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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euli Sep 21. 2024

그럴 가능성은 없어요

수술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시아버님은 병원에서 안내해 주었던 대로 수술이 끝날 시간 즈음에 병원에 두어 차례 전화를 했지만, 여전히 수술 중이라고 했다. 아버님은 원래 수술은 다 예정보다 시간이 좀 더 걸리기 마련이라고 말하며 나와 시어머님 그리고 스스로를 담담한 척 다독이셨다.


네 번째 즈음 전화했을 때였을까?

베니의 수술이 끝났으니 병원에 와도 된다는 안내를 받고 우리는 병원으로 갔다. 베니가 중환자실에 있다고 했다. 회복실이 아닌 중환자실에 있는 것이 의아하긴 했지만, 마취에 깨는데 까지 남들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리나보다 했다. 중환자실에서 온갖 주삿바늘과 연결된 튜브를 꽂고 있던 베니를 마주했다.


우리가 중환자실에 있는 것을 발견한 여의사가 들어와 손에 있는 차트를 보면서 말했다.

"수술은 큰 문제없이 잘 진행되었어요."


베니는 우리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눈을 살며시 떴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와 베니의 안색을 살피는 나를 보더니 한국에서 배운 손하트를 만들고는 나지막하게 한국어로 "사랑해."라고 했다. 그리고 입술로 뽀뽀하는 모양을 만들어 공기뽀뽀를 했다.

나는 함박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려 내 옆에 서있는 베니 부모님을 향해 말했다.

"베니가 한국어로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베니는 그 후에도 부모님과 우리 앞에서 손가락 열개, 발가락 열개를 움직여 보이고, 무릎을 굽혔다 피는 동작을 했다. 그때는 무슨 생각을 가지고 그런 동작을 하는지 뚜렷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차를 타고 집에 들어오면서 아버님께서 말씀하셨다. 베니가 자신이 건강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안심시켜주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마취에 덜 깨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도 우리를 생각하는 베니의 세심한 마음은 여전했다.


그날 우리는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날 집으로 돌아가 함께 걱정해 주었던 사람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동안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베니의 수술은 큰 문제없이 잘 끝났다고 해요. 베니 아버님이 말하기를 의사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건 수술이 잘 되었다는 뜻이래요. 함께 걱정해 주시고 기도해 주셔서 감사해요.'

부모님에게도, 친한 친구들에게도 문자를 보내고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을 텐데 수고했고, 푹 쉬라는 안도와 위로의 문자를 받고 잠에 들었다.


둘째 날.

베니가 여전히 중환자실에 있다고 했다.

왜지?

어제와 똑같은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베니의 안색은 창백했다. 힘겹게 눈꺼풀을 올려서 내가 온 것을 확인한 베니는 말대신 공기 뽀뽀를 건넸다. 그 순간 어제도 사실 눈치챘지만 차마 입 밖으로 아무에게도 꺼내지 않았던 사실이 다시 확신이 되었다.

베니의 눈동자가 정확히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

뽀뽀 모양을 한 베니의 입술이 묘하게 어그러져있는 것


수술을 집도한 최고의 의사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자, 수술로 바빠서 보통 아침 또는 새벽에나 오기 때문에 그때 즈음 오라고 했다. 대신 수술에 참여했던 의사 - 어제보다는 좀 더 높은 직책에 있다는 의사가 중환자실을 방문했다. 키가 크고 호감형의 얼굴을 한 젊은 의사는 차트와  베니 침대 좌측 휘 놓여있는 흑백의 화면을 번갈아가며 보며 수술이 어떻게 진행되었고, 지금 상태가 어떠한지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20프로도 알아듣지 못했다. 나의 독일어 실력이, 아니, 내가 타지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답답하고 속상했다. 나중에 시부모님께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의사가 베니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의사가운 주머니에 있는 볼펜을 꺼내 베니 눈앞으로 가지고 가더니 베니에게 말했다.

"이 볼펜을 따라서 눈동자를 움직여 보세요."

베니는 좀 전까지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뜨더니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였다.

왼쪽 눈동자가 묘하게 이상했다.

의사가 말했다.

"지금 보시는 것처럼 왼쪽 안면 장애가 있어요."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내가 느꼈던 그 느낌이 맞았구나.

의사는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이는 뇌종양 수술 후에 종종 나타나는 증상으로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 가능성이 커요."


집으로 돌아와 나는 네이버를 켰다. 그리고 검색했다.

뇌종양 수술 후 안면마비

뇌종양 수술 후 안면마비 회복 확률

등등.


생각보다 검색 결과는 나쁘지 않았는데(어쩌면 좋은 결과의 글만 보려고 했을 수도 있다), 내 마음은 쉽사리 가벼워지지 않았다.


셋째 날.

베니는 여전히 중환자실에 있었다. 얼굴은 어제보다 더 창백해져 있었다. 이제는 내가 와도 눈을 떠 볼 힘조차 없는 것 같았다. 침대 위에 누워있는 사람이 분명 베니가 맞는데, 베니가 아닌 것 같았다. 환자 모니터링 기계의 혈압이 190에서 200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꾹 눌러냈다. 베니의 침상 옆에 앉아 찬송가를 불러주고, 오늘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했다. 울지 않는 것.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날 나를 마주한 여의사는 나를 위로해 주고 싶었는지 병실을 나가기 전 내게 말을 건넸다.

수술 직후 2-3일 정도 보호자들이 가장 많이 힘들어한다고.

매일 새로운 증상들을 마주하기 때문에. 하지만 이 시기가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넷째 날.

오늘은 제발 일반 병실에 있게 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오늘도 베니는 중환자실에 었었다. 중환자실 문 밖에서 기다리다 출입 허가를 받고 들어가는데 병원 웹사이트에서 사진으로 본 의사 - 최고 수술 집도의의 얼굴이 베니 병실문 너머로 보였다. 아마도 그의 매일 루틴, 베니를 포함한 담당 환자들을 돌아보고 나오다가 나와 마주친 것 같았다. 기회를 놓치면 안 되었다. 베니 부모님과 나는 그를 붙잡고 물어보았다. 수술 후 지금 상태가 어떠한 것인지.


왼쪽 얼굴 안면 신경 마비

왼쪽 눈 복시 현상으로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음

왼쪽 귀 청력 손상으로 안 들림

성대 신경 손상으로 목소리 안 나옴

무게중심 신경 손상으로 보행 장애


의사는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말했다.

강력한 통증 진통제를 맞고 눈을 감고 몽롱한 상태로 누워있던, 베니의 혈압 수치가 미친 듯이 치솟기 시작했다. 혈압 모니터링 기계가 삐삐 알람을 울렸고, 간호사는 방에 들어와 베니와 우리를 슬쩍 보더니 알람을 끄고 나갔다. 왜 환자 앞에서 그런 말을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하는지 화가 났다.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참으며 의사에게 이 증상들이 다시 회복될지 물었다.


"아니요, 힘들 거예요. 눈 복시 현상은 노력하면 좋아질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왼쪽 신경 손상된 것이 돌아올 가능성은 없어요."


의사는 이어서 말했다.

어떠어떠한 성형수술을 해서 겉으로 보기에 조금 더 나아 보이게 만들 수 있다.

보톡스를 맞아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등등.


그의 말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다.


잘못될 가능성이 3% 이하라면서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요?

이게 뭔가요?










* 이 글은 주관적인 시각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의학적인 내용 등에 있어 사실과 다르게 알고 있거나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말씀드리고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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