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지경이 넓어지다
정확하게 무엇이 트리거였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초5 아이의 반복되는 잘못을 고쳐주어야 했던 거 같다. 훈계를 하는 도중, 아이는 눈물을 흘렸다.
지금 돌아보면 진정한 반성이었던 거 같다.
그때는 상황 면피로 보고
"뭘 잘했다고 울어?"라고 쏘아붙였다.
아이는 더 훌쩍이다 콧물 풍선을 크게 뿜었다.
"엄마는, 뭐가 문제예요?"
표정이나 말투에서 반항하는 영혼이 감지되지 않았다.
생각을 청하는 것 같았다.
'30년 후의 아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왔나? 뭐지, 이 말?'
똑똑.... 샤미용님
당신에게 문제가 있어요.
잘못한 만큼만 훈계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화를 내시지 마시고요.
많이 참았고 기다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조금 더 덮어주고 기회를 줄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이후로, 하이톤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숨 쉬는 것도 아끼고 밖으로 나갔다.
어떤 엄마로 기억되고 싶은지,
어떻게 해야 답과 현실의 간극을 좁힐 수 있을지,
현재를 긍정한 상태에서 대안을 찾으려고 했다.
'샤미용, 힘을 빼.'
'너의 아이의 미래는 말이야... 네 상상보다 잘 되어 있을 거야. 훨씬.'
아이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학원을 선택하는 기준이 분명했다. 칭찬과 보상이 시스템으로 갖춰진 학원만 사랑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3년을 다녔던 영어학원을 얼마나 좋아했던지, 장래 희망이 그 학원 선생님이었다. 반면 유명 프랜차이즈 수학 학원에는 마음을 주지 않았다.
성골 이과생 부모는 아이가 수학에서도 흥을 내어 주길 바랐다. "학원 안 다녀도 돼. 문제집 한 권에 라면 티켓 한장"
팥쥐 엄마도 아니고; 문제집 한권에 겨우 하나?!
라면을 2-3개 먹으면 혈변을 보는 아이에게는 하나도 감지덕지였다.
중1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모 과학고의 영재원을 지원하겠단다. '학원 훈련으로 선행한 게 아닌데, 괜히 주눅드는 거 아닐까. 지원했으니 시험 문제 구경하면서 도전받겠지.'
신기하다. 합격이었다.
그래도 중2에게, 인생 첫 중간고사는 만만치 않았다.
공원을 돌며 푸닥거림을 격하게 하고 집에 들어온 엄마는 현실을 이해시키고 싶었다.(아들의 반응)
"여전히 민사고 가고 싶지?"(절대적 동의)
"기말은 만회가 될 만큼 잘 봐야만 해."(강한 동의)
"네게 효율이 필요해 보여."(분위기상 일단 동의)
"기말까지 학원 다녀 보고, 계속 다닐지는 그때 정하자."
(자기 주도성 탈환을 꿈꾸며 동의)
선행과 내신을 위해서 더는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민사고 면접을 위해 짧은 시간에 조리 있게 말을 하는 훈련이 필요해서 학원을 선택했지만 학습은 혼자 하는 게 좋다는 취향을 존중해 주었다. 전교 1등은 아니었지만 성실한 중학생이었다.
민사고의 한 학년은 150명 남짓이다. 동아리나 선택한 수업으로써 접점이 있어도 인맥의 지도는 아이의 성향에 따라서 그려진다. 1년이 지났어도 얼굴만 아는 친구들도 많다. 주인공이 설정한 범위 내에서 관찰자는 인연을 맺을 수 있어서 아는 사람이 더 적다. 일반화가 조심스럽지만, 40여 민사고 가정들과 대화 가운데 알게 된 점들이 있다.
1. 선행의 여부와 체화된 지식의 수준은 민사고 당락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다. 학교는 선행의 지식 수준으로 당락을 가르지 않는다. 면접에서 절대 고난도 수학문제를 질문 받지 않는다. 선행은 지극히 개인의 만족과 연결될 뿐이다. 입학을 하면 학교 생활이 녹록지 않다. 시간과 체력의 배분을 해야 할 때 선행 덕으로 특정 과목의 부담을 줄일 수는 있다. 그렇지만 학생 모두는 할 게 많아서 고생하기는 매 한 가지이고 또한 적응도 비슷하게 다들 잘한다.
2. 가정마다 대학 입시에 대한 굵직한 그림이 있다. 합격하고 첫 소집일에 국내 대학 진학 희망자와 해외 대학 진학 희망자를 구분한다. 변경은 언제든 가능하다. 드물지만 3학년 시작할 때 국제였다가 국내로 바꾸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국내였다가 국제로 변경하려면 빠를수록 학생에게 좋다. 수업 선택 뿐만 아니라 공식 시험 점수나 단기간에 채울 수 없는 활동들을 고려한다면 2학년을 시작할 때가 국제입시로 옮겨갈 현실적 마지선이다.
3. 해외 대학을 염두에 둔 가정의 자녀들은 영어로 자기의 뜻을 말하고 싶은 만큼 말할 수 있는 실력과 자신감을 지니고 있다. 해외 어느 대학으로 진학을 하든 한국이 아닌 곳에서 혼자 살아가려면 필요한 자질이기 때문에 미리 준비된 학생들이 국제반을 염두에 두는 것 같다.
4. 아이 스스로가 민사고 입학을 간절하게 원했다. 입학 후 희망 진로를 바꿀지라도 그 안에는 꿈틀거리는 에너지가 꽉 차 있다. 자기소개서에 담긴 열정과 면접에 임하는 지원자의 진정성을 선생님들이 잘 보셨다고 확신이 들 정도로 자녀들이 배움이나 활동 선호가 뚜렷하다. 어떤 이는 민사고에서만 받을 수 있는 독특한 수업 자체를 좋아한다. 어떤 이는 다양한 동아리 활동에 빠진다. 어떤 이는 연구하고 논문을 쓰는 학자적 소양을 진심으로 수련한다.
5. 아이가 하는 선택은 존중을 받고, 가정마다 서로 맞춰가는 질서가 있다. 특별한 지혜와 해법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아이 성향에 맞는 격려가 이루어진다. 집에 자주 전화해서 생활을 다 보이는 아이에게는 공감 능력이 엄청난 부모님이 계신다. 한편 돈이 필요하거나 본인이 내킬 때만 소식을 전해오는 아이에게는, 일찍이 서운함에서 자유하고 잘 지내고 있겠거니 하는 부모님이 있다.
2025년은 입학생은 물론이고, 그 엄마도 민사고와 친해지는 기간이었다. 학교가 주도하여도 학부모의 힘이 더해지면 진행이 원활한 행사들이 있다. 가령 3학년이 학부모가 주인공인 성년례나, 중3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입학설명회에서 묵혀두었던 한복을 입고 도왔다. EC(Extra Curricular) 활동을 다양하게 하는 아들 덕분에 주말마다 이동도 많았다.
운동 리그가 있을 때는 선수들을 지원하기 위해 경기장으로 출동했다. 학기마다 3번, 총 6회뿐이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너무 벅찼다. 정말 운동선수 어머니는 아무나 못한다.
어릴 때 잠깐 악기를 배우게 했지만, 고교 오케스트라에 입단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연주회에 가서 합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지만 더 큰 감동은 그 자리에 초대된 것 자체였다.
우리나라에 와서 정착한 다문화가정과 잠시 머무는 나그네인 이주민노동자들을 위한 봉사의 현장에도 함께 가 주었다.
경력 16년 차가 되기까지,
사교육을 받게 하려고 라이드를 정기적으로 한 적도 없고,
공부하랴 직장 다니랴 엄마들 네트워크 안에도 있지 못했다.
해외에 체류한 경험이 전무한 토종 코리안 부모 아래에서
영어 몰입식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데
영어로 자기 뜻을 주저함 없이 말하고 쓰며
칸 아카데미 강의를 찾아 듣고 이해하는 고등학생이 되도록 부모에게 받은 건 무엇인가.
궁금하다는 이웃들에게 하는 대답이 있다.
그런데 들려주면 나의 답은 버리고
그들 나름의 다른 답으로 찾고 풀이를 덫붙이려 했다.
우리의 지경을 넓히시는 분께 집중했다.
엄마가 먼저 그 곁에 머무르길 즐거워한다.
아이에게 예배가 가장 우선이라 가르쳤다.
전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