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과 인간

아드레날린과 사유가 감도는 전장

by 김윤




FPS게임 중에는 발로란트나 오버워치 같은 하이퍼 슈터도 있는 반면 타르코프나 콜오브 듀티 같은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게임 또한 있다. 필자는 후자를 자주 플레이한다. 각종 총기를 다뤄보며 0과1로 이루어진 전장에서 지인들과 경험을 꾸린다. 근데 가끔씩 의문이 든다. 어떤 FPS를 하든 총기들은 어디선가 본 실루엣이다. 이름이 미묘하게 달라도 AK계열의 총기나 미국식 내부구조 또한 익숙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설명이나 활용은 딴판인 경우가 많다. 총기는 매우 특수한 도구이기 때문에 이해관계의 양면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일 것이다. 개개인과 다양한 사회집단, 국가, 기관 등과 얽혀있는 각기 다른 규제나 인식, 사례가 현재의 서구권을 포함한 자유진영국가의 전반적인 총기이해를 만들어냈지만, 게임은 교란종으로서 다시금 총기에 대한 공식적 입장과 제도 정비를 요구한다. 이처럼 화기를 용인하는 문화권에서는 게임 속과 현실 모두가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게임에서의 총기재현은 윤리적으로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그것이 상업, 제도의 주체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궁금증이 든다. 또 그 의의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해봐야 하는가.


전현직 특수부대원들이 밀리터리 1인칭 슈터를 플레이하는 리액션 비디오, 특히 <콜 오브 듀티 : 모던 워페어>의 빈 라덴 사살 작전에서 영감을 받은 캠페인을 플레이하며 그 사실성을 해설하고 칭찬하는 영상은 전 세계적으로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일각은 게임이 실제 전술을 노출하는 수준이라며 개발사의 입장에서 거의 극찬에 가까운 반응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 게임에는 의외로 전혀 사실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다. 바로 총기의 디자인이다. 수많은 총기 전문가와 애호가들은 모던 워페어의 잘못된 총기 재현을 여러 차례 지적해 왔으며 대표적인 사례로 KRISS사의 기관단총 벡터가 있다. 특이한 생김새로 인상을 남기는 이 총은 ‘Super V’라는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탄알집 뒤 공간에 반동을 완화해주는 장치를 삽입해 높은 발사 속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쉬운 제어를 가능케 해주면서 동시에 벡터만의 독특한 윤곽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근데, 모던 워페어의 벡터는 ‘패넥’이라는 가명을 달고 등장하며 실제 벡터에 비해 상당히 얇다. 탄알집 뒤 공간은 어떤 기계 장치가 들어가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이외에도 게임 내 대부분의 총기들은 실제 이름이 아닌 가명을 달고 등장하며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실제와 다르게 묘사되어 있다. 실제 전술을 정확하게 묘사해내는 이 게임이 이러한 사소한 오류를 남기는 이유에 대해 가장 자주 거론되는 문제는 역시 저작권일 것이다. 총기 회사의 로열티를 지불하기 싫어서 일부러 실제 총기와 다르게 만들었다는 설, 하지만 이것은 절반의 해명에 불과하다.


KRISS Vector(위)와 콜오브듀티 시리즈의 페넥(아래)

전반적인 실루엣을 유지하면서 아주 사소한 차이만 두고 총기의 이름을 살짝 바꾸는 건 그저 눈 가리고 아웅일 뿐 법적 책임을 완전히 회피하기 어렵다. 아디다스나 나이키의 철자를 바꾼 짝퉁(Nice, adidos

등)들이 법적으로 상표권 위반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2012년에 게임 언론 유로 게이머가 오늘날 대물 저격총의 대명사로 알려진 ‘m82 바렛 저격총’의 제작사 바렛파이어 암즈의 직원 랄프 본을 심층 인터뷰 한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총기 제작사와 게임사의 관계는 현실적인 밀리터리 fps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90년대 후반에 이미 정립되었다고 했다. 당시 대부분의 게임사는 라이센스 비용을 받지 않았지만 사실적인 fps 게임들이 점점 더 높은 수익을 내면서 바렛을 비롯한 여러 총기 회사들은 비용을 청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바렛은 2006년부터 콜 오브 듀티와 협력하기 시작했고, 라이센스 계약의 요구사항으로 ‘착한 놈들이 쓰는 총’이어야 한다라는 조건을 걸었다. 그리고 정확히 그 요구에 따라 2007년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에서 바렛 m82는 주인공인 영국 특수부대 대원이 악역인 러시아 극단주의 지도자를 암살할 때 사용하는 무기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비디오 게임은 어린 청중들에게 우리 브랜드를 노출시키고…우리의 미래 고객들에게 말이죠.” 그러니 이제 짐작할 수 있다. 잘못된 총기 제어는 윤리적인 문제와 관련이 있다. 어떤 총기가 게임에 등장했다는 건 동시에 수많은 고객들에게 광고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실제 총기를 사실적으로 구현하면 게임사는 팬들로부터 ‘리얼하다’는 호평을 받을 수 있고 총기 회사는 자연스럽게 자사의 상품을 홍보할 수 있다. 둘 사이의 관계는 일방적인 원작자 사용자 관계가 아니라 잠재적 비즈니스 파트너에 가깝다. 미묘한 고증 오류는 사실 비즈니스 목적의 상호 간 잠재적 협력을 부인하기 위한 하나의 면죄부에 가깝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유를 유추하자면, 게임사가 총기 회사와 공개적으로 어떤 사업 관계에 있다고 밝히는 것이 ‘리스크’가 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둘의 거래관계는 역사가 오래됐고, 장기간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주제였지만, FPS가 (특히 미국에서) 10대를 포함한 젊은 층이 즐기는 오락거리로 자리 잡고, 그 가시성이 높아지면서 문제 소지가 생겼다. 애들 오락거리가 현실 군수업체의 자금줄이 되길 바라는 학부모는 흔치 않을 것이고, 무근거한 이야기이긴 하나 게임과 현실 폭력 범죄를 엮기 좋아하는 특정 언론이나 단체의 표적이 되기 딱 좋은 소재가 될 것이다. 요약하면, 이로 인해 게임사는 총기회사들과의 관계를 부정하거나 최소한 ‘모호하게’ 가져갈 필요가 생겼고, 그것이 콜 오브 듀티가 미묘한 재현 오류들을 양산해낸 이유일 것이다. 이는 시간이 지나며 더욱 불투명한 맥이 된다. 뒤이어 설명하겠지만, 이젠 아예 공식적 계약을 금지하는 법적 조항이 강화되면서 이 추세는 더욱 만연해진다.


허구와 현실


이제 총기재현의 윤리적인 면을 보자. 2022년 6월 캘리포니아 의회는 캘리포니아 의회 법안 2571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총기 광고를 금지하는 일련의 내용을 담고 있다. 총기 사업자는 미성년자에게 총기를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광고, 마케팅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제조업체와 중간자를 겨냥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미성년자 보호라는 특수 명목 아래, 판촉 마케팅의 내용과 배치를 제한했다. 2022년 2월 총기 제작사 ‘we1 tactical’이 어린이를 위한 총이라는 슬로건 아래 Ar15의 소형 버전인 Jr15를 출시한지 4개월 만이었다. 주니어 15라고도 읽을 수 있는 어린이를 위한 총, 그 공식 홍보 문구는 ‘위대한 미국의 전통 미국식 자유의 작은 조각’이다. 자신들의 아이에게 총기에 대한 인식을 가볍게 할 것인가? 이는 게임을 비롯한 여러 이해관계에 경고의 전조를 불러 일으킨다. 게임 속 총기의 재현에 대해 미국은 강경한 입장이고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주력 감정은 폭력성과 카타르시스이다. 게임사와 총기 제작사의 암묵적관계, 그로 인한 어린아이들의 노출, 현실에서의 재현 또는 관련 인지 활성화의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조치다. 하지만, 이는 자연스레 다른 쟁점을 따오르게 한다. 폭력을 다루는 게임은 결국 이용자를 폭력성 주체로 수렴시키는가?


게임과 폭력성의 담론은 그 역사가 탄생과 함께 빚어졌기 때문에 뗄래야 뗄 수가 없는 대척점이다. 허나 십수년간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는 것은 연구들이 일관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렇다와 아니다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선행 연구들이 ‘폭력적 게임 이용의 효과’라는 동일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이론적 관점이나 연구 설계(횡단 설문조사, 종단 설문조사, 실험), 측정 방법(공격적 감정 vs 행동) 등의 세부 사항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것과 관련이 깊다. 현재는 유동적으로 변수를 차용하는데, 인과나 변수의 특이성으로 인한 편향을 해결하기 위해 기간을 늘려 희석시키거나, 공격성에 ‘영향’을 미치는 모형과 직접적인 공격성을 볼 수 있는 분석모형을 나누어 실증적으로 평가한다. 고려대학교임상심리학회에선 사회에 널리 통용되는 일반 공격모형을 통해 비폭력적, 폭력적 콘텐츠를 나누어 소음의 강도, 발화 시점 등의 원인으로 인한 실험 집단의 혈압 등의 생리적 변화를 측정하여 보여준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모두 폭력성 증가의 원인을 게임 자체의 폭력성보다는 게임 이용량으로 꼽는다는 것이다. 물리적, 언어적 공격성을 담당하는 뇌내 부분은 한 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을 때, 특히 강렬한 소리와 시각적 효과를 동반시킬 때 그 거부 역치를 상향평준화 시킨다. 물론 게임이 직접적이진 않더라도 폭력성에 영향을 주는 연구 또한 존재한다. 같은 데이터를 쓰더라도 보이는 차이는 체계적 연구의 필요를 시사한다. 게임 이용의 효과가 언제, 어떻게, 왜 발생하는지, 얼마나 오래 지속하는지에 대해 더 심층적이고 엄밀한 이론적 토대가 필요함을 방증한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건 아직까지도 정립시키지 못한 실태를 볼 때, 그 상관관계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며 게임이 개인을 폭력성의 주체로 만든다는 말은 상대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이득을 취하기 위해 사용하는 무비판적 낭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피시방 전원을 내려놓고 화내는 손님을 보고 게임이 폭력성을 강화한다는 1차원적 억지의 극복은 아직까지도 더딘 듯 하다.


게임학자 게스퍼 율의 말처럼 게임은 반쪽짜리 현실이다. 그래도 게임사들과 총기 회사의 관계는 설명하기 힘든 불편감을 선사한다. 게임사들은 총기사 이외에도 실제 군대 전현직 군인들과 협업하고 있으며 수년 전부터 미군은 게임과 인터넷 방송을 모병 활동에 이용하다 논란을 빚기도 했다. 밀리터리 fps는 전쟁을 미화하고 우리를 폭력에 무감각하게 만드는 군국주의 프로파간다일까?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현실의 전쟁을 오락거리로 소비해도 괜찮은 걸까? 미사 이래 수많은 이야기들이 전쟁을 주제로 다뤄왔고 시대에 따라 다양한 평가를 받아왔다. 일리아드 같은 고대의 전쟁 서사시들은 물론이고 톨스토이나 헤밍웨이 같은 소설가들은 자신의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여러 편의 사실적인 소설로 큰 명예와 명성을 얻었다. 올리버스톤 감독의 플래툰 스탠리 큐브릭의 <풀메탈 재킷>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등 베트남 전쟁을 다룬 영화들은 전쟁의 참혹함과 광기를 사실적으로 포착해 반전 영화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프랑스의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는 반전 영화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아무리 영화가 반전의 메시지를 담고 있더라도 그것은 전쟁의 기개와 분투하는 군인들의 동지에 모험과 갈등의 스릴을 그려낼 수밖에 없을 관객은 결국 그러한 ‘스펙터클 자체’에 매료되어 전쟁을 미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반면, 라이온 일병 구하기의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모든 전쟁 영화는 좋든 나쁘든 반전 영화다’ 라며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제작한 후 2차 세계대전을 주제로 한 1인칭 슈팅 게임 <메달 오브 아너> 시리즈를 만들었고 그 제작진 중 일부가 독립해 <콜 오브 듀티 시리즈>를 만들었다.


어떤 전쟁을 다룬 미디어도 우리에게 전쟁 그 자체를 경험하게 할 수는 없다. 많은 관객들은 아늑한 자신의 방 안에서 혹은 잘 꾸며진 영화관의 객석에 편히 앉아 전쟁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소비한다. 폭력과 공포는 실존하지 않으며 남는 것은 언제나 전쟁의 시청각적인 강렬한 기억일 뿐, 폭력을 미화하고 선망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영화가 반전의 메시지를 담고 있더라도 그것이 제공하는 오락적인 측면만을 바라볼 것이다. 사려 깊고 공감하는 청중이라면 어떤 미디어에서든 전쟁과 폭력에 대한 나름의 통찰과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 현재는 단순히 ‘전쟁과 폭력은 나쁘다’ 라는 지엽적인 명제로 마무리 지을 팔자가 아닌, 전쟁과 폭력이 도리어 반증하는 인간 내면의 선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삶에 깊이 적용시켜야 하는 시대라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이지만, 만약 정말로 무력의 보편적 수단화를 지지하고 선망하는 극단적 군국주의, 제국주의 세력이라면 게임이라는 초연결적이고 개방적인 매체를 이용하기 보단 좀 더 은밀한 움직임을 택할 것이다.


캐서린 디글로 감독의 <허트 로커>는 미군 폭발물 처리반의 이야기를 다룬다. 윌리엄 제임스 중사는 유능한 폭발물 처리 요원으로 그려진다. 순간의 실수가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매 순간에서 그는 침착하게, 때로는 무모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계속되는 임무에 그는 단순히 무너지기 보단 생과 사의 갈림길 사이에서 분비되는 아드레날린 그 자체에 중독되어 버리고 만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임무를 마치고 귀환한 제임스 중사는 아내와 아들이 있는 평화로운 가정을 떠나 다시 전장으로 복귀하는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 대사는 다음과 같다. “전쟁의 짜릿함은 강력하고 치명적인 중독성이 있다. 전쟁은 마약과 같아서, 나는 그것을 수년 동안 흡수했다.” 영화는 전쟁이 남기는 정신적 외상의 또 다른 측면을 소개하고 삶과 전쟁 폭력과 죽음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풍부하게 한다.


게임의 진로


영화에서의 전쟁윤리는 꽤나 아름다운 결론으로 마무리 짓는다. 그렇다면 게임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폭력과 갈등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더욱 풍부하게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반전 영화는 없다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말처럼 현대 전장을 다룬 1인칭 슈팅 게임들은 전쟁의 스펙터클을 미화하는 프로파간다 기계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여러 가지 대안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현실을 향해 한 발짝 더 내딛는 것이라 생각한다. 보이드 인터랙티브의 <레디 오어 낫>은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SWAT 시리즈의 정신적 계승자를 자처하는 이른바 텍티컬 슈터이다. 거대한 전쟁이 아닌 테러리스트 무장 범죄자들과 대치하는 경찰 특수부대의 인물을 그리고 있다. 약간의 게임적 허용은 있지만 게임은 콜 오브 듀티 같은 게임들보단 훨씬 더 사실적인 총격전을 보여준다. 체력은 재생되지 않으며 방탄복은 무적의 방어막이 아니다. 플레이어와 적 모두 한 두 발의 총알로도 쉽게 무력화되며, 따라서 모든 틈과 구멍은 위협이고 모든 문과 통로는 죽음의 깔때기이다.


수많은 전현직 특수부대 출신의 군인들이 강조하듯 문 앞에 가만히 서 있는 행동 심지어 사전 준비 없는 막무가내식 진입은 높은 확률로 게임 오버를 의미한다. 중요한 변수는 점수다. 게임은 모든 임무가 끝날 때마다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데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플레이어는 경찰의 입장에서 인질을 구출하고 범죄자를 제압해야 하지만 전장은 무법지대가 아니므로 정해진 교전 수칙에 따라야 한다. 기저에 깔려있는 이상적 선택지는 항상 사살이 아닌 ‘체포’이며 용의자가 명백한 공격 의지를 보이거나 먼저 발포하기 전에 사살하면 게임은 허가되지 않은 무력 사용이라며 점수를 깎아버린다. 인질을 구출하거나 용의자를 제압할 때마다 하나하나 지휘부에 보고해야 하며 용의자가 떨어뜨린 총기 범죄에 쓰인 도구나 마약 같은 증거물들을 꼼꼼히 수집해야 한다.


또 하나의 예로 비교적 최근 출시된 <UNRECORD>는 외관에 집중했는데, 정말 살면서 본 그래픽중에 가장 현실과 가까웠다. 실제 안구는 평면이 아닌 구이므로 이에 어안렌즈를 차용하여 시점을 구현했다. 놀라운 것은 출시 이후인데, 은연 중 전쟁을 다룬 고증게임은 현실에 다가서야 한다고 믿어왔지만, 실제 시장 반응은 냉랭을 넘어서, 거부감과 비판이었다. 오히려 현실과 분간되지 않는 그래픽이 광대한 범위의 불편한 골짜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게임은 축소되거나 생략되곤 하는 현대 병기의 위력, 그 폭력이 가져오는 피할 수 없는 결과, 무엇보다 폭력이 작동하는 ‘방식’과 그 한계를 메커니즘을 통해 암시하고 전달한다. 이 경험을 통해 우리는 멋들어진 총을 들고 악당을 무찌르는 용감한 영웅들이, 실은 사회적 시스템의 일부로서, 고도로 훈련되었어도 결코 무적은 아니며 때로는 국가와의 계약에 따라 명백한 죽음 앞에 내던져지기도 하는 수많은 시민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깨닫게 한다. 전자의 게임에서 실제로 클럽에서 일어난 무차별 테러를 다룬 ‘네온 무덤 임무’에서 플레이어는 바닥에 버려진 채 진동하는 수많은 핸드폰을 마주하게 된다. 테러의 참혹함을 느끼게 해주는 이 연출은 사실 사전 공개 트레일러에서 한 차례 사용된 바 있다. 트레일러에서 핸드폰은 네온빛이 가득한 클럽이 아니라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책상 아래에서 울리고 있었다.

출처 : STEAM 상점 메인 페이지

아동의 죽음에 대한 직접적 묘사는 오랫동안 서구 게임계에서 하나의 금기였다. 아동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장면, 심지어 미국에서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있는 학교 총기 난사를 연상시키는 장면을 그렸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큰 논란거리가 됐고 유통사는 보이드 인터랙티브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혹자는 <레디 오어 낫>이 그저 불편한 전장 판타지일 뿐이라는 날선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다소 불만족스럽지만 결국 마지막에 남는 사실은 이 모든 것이 결국은 메시지와 뉘앙스 그리고 해석의 문제로 수렴한다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게임은 현실을 부단히 따라가는 것이 아닌, 인간 중심의 놀라운 경험을 만들어내는 창작물이라는 진리이다.


현실만이 유일한 진짜니까!


필자는 <Escape from tarkov>를 즐겨한다. 현존하는 밀리터리 fps중 대단히 하드코어한 게임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 게임은 필자를 총기 난사범이나 폭력 성향을 가진 부적응자로 만들지 않았다. 일부 보수적인 미디어와 학부모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 폭력을 재현한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반드시 현실의 폭력범 범죄로 이어지지는 않으며 미국의 수많은 총기 난사 사고에 대한 통계는 가장 중요한 공통점이 폭력적인 게임의 플레이 경험이 아니라, 거절과 소외 그리고 학대의 경험이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증언한다. 범죄의 징후는 당연하게도 살해나 폭력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었고, 근본적인 원인은 가상현실 속 폭력이 아니라 느슨한 총기 규제, ‘총기의 존재’ 그 자체였다. 사실적인 것과 사실인 것 한 글자 차이에 불과하지만 그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다. 게임의 사실적인 비주얼과 사운드는 그것이 아무리 현실성을 추구하더라도 언제나 화면 속 허구의 장벽 안에 갇혀 있으며 현실에 존재하는 건 오직 게임의 규칙과 놀이하는 인간 플레이어와 소프트웨어의 상호작용 뿐이다.


영화적 상상력, 드라마나 소설에서도 현대 전장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것을 실제로 하고싶어서가 아니라 그 스펙터클과 작은 모니터 내 공간이지만, 그를 뛰어넘는 흥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니까 현대전장에 나가고 싶은것이 아닌, 현대 전장의 구도나 전략, 첨단 광학장비를 이용한 세련되고 전문적인 전투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간접은 직접으로 이어지지 않는 최종 목적이다. 항상 간접은 직접의 전단계로 해석되곤 하지만 게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의 뇌내 모듈은 그리 단순하게 활성화되지 않으며 이성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청각과 시각을 통한 교란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그것이 교란임을 알아채는 순간 이성은 차갑게 현실로 회귀한다. 무엇을 보고 플레이했던 간에 그 해석과 결론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행동과 결과가 비윤리적인 것이 아니라면 그 자체로 비윤리적인 게임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영화의 창작자가 과거의 관객이었듯, 모든 게임의 개발자는 바로 플레이어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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