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by 김윤

종종. 모두 게이머니까.


게임은 종종 특정 사상과 집단의 프로파간다의 오해를 사기도, 문화를 세분화 시키고 거대화 하는 주축이 되기도 한다. 게임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유독 게임기업이 공리 증진의 차원에서 낙인성격이 다분한 비판을 받는 것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다. 비교적 최근 일어난 셧다운제 폐지와 4대중독법 게임중독 편입 이슈 등의 생태계 위협에서 게임회사의 실망스러운 대응과 행보로 게임기업에 대한 사회적책임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게임업계는 여타 산업에 비해 후발 주자이며, 아직 엮어야 할 제도적, 윤리적 방침이 많다. 게임, 게임을 너머 더불어 사는 지구촌과의 이해관계에서 게임 기업은 어떤 길을 가야 할까?


게임은 무엇을 담는가


사회적 책임은(CSR) ESG의 연고에서 벗어나 좀더 실질적이고 신속한 대응전략수립에 기조로 하여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천명된 행동의제이다. 실제 법적효력은 미미하지만, 대부분 국가가 이를 준수한다. 무역상대국의 CSR 기준요구에 응할 때, 양측 간 긍정적 효과가 더 많기 때문이다.


게임은 굉장히 다양한 분야의 집대성이다. 경제, 법학, 행동심리, 건축, 공학 등 어느 하나 빠질 수 없다. 제3세계를 축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임 기업 또한 마찬가지로 사회공헌, 이해관계자 존중, 노사관계, 환경친화 방면에서 보편적 수준으로 그 의무를 끌어올려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허나, 게임은 굉장히 특수한 사회 반응이므로 그 점을 고려하여 수용되야 할 다른 관점이 존재한다. 우선 게임에 대한 제도와 사회적 합의에 대해 게임사는 적극적인 목소리를 표출할 책임이 있다. 게임은 교육계와 기득권층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소비되지만, 그 존재에 산업이 사장될 위협을 느끼는 것은 불필요하다. 이상하게도 게임에 관한 재정, 개정, 논의에 대해 대부분의 게임사는 소극적인 입장이다. 게임과 관련 없는 집단이 사적이익을 위해 가하는 외부 압박을 고전치 못한 것도 있지만 수뇌부의 재무적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한 이기적 움직임이 가장 크다. 또한 역사를 살펴볼 때 지금까지 이어져온 우리 것을 중시하는 한민족 특유의 유교 정서의 변주의 카테고리가 넓어지고 동시다발적이라는 면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셧다운제 폐지와 4대중독법, 마인크래프트 성인화에 열렬히 맞선 유저들의 과정과 남겨주는 의미는, 기업 이전에 유저를 존중하는 태도에 불씨를 지핀다. 2006년, GTA프랜차이즈 제작사 락스타게임즈는 핫 커피 모드 논란의 발화점인 샘 하우저와 힐러리 클린턴을 비꼬아 <GTA4>에 김이 나오는 커피를 들고 클린턴 얼굴을 한 자유의 여신상을 박았다. 정계와 언론은 절대자가 아니라고 위트있게 비꼬운듯 하다. 게임의 세대적 특수성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에서 가장 중심인 게임사가 부조리에 가장 소극적이라면 도대체 누가 게임문화를 견인할 것인가.


애당초 게임업계는 유희 성격의 여가제공과 이윤의 상대적 효율을 중시하는데, 기존의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혁신을 모색하는 다른 분야의 IT업계와 근본적으로 방향이 다르다. 소비자 폭이 넓은 여타 기술과 달리 게임은 특성상 청소년기와 20~30대를 아우르는 젊은 층이 주 고객이다. 확장되는 추세라지만, 여전히 경험 전달을 중심으로 브랜드파워는 혈기왕성한 세대를 따라 고무된다. 급진적인 세대인 만큼, 당사의 행보 등의 가치판단으로 언제든 태도를 바꿀 준비가 되어있으며, 게이머 여론의 응집성과 유연성에 주체성을 가미하고 적극적인 비판과 옹호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 책임을 이행하거나 이행하지 않거나, 그 온도의 차이가 명확하다. 따라서 CSR이 사회윤리적 담론 분리를 가속하는 현 상황에서 게임기업은 제도 방면의 이상과 공약보다는 진취적 형태의 소통방안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것이 신뢰를 회복할 창구이다.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 아노미의 사이에서


필자의 또 다른 게임보따리를 꺼내 보겠다. <리그오브레전드>는 E스포츠의 대흥행과 스타의 탄생, 탄탄한 게임성으로 10년도 더 지난 지금도 전세계 게임 1위를 구가하고 있다. 하지만 ‘채팅문화’는 사람의 특수성을 반영한 끊이지 않는 이야기, 콘텐츠 파생의 장이 됨과 동시에 익명성의 가면 뒤, 창만 빼들 수 있는 구멍을 마련해주고 있다. 특히 승패가 명확하고 리더보드가 공시되는 게임은 게임 내 갈등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 특정 역할과 아바타를 비난하고 그 동질은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곧바로 재현된다. E스포츠의 인물들에 대한 맹목적 비난, 성희롱, 거짓유포 등의 그림자는 게임 유니버스가 넓혀질수록 그 패색도 짙어 진다. 주제를 막론하고 소외와 갈등, 배제의 징조는 게임 내 여부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필자 또한 해당 게임 이외에도 대부분 채팅과 음성기능을 끄고 플레이한다. 심하게 감정소비를 하거나, 뜻하지 않은 혐오와 배제에 빠질 때 게임은 무엇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이었나 하는 모순에 휩싸이기도 한다. 결국 사람 간 소통이 진위, 정보권리 등에 얽힌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현재로써 정도를 도출하긴 힘들것이다. 그럼에도 게임 커뮤니티에 대해 게임사는 정도를 판단해 직접 처벌까지도 용인할 수 있어야 하고 정서도 뒤따라야 한다. 특히 <타진요 사태>가 남겼듯이, 조직적인 허위는 사실보다 무섭게 작동하고, 그 거짓이 밝혀 짐에도 당사자에게 씻기 힘든 오해를 남기기 때문이다. 게임은 미디어의 미디어이므로, 관리의 책임이 있는 게임사는 관련 담론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이다. 또 반대로, 올바른 언어생활을 하고자 하는 의식적 교정도 그만큼 활발히 작용하는데, 이는 결국 다양성담론과 직결된다.


게임에 있어 다양성은 그 메커니즘만큼이나 중요하다. 게임에 대한 이해를 열어놓고 모두의 것으로 환원시킬 기회를 만든다. 닌텐도 사의 ‘모두가 플레이’ 할 수 있는 가족차원의 개발철학은 대성공과 함께 본보기가 되었으며, 현재의 게임업계는 그 맥락을 기호와 표현으로 변주하여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다양성 구현은 거부감이 든다. 오히려 그 게임의 맥락과 전통을 져버린 역차별 정책이라는 의견이나 모든 신시대가 그렇듯이 새로운 것은 초기에 늘 질타와 핍박을 받는다는 전형적 역사관점도 존재한다. 게이머의 반응도 이해가 간다. 다양성이라는 미명 하에 원초적이고 비가시적인 배후의 목표를 이행하거나 이득을 취하려는 의도로의 해석이 가장 탄력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실제 통계를 보면 조금의 다양성은 접근성과 재미 그물을 넓혀주지만, 그 과잉은 매출과 평가가 극단적으로 떨어진다. 필자는 이 해석에 동의한다. PC는 장기적 결과와 대외를 보고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논란의 여지를 최소화하는 것, 모든 콘텐츠를 밋밋하게 할 위험이 있는 이 문법이 현재 주류가 된 것이다. 따라서 과도한 PC주의에 대해 양측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꽤나 정당한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오버워치>, <에이펙스 레전드>도 과도한 PC에 놓였었지만, 게임성과 피드백 수용의 정상화로 다시금 명예를 회복했다. 늘 그래왔듯 게임사는 결국엔 게임 잘 만들고 유저친화적 운영만 뒷받침된다면 불필요한 명제에 휘둘리지 않는다.


지속 가능한 게임문화를 위해


플랫폼은 불필요한 이해관계 경제 몰수의 비중을 줄일 필요가 있다. 평균 35%로 개발사를 상회하는 비율을 가져간다. 선점효과와 낙수효과를 누리는 셈인데, 이런 불평등한 관계의 지속은 결과적으로 부패를 낳을 수 밖에 없다. 특히 개발사의 입장에선 양질의 게임개발의 동인이 떨어진다. 규제당국과 교육자는 공동의 목표를 가져야 한다. 교육과 성장에 있어 게임이 걸림돌이 아닌 학습효과, 스트레스 개선에 증진하는 건강한 문화가 되기 위해 칼을 거두어야 한다. 매년 스팀 성인게임이 우리나라에서만 몇백개씩 검열되고 있다. 그러나 이따금씩 이슈 되어 결국 서로의 대립만 강화 시킨다. 초연결사회인 지금, 무언가를 완전히 억압하기란 어렵다. 거대한 ‘스트라이드 샌딩’ 상황인 것이다. 정책적인 비난보다는 게임의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정말로 학습자가 어떤 심리적 요동을 겪고 게임으로 해소하는지 ‘둥글게 경청’을 해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게임 이용자는 건전한 게임문화 지향을 위해 소비의 본보기를 많이 보여주어야 한다. 아무리 외부의 도움이 있어도 할 마음이 없으면 공부가 되지 않는다. 우린 모두 가슴속에 아이를 품고 있고 게임세계가 그것을 대리적으로 나마 충족시켜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드코어 게이머든, 라이트 게이머든, 게임을 즐기는 이유는 결국 색다른 경험을 위해서이다. 세대가 교체되며 문화정책의 경직이 해동되는 기미가 보이는 지금, 이용자는 채팅과 커뮤니티를 통한 혐오와 사행성주의보다는 자랑스러운 E스포츠 문화, 공동체 의식을 지닐 필요가 있다.


필자는 어렸을 때 <로스트사가>라는 대전액션게임을 가장 좋아했다. 삼삼오오 통화하며 친구들끼리 좋아하는 캐릭터, 주제에 대해 하루 종일 토론했고, 현실로의 관계 발전도 있었다. 성인이 된 지금은 LCK도 보러 다니며 코스프레도 해보고, 각종 페스티벌을 다니며 게임을 사랑하니, 이 특별한 문화를 더욱 잃고 싶지 않다. 더 나은 게임문화를 떠올릴 때, 적어도 보편적 산업계열의 문제와 결과, 비판의 화살이 무고한 유저들에게 돌려지지 않게 가꾸는 사회가 아닐까 싶다. 영화, 만화, 드라마는 기존인식을 탈피하고 국위선양의 한 문화계열 시장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게임은 제도적인 불평등과 인식, 편향적 정서의 일반화는 여전하고, 부모의 양면적 이해관계를 떠올려본다면, 게임은 아직도 목표나 특정 가치를 위한 수단이자 멀리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게임에 우호적인 부모라도 조금의 차질이 빚어지면 바로 적대적으로 돌변하는 양날의 검을 쥐고 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상의 콘텐츠와 동등한 위치에서 평가받고 통제되길 바라며 게임의 특수성을 차치하더라도 윤리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담론이 게임의 주류가 되는 것엔 비단 게임만의 문제를 따질 것이 아니다. 개선되어야 할 작업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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