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회동의 마지막 날
6월 11일. 어떻게 하다 보니 벌써 회동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귀국 스케줄은 각자 며칠씩 더 여유가 있었다. 제일 늦게 온 철호네가 제일 먼저 떠나는데, 그래도 15일이라니 출발하는 날을 뺀다 해도 사흘의 여유가 있다. 우리 집사람과 나는 불가피한 볼일이 서로 엇갈려 아내는 15일 먼저 떠나기로 하고 나는 19일의 처조카 결혼식에 참석하고 난 이튿날에 귀국 비행기를 탄다. 동일네도 20일경으로 예약해 놓은 상태여서 가칭『6인의 미대륙 여행단』이 오늘 해단한다 해도 3, 4일 또는 그 이상 미국에 체류하게 된다.
그래서 스케줄을 변경하여 한 이틀 더 연장하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도 나왔으나 자동차 반납기일이 오늘 5시까지이다. 그것이야 연장하면 되겠지만, LA에는 각자 번거롭지만, 찾아보면 반가워할 친지나 친척들이 있다. 여기까지 왔다가 모른 체하고 그대로 가버리면 아쉽고 몹시 서운해할 것이어서 원래 계획대로 LA로 가서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한 것이다.
엊저녁 내가 방으로 들어온 시각이 11시 반쯤 되었을까. 그래서 12시쯤 잠들었나? 아침에 깨어보니 5시 40여분. 벌써 환한 아침 햇살이 창가에 와 있었다. 살그머니 빠져나와, 어젯밤에 많은 사람 틈에 끼어서 걸었던 길을 밝은 낮에 다시 더듬어본다. 로비의 카지노는 완전한 파장 분위기이지만 그래도 아직 잃을 돈이 남아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꽤 몰려있다. 호텔 밖은 어젯밤과는 판이하다. 나처럼 어슬렁거리는 사람이 없다. 북적이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잠적해 버리고 가끔 간편한 옷차림으로 조깅하는 중년, 시원하게 뻗쳐 나오는 호스 물로 건물 앞을 청소하는 남자들, 잡역 일을 위하여 일찍이 출근길에 나서는 것으로 보이는 무리만이 거리를 채우고 있는 듯하다. 나도 걸음을 빨리해야 부산하게 움직이는 라스베이거스 아침 풍경의 조화를 깨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다. 속보로 바꾸니 어슬렁거릴 때는 모르던 거리감이 느껴진다. 벨라지오 호텔까지 꽤 먼 거리를 걸어갔던 것이다. 어제와는 달리 그 거리를 다시 터벅터벅 되돌아 걸어와야 하니 다리가 제법 뻐근하다.
8시 반경 조찬을 위하여 일행과 합류하여 다시 밖으로 나와 미리 봐둔 한식집으로 들어간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서 인지 손님이 우리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미국에 온 지 한 달이 되었는데 한식 레스토랑을 찾아들기는 이게 처음이다. 내시빌에서 딸 졸업 뒤풀이를 할 때는 한인이 운영하는 집이었지만 옥호와 메뉴는 몽골리안 바비큐였다. 미국의 레스토랑은 1인분으로 주는 양이 많다고 해서 해장국 4인분을 시켜 여섯 명이 적당히 나눠 먹기로 했는데 한국에서의 것과 똑같이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맛이다. 찌뿌드드하고 막혀있던 신체 기관들이 일시에 확 뚫려 잃었던 활력을 되찾은 느낌이다.
이제 우리가 라스베이거스에서 더 할 일은 없으므로 최종적으로 짐을 꾸려 출발하려니 10시쯤이다. 여기서 LA까지는 273마일 약 440킬로로 서울과 부산 간 정도에 불과하여 오늘 중으로 일찌감치 들어가는데 전혀 무리 없는 거리이다. 길도 단순해서 I-15를 끝까지 타고 가면 된다. 캘리포니아로 진입하는 데는 불과 40마일. 그런데 라스베이거스를 벗어나니 대지는 왜 이토록 황량하고, 목 타는 듯한 모습인가. 라스베이거스와 로스안젤레스 사이에 쉬어 갈 만큼 타운을 형성하고 있는 곳은 베이커(Baker)와 바스토우(Barstow) 뿐인데 바스토우는 너무 멀리 떨어진 곳이어서 베이커에 기착하여 자동차에 가솔린도 주입하고 조금 이른 듯하지만 점심도 때우기로 했다. 마침 주변에 버거킹이 있어, 들어가니 마치 인종 시장 같다. 테라스에는 흑인들이 여러 명 포진하고 있어 흠칫했으나 다행히 안쪽에는 백인을 비롯하여 일본 중국 거기에 우리가 가세하여 극동의 빅 3가 다 모였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간이음식점은 가족 단위의 남녀노소가 함께하여 북적이며 눈 맞추고 이야기 나누며 웃는 모습들이 활기 넘치고 사람 사는 동네 같아 좋다.
식사 후에는 유일하게 로밍해 온 철호의 핸드폰이 위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시간이었다. 세 집과 관련한 연락사항들이 이 한곳에 집중하여 그러잖아도 날씨가 더운데 불이 날 지경이다. 어디쯤이냐? 여기가 어디지? 베이커 좀 지났다고 해! 베이커에서 밥 먹고 지금 막 출발했어. 야, 그럼 두 시간 반쯤 걸리겠다. 으음 그래? 그럼 이따가 봐. 이런 대화들이 잡다하게 오고 가다가 맨 처음 결정된 것이 LA에 도착하면 우리끼리 빠이빠이할 장소였다. 철호의 저쪽 친구와 조율한 결과 장소를「한남슈퍼」 앞으로 정하고 그 위치를 받아 적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지금 오고 있는 길 있잖니? 거기서 얼마쯤 오다 보면 무엇이 나오는데 거기서 라이트 턴을 하고 몇 블록쯤 오면 무슨 길이다. 왼편을 보면 무엇이 보이는데 그것을 끼고 레푸트 턴해. 거기서 한 10분가량 내려오다 보면 오른편에 「한남슈퍼」 입간판이 보여. 거기야. 그럼 조심해서 와.”
아마 줄거리는 이와 비슷한 내용의 설명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중 한 구간이 흥분한 나머지 설명하는 쪽에서였는지 불러 받는 가운데 그랬는지 누락되었던 것이다. 흔들리는 차 중에서 비교적 긴 통화를 하다 보니 사소한 착오가 있었고 그것이 큰 결과를 빚었다. 내려갈 만큼 가도 비치 스트리트인가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그간 해온 실적을 보면 이렇다 할 착오 같은 것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확신에 찬 나머지 어떤 오류가 모르는 사이에 끼어들 수도 있다는 것은, 추호도 생각 안 하고 막연하게 거의 다 왔을 것이라고만 고집하고 있었다. 도착하고도 남을 충분한 시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으니까 전화는 뻔질나게 걸려오고 우리는 '거의 다 왔다'를 반복하다가 이상이 있음을 눈치챈 것은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알고 보니 우회전 한 번이 빠진 것이어서 우리가 가야 할 길과 두 블록인가 떨어져 평행으로 한없이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나쳐도 한참을 더 가 있었다. 제 길을 찾아 다시 올라오려니 예상시간을 너무 초과하여, 나와서 눈이 빠지게 기다렸던 사람이나 그보다도 그 배후에서 목을 늘이고 애매한 시계만 자꾸 들여다보며 대기하고 있을, 더 많은 사람에 대한 미안함이 증폭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얼른 화장실이나 다녀오고 차 한잔도 못 나누고 겨우 한국에서 다시 보자는 말만 하는 둥 마는 둥 주고받고는 헤어져야 했다. 마무리를 으이샤 하는 기분 못 내고 흐지부지된 것 같다. 그래서 좀 허전하고 아쉬움이 없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17일간의 대장정을 보람되고 무사하게 끝낸 것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뒤늦지만 우리 생애의 한 기간에 많은 새로운 것들을 접하며 긴 여행을 한 기록이 지워지는 것 또한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