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횡단여행(27)

by 김헌삼

27. 지도를 들여다보며


길을 떠나자면 여행안내서나 다른 사람의 여행기록이 많은 참고가 됨은 자명하다. 여행 중에는 여러 가지 문의할 사항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때로는 잘 곳, 먹을 곳, 볼 곳을 예약하고 또 확인하여야 하는데 이때 이동통신이 큰 위력을 발휘한다. 있으면 대단히 편리하게 써먹는 것들이지만 없어도 불편을 감수하며 견딜만할 것 같다.

그러나 지도가 없다면 어떨까? 지도 없이 여행이 가능할까? 안될 것이야 없을지 모른다. 방향만 잘 잡으면 도로표지판이 명확하게 되어있으니, 이것을 보고 판단하여 못 할 것은 없지 싶다. 그러나 앞을 내다보는 여행, 계획성 있는 여행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계속 어둠 속을 뚫고 가듯 암담한 기분의 연속일 것 같다. 지도가 있어서 전반적인 여정 가운데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 앞으로 가려는 곳은 얼마 남았으며 얼마의 시간이 소요될 것인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도도 상세하고 완벽하게 만들어놓고 살고 있었다. 미국으로 출발하기 전 딸아이에게 메일을 띄워 한눈에 볼 수 있는 미국전도를 보내 달라 했더니 미국자동차협회(AAA)가 발행한 것이 송부되어 왔다. 5백7십만 2천 분의 1 축적으로 가로 90센티 세로 약 60센티 크기이나 가로로 열 번 세로로는 세 번 접힌 상태에서 편지 봉투 만하여 들고 다니기 간편하게 되어있었다. 나는 지도 보기를 아주 좋아하는 편이어서 이것을 출발하기 전부터 틈만 나면 펼쳐놓고 스케줄에 따라 우리가 갈 루트를 짚어보고는 했다.

여행 중은 물론 다녀온 후에도 무슨 바이블처럼 모셔놓고 접었다 폈다 하며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는 한다. 하도 여러 번 만져 이제는 접는 선이 갈라지기 시작하고 있다. 미국 전체나 여러 주를 연결하여 개괄적으로 볼 때는 이 지도를 펴놓는다. 국지적으로는 주 단위 상세 지도를 상대하게 되는데 대부분 백만 분의 1에서 5십만 분의 1의 축적에 한 장으로 되어있고 크기는 미국전도와 비슷하다.

네브래스카주 지도를 펴놓고 우리가 온 루트 I-80을 더듬고 있다가 모래알보다도 더 작은 글씨와 점선으로 표시된「MORMON PIONEER TRAIL」이 그랜드 아이얼런드에서 합류하여 상당한 구간 함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몰몬선구자들이 오마하를 떠나 후리몬트, 콜럼버스를 경유하여 이곳 강가에 진을 치고 머무른 곳이 몰몬유원지였구나 하는 추정도 가능하다.

시원한 산이 그리우면 콜로라도주 지도를 펼쳐놓으면 된다. 제1, 제2의 도시 덴버와 콜로라도 스프링스를 남북으로 잇는 I-25를 중심으로 서쪽 반은 높은 산악지대로 만 피트(3천 미터)가 넘는 봉우리가 수십 개는 되는 듯하다. 스키어와 알피니스트의 꿈을 한없이 펼칠 수 있는 곳이다.

유타주는 전 지역이 국립(National)이라는 말로 도배되어 있다시피 하다. 전체적으로 국립삼림지역(National Forest)이 많고 남부는 특히 공원, 기념물(Monument), 유원지(Recreation Area) 등 온통 국립공원 류로 점철되어 있다. 우리의 발길이 구석구석 가장 많이 들어간 곳이다.

지도는 대부분 무료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해도 무리가 아니다. 미국자동차협회(AAA; American Automobile Association)에 가입한 회원에게는 요구하는 대로 필요한 지역의 지도를 공급하기 때문에 미국에 있는 친지 중에 AAA멤버가 있으면 미리 필요한 부분을 말하여 구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여기서 발행하는 지도가 어느 정도까지 자세하냐 하면 내가 입수한 어느 지역지도 하나는 10만 분의 1 축적으로 길과 길 이름이 100퍼센트 나와 있는 정도로 상세한 것이었다. 미국의 길은 모두 이름이 있다고 생각해도 틀림없을 것이다. 그 길이 모두 표시되어 있으면 그 지도는 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한 장의 미국전도부터, 소 구역 단위의 완벽한 상세 지도까지 AAA는 구비해 놓고 있는 것이다.

주 정부 관계 부서에서도 자기네 주 지도를 발간하여 관내 후리웨이 휴게소(rest area)나 방문자센터 또는 숙박업소를 통하여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다. 우리가 거쳐온 주를 차례대로 보면 이리노이, 아이오와, 네브래스카, 콜로라도, 와이오밍, 아이다호, 유타, 애리조나, 네바다, 캘리포니아로 이어지는데 지도 인심이 가장 좋은 곳은 아이오와로 비쳤다. I-80상 아이오와주의 시발점이 되는 데이븐포트(Davenport)에서 네브래스카와의 접경인 오마하 부근까지 약 3백 마일 구간에 휴게소가 10개 정도는 되어있는 것 같았으며 그중에 우리가 들르는 곳마다 주(州) 지도가 충분히 비치돼 있어 아무 때 누구나, 필요하면 가져갈 수 있도록 해놓았었다.

앞에 말한 10개 주 가운데 이리노이, 아이다호, 애리조나, 네바다의 지도는 손에 넣지 못하였다. 이리노이는 I-88을 타고 서남방향으로 움직이는 동안 휴게소가 한 군데도 없어 지도에 대한 생각은 할 겨를조차 없었다. 아이다호는 사실 빼어버려도 무관할 지경으로 와이오밍에서 유타로 가는데 잠시 다리 역할을 한 것에 불과하다. 네바다도 라스베이거스만을 들렀을 뿐으로 지도를 찾아볼 생각도 안 했다. 그러나 애리조나는 잠도 카메론, 윌리암스 두 곳에서 자면서 비교적 관여를 많이 한 곳이고 상세한 지도가 필요할 때도 있어서 비치되어 있을 만한 관광장소나 모텔 등에서는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았지만 그림자도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다. 다만 선물가게나 할인매점에 4달러 정도로 판매하는 것이 있었지만 인심이 참 고약하다는 생각도 들고, 구입해서까지 볼 정도는 안 되는 것 같아 참기로 했다.

입장료를 받는 국립공원은 들어갈 때 그곳의 상세한 지도와 회보(*)를 건네준다. 우리는 세 가족이므로 2개의 여분이 필요하여 더 달라고 하면 아무 소리 없이 준다. 대부분 가로 40센티 세로 60센티 크기에 실제 면적규모에 따라 한 면에는 10만에서 20만 분의 1의 축적으로 필요한 것은 지도상에 모든 것이 나타나 있다시피 할 뿐 아니라 반대편 면에는, 특성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그곳의 중심이 되는 포인트를 매혹적으로 찍어놓은 사진이나 그림과 함께 그 공원의 개요와 그곳에 서식하는 야생 동식물, 찾아 볼만한 곳, 무엇을 하고 즐길 것인가, 특이한 지형인 경우 어떤 지질학적 변동에 의하여 그런 모양이 이뤄졌는지, 이 공원에서의 주의 사항 등이 담겨있다.

옐로스톤에는 어떤 특이한 야생동물들이 서식하며 그 생김과 이름은 무엇이라 하는지는 공원지도에 나타난 그림들로 한눈에 알 수 있다. 황량하기 짝이 없는 불모의 땅에 억센 생명력으로 군데군데 덤불을 이루고 있는 식물은 무엇인가 몹시 궁금했었는데 그것이 산쑥(sagebrush)의 일종이라고 풀어준 것은 그랜드 티톤(Grand Teton) 지도 한 귀퉁이에서 발견한 그림과 설명이었다.

우리는 이동하여 어디를 가든 그 지역의 지도를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으며 거기서 무엇을 할 것인가는 지도를 본 다음에 정할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모은 것이 미국전도를 포함하여 주 단위 또는 특정지역의 상세 지도가 13종, 내무성 국립공원 관리소(National Park Service, U.S. Department of the Interior)가 발행한 국립공원 지도 10종이 된다. 원래 접혀있는 크기는 약간 들쭉날쭉 하지만 조금 큰 편지봉투 정도이나 네브래스카 주의 것이 가장 커서 가로 11.5cm 세로 25.5cm이다. 다만 국립공원 안내지도는 한 곳에서 통일해서 발행한 것 답게 접힌 사이즈는 가로 21cm 세로 10cm로 철저하게 일정하나 펼쳐놓았을 때의 전체 크기는 그 공원의 규모에 따라 다르다.

나는 이번 여행의 부산물로 소지하게 된 이 지도들을 보물처럼 소중하게 간직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번 여정에서 우리의 친절한 안내자였으며, 우리가 갈 곳의 자상한 지침이었고 또한 우리가 뒤지고 다닌 곳들의 충실한 역사기록물이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두고두고 되새길 것들이 포진하고 있으며, 이곳에는 새롭게 발굴해 낼 정보들 또한 아직도 부지기수로 많이 있기 때문이다.

(*) 국립소에서 발행하는 회보는 대체로 공원 관련 뉴스와 가이드의 성격을 지닌 타블로이드판 12면 계간(季刊)이나 지도처럼 일정 치는 않다. 대부분이「SPRING 2004」또는 「SUMMER 2004」 등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유독 그랜드 캐년의 『The Guide』는 「May 22-September 6, 2004」로『Yosemite Today』는「June 1-28, 2004」로 표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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