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조기(早起) 산책으로 얻은 것들
나는 태생이 아첨형 인간은 되지 못한 대신에, 어려서부터 아침형 인간으로 성장하며 살아왔다. 초등학교 시절인지 그전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어른들 기대보다 좀 늦게 일어나는 듯하면 밖에서 간헐적으로 내는 헛기침 소리가 어김없이 내 잠자리로 송곳처럼 파고 들어와 단잠을 깨웠고, 그것이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는 신호란 것을 알고는 더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였는지 어쨌는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었고 이제는 어쩌다가 늦게 잠자리에 들더라도 이른 시간에 깨어지는 것은 스스로도 막을 수가 없게 되었다.
대륙횡단 중은 물론 미국 체류 40여 일 사이에 아침 산책을 하지 않은 날은 며칠 안 된다. 그 며칠의 공백도 하지 않았다기보다는 부득이한 일로 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딸의 숙소에 같이 있을 때는 물론이고 큰 처남댁, 작은 처남 집에 있을 때도 그랬으니 우리끼리 대륙횡단의 여정 중에도 아침 이른 시간의 산책만은 빼놓지 않다시피 했던 것이다.
나는 그럴만한 당연한 이유가 있다. 너무 일찍 깨는 버릇이 있고 깨어서는 누워 흐느적거리지 못하고 바로 일어나야 직성이 풀리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밖이 밝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게 느낄 정도이다. 이 시기가 5,6 월로 해가 많이 길어져 있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장기간의 여행이다 보니 해 뜨는 시간도 변하고 동쪽에서 서부로 점진적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시차도 두세 번 바뀌었으므로 시각은 일정하지 않았지만 대체로 기상 시각은 5시에서 6시 사이이다. 늦으면 6시 반에도 일어나 1시간에서 1시간 반가량 걷는 것이 일과처럼 되었다.
이렇게 걸으면 첫째로 매일 기본적으로 일정한 시간 운동한 효과가 있다. 우리는 차 타고 있는 시간이 길어서 먹은 것을 잘 소화시키려면 때때로 일정한 양의 운동이 필요하다. 그것을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일찌감치 때워놓는 것이다.
둘째로, 여행 중 묵는 장소는 특별히 기록에 남는 곳인데 그 뜻깊은 곳을 잠만 자고 빠져나오면 숙박지로서 밖에 기억되는 게 없다. 따라서 조기(早起) 산책으로 주변을 둘러보면서 그 지역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때로는 이것저것 보는 과정에서 타운(town)으로 형성 발전하게 된 유래를 알아내기도 한다.
그랜드 아이얼런드에서는 마침 주말이라 몰몬 아이얼런드유원지(Mormon Island State Recreation Area)에 꽉 들어찬 캠퍼(camper)들을 보고 비록 장비와 행색은 달라졌겠지만, 160년 전 여기까지 와서 머물며 전열을 가다듬어 다시 서부를 향해 떠나가는 몰몬교도들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와서는 처음이자 유일하게 아침에 일행 6명이 다 함께 산책을 한 곳이다. 호텔 뒤쪽 조그만 공원의 기념비에 이 시의 초창기 사람들과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1871년 윌리엄 파머 장군이 서부로 철로를 연장하면서 콜로라도 스프링스를 설립했으며 그때 운행했던 기관차가 이 공원에 기념물로 전시되어 있다.
인디언과 버펄로의 일화로 인하여 지명이 생긴 척 워터(Chug Water)를 아침에 둘러보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거기가 그렇게 한촌인 줄을 모르고 공허한 전설만 기억했을 것이다.
옐로스톤의 매머드 핫 스프링스(Mammoth Hot Springs)에서는 도착한 날 저녁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보름달이 하도 좋아 모두 뒷동산으로 올라가 바라보기로 했는데, 위쪽에 곰이 웅크리고 있는 것 같아 질겁해서 내려오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산책코스를 여기로 정하고 갈 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걸었다. 이 길의 이정표에는「Old Gardiner Road Trail」이라 씌어있고 옐로스톤 공원의 북쪽 입구까지 5마일(8킬로) 거리라는데 마차가 다닐만한 폭으로 뚫려있었다. 언덕 위에는 바위 몇 개가 마치 곰이 웅크리고 있는 것 같이 널려있었으니 엊저녁에 이것을 보고 그렇게 놀랐던 모양이다. 7시 반까지 왕복 1시간 반 걷는 것으로 하고 6시 4, 50분경에 돌아설 마음이었다. 번번이 느끼는 것이지만 이 시간에 밖에 나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옐로스톤은 대부분 쭉쭉 뻗은 침엽수림으로 형성되어 있으나 이곳은 북쪽 초입으로 메마른 덤불숲 지대이다. 그 덤불을 이루고 있는 식물들은 모양과 향이 우리나라의 세어서 억세어진 산쑥과 비슷하나 잎이나 자라는 크기가 각각 다르게 3종류가 있는 것 같다. 아직 이름을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본 불모지에 자라는 것이 대부분 이것들인데 하찮게 여겨서인지 이 식물을 거론한 자료를 찾아내지 못하여 갑갑하다. 나중에라도 알아보려는 데 도움이 될까 하여 조그맣게 한 가지 꺾어 올까 했다가 미물이라도 야생에 손을 안 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가든 시티에서는 마침 묘지공원이 가까이 있어 모처럼 이 지역에 살다 간 옛사람들과 해후할 기회를 가져 보기도 했다.
여러 캐년의 중심에 있는 커냅은 온통 붉은 도시였다. 두 번째 밤 자고 난 아침 이제 이곳을 뜰 것이니 맘 놓고 멀리 나가본다. 어떤 거리는 옛날 서부영화에서 보던 마을 주점 모습을 한 친숙한 풍경이다. 이곳의 건물들이나 정원 조형물들은 대부분 인근에서 채취한 듯 붉은 돌을 많이 썼고, 그래서 도시의 대체적인 인상이 검붉다. 다시 큰길을 따라 올라오니 길 왼편에 「Levi Stewart Memorial」이라는 조그마한 공원이 있다. 초창기 이 지방에 터를 잡고 살게 된 개척자들을 기리는 기념물이었다. 마을 형성기에는 에스칼란티(Escalante), 나바호(Navajo)족이 정착해 살았으며 결국은 솔트레이크시티에서 흘러들어온 몰몬교도들이 번성하며 커진 도시였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는 보기 드문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가 동네에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레비 스튜워트라는 사람도 그 정착민 중의 하나로서 1870년에 큰 화재가 있었는데 그때 희생됨을 추모하여 마을 유지들이 조성한 것이었다.
셋째로 아침 산책이 좋은 것은 일출을 볼 기회가 많은 것이다. 일출을 보려고 벼르면 좀 늦게 일어나 지거나 구름이 끼어서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이번 산책 중에 우연히 해 뜨는 것을 몇 차례 볼 수 있었다.
그중에 카메론에서의 일출 장면은 길이 기억될 것이다. 일출은 수평선이나 지평선으로 떠오르는 것이 감동적인데 우리나라는 동해안에서 바다로 떠오르는 것은 맘만 먹으면 언제라도 가능하지만, 동쪽에 산악이 포진해 있어 지평선으로는 볼 기회가 없는 그 일출을 여기서 보았기 때문이다. 2004년 6월 9일 아침 5시 15분, 전날 우리가 건너온 다리 너머 까마득히 먼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붉은 해의 모습도 가슴을 뿌듯하게 하는 것이었지만, 올라오며 비치는 햇살이 일대의 붉은 골짜기, 빨간 언덕에 반사하여 발하는 색채가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혼자 보기가 얼마나 아까웠는지 모른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카메론은 나에게서 영원할 것이다.
일본인 저자가 아침형 인간을 어떻게 묘사했는지 어떤 좋은 점이 있다고 역설했는지 그 책을 아직 읽어보지 않아 모르지만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으로 습관 들여진 것을 우리 조상이 주신 선물로 고맙게 여긴다. 새들의 노랫소리 경쾌하고 공기는 마냥 상쾌할 무렵, 요즘같이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는 더욱이 선선한 시간에 걸으면서 삼라만상의 조화를 관조하는 즐거움은 조기 산책에서 얻는 큰 덕목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 나중에 자료들을 다시 한번 들춰보다가 이 식물의 이름을 찾아냈다. 국립공원 관리소 발간 그랜드 티톤(Grand Teton)의 지도 한 면 아래쪽에 이 식물의 사진과 함께 「sagebrush」라는 이름이 눈에 띄어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사전에는 짐작했던 대로 ‘【植】산쑥《북미 서부 불모지에 많은》’이라 되어있다.
참고로 공원관리소 자료에 언급되어 있는 이 식물에 대한 부분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Sagebrush flats color the landscape a silvery or graygreen. This most visible plant community covers most of the valley floor. Rocky, well drained soils make survival difficult for most plants here, but hardy big sage, low sage, antelope bitterbrush, and more than 20 species of grasses thr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