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 그 여백 29
불현듯 기차를 탔네
간이역엔 2월의 눈이 연착하듯 내리고 눈 덮인 침목은 침묵에 잠겨 있었네
창가의 여자는 구로동 봉제공장 다닌다는
동갑내기 여자는
밤새 김 서린 유리창에 해독할 수 없는 상형 문자들을 박음질하고 있었네
설국의 비밀도 방랑의 리드 레일도 아닌 호오 불면 사라져 버리는
그 난서亂書의 속내를 알 수 없으나
나는 낯선 플랫폼과 옷깃을 세우며 머플러를 날리는 여자의 정거장을 그렸네
만삭의 열차가 삼랑진 철교 지나 덜컹거리며 몸을 틀 때
유리창 속 문자들이 하얀 꽃을 피웠네
역사의 불빛이 한 꺼풀의 어둠을 벗길 때
여자는 한 꺼풀의 어둠 밖으로 사라져 갔네
그 겨울의 꽃잎은 몇 번이나 흩날렸을까
강물 속으로 다른 계절의 꽃잎이 흘러가고 있네
다시 스무 살 밤차를 타고
물수제비처럼 스쳐 가는 부산행 완행열차를 타고
불현듯 원동역 내리고 싶네
* 경부선 삼랑진역과 물금역 사이 낙동강 매화마을 간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