National Park)이든 주립공원(State P.)이든 또는 때로는 시립공원(City P.)에서조차도 피크닉 에어리어를 어김없이 찾아들어 이런 식의 식사를 했다. 저녁도 가능한 한 야외를 선호했으니 이것은 여행 중 식사에 관한 우리의 정형화된 라이프스타일이 되었다 하겠다. 몇 번 레스토랑이든 웬디스 등 간이음식점 신세 진 것을 빼고는, 보름 이상 이렇게 먹고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