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식
1919년 당시에는 3월 1일만이 아니라
그 이후 몇 개월간 만세 운동이 있었다고 한다.
온 마음으로 태극기를 흔들면서 거리로 뛰어나갔을 선조들의 간절함을 헤아려보고
1945년 광복까지
암흑의 시간을 배움으로나마 조합해 볼 때마다
삼일절이라는 기념일은 다소 슬펐다.
2025년 3월 1일에서야
그 슬픔의 정서를 깨고,
기미독립선언문에 담긴 당당함을 마음에 담을 수 있었다.
나라를 잃었지만, 슬픔에 갇혀있지 않고
어지러운 세상 속에 꿋꿋함을 잃지 않았던 기상이 담겨있다.
전교생 450명,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선생님들,
150여 명의 신입생 가족들이 강당을 채우고 굉장히 긴 입학식이 진행된다. 초반에 기미독립선언문이 국문과 영문 각각 낭독된다. 모든 회중은 전문을 눈으로 합독한다. 좀 길고 지루할 수도 있지만, 난생 처음으로 한 문장 한 문장에 민족지도자 33인의 진중함을 제대로 느껴보았다. 그 정신이 아이들에게 전달되길 바라며 집중했다.
2월에 예비 민사인으로서 생활하는 동안
학년 대표 15명이 구성되면, 이들은 150명을 대표해서 입학선언문을 작성한다.
1학년 때 작성했던 선언문을 입학식 때마다 낭독한다. 2학년이 되어서도, 3학년이 되어서도.
1학년의 입학식마다 낭독한다.
신입생을 축하하는 날인 동시에,
각자가 신입생 때 어떤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섰는지를 회상할 수 있다. 입학식에 함께하지 않으면 벌점이 크기 때문에 억지로 동원되는 학생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다수는 선배로서 따뜻하게 신입생을 맞이해 주는 객체이면서도, 3월 첫날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학교가 마련한 순서 같았다.
아래는 식순서를 담은 순서지의 1면과 4면이다.
교훈이 길다.
그런데 3년간 얼마나 자주 외쳐댔으면
졸업한 지 10년이 지나도,
자다가 깨우더라도
반사적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교훈은 이들에게 각인된다.
비록 학교에 있을 때는,
성적에 예민해지고,
기숙사 생활의 불편함으로 티키타카도 있지만.
교훈에 담겨있는 학교가 심어주고자 하는 마음을
성인이 되어서라도
메타인지에 남을지라도
계속 읽어 남기는 것이 좋아 보였다.
민사고 어머니는 3번 이상 한복을 입는다.
입학식, 성년례, 졸업식.
학부모회나 지역방 임원을 하면
그 외 행사마다 한복을 입는다.
결혼식 이후로 20년 만에 꺼내 입는 것도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식순에는 부모님을 향해 서서 큰절을 하는 시간도 있었다. 한복을 입는 학교여서 그런지,
절하는 포스가 확실하다.
나중에 결혼식 하면,
신부 측 부모님께 인사드릴 때 잘할 거 같다.
아이들은, 3월 2일부터 학사일정에 따라 생활을 하기 때문에 잠깐의 외출로 가족과 식사를 하고 기숙사에 남겨두고 부부만 집에 돌아왔다.
남편: 입학식 말이야. 학교가 너희는 민족의 지도자라고 너무 주입시키는 것 아닐까? 누가 너희들을 그리 세웠느냐라고 한다면?
아내: 오, 누구라도 해봄직한 좋은 포인트야.
그런데 너희는 지도자가 될 사람이라는 선민의식은 너무 나간 거 같아. 국가 전 스포츠 응원이 아니면 철저히 개인주의가 강한 MZ세대이고, 이후 세대는 더하면 더해질 거야. 공동체나 민족을 생각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면 기대하기 힘든 가치라고 생각해.
학교가 오늘 아이들에게 강조하고 싶었던 건
지도자가 되라가 아니라
민족을 떠올려라였던 것 같아.
그리고 지도자가 될지
우리 같이 무명일지는...
사실 우리 영역이 아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