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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률 Jan 03. 2024

[영화 리뷰] 서울의 봄(2023)

 행주대교를 건너는 2 공수를 누군가 홀로 멈춰 세운다. 전두광(황정민)은 그게 누구나며 정찰병을 다그친다. 돌아오는 무전은 그저 한 사람이 막고 있다는 외침이다. 2 공수는 결국 회군한다. 서사적으로나 연출적으로나 영화의 유일한 승리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순간의 공로자는 적군을 막아낸 '이태신(정우성)'도, '투 스타'도, '사령관'도 아닌 단지 '한 사람'으로 거명된다. 그 뒤 모든 걸 잃은 이태신에게 전두광은 대화로 해결하자며 도발한다. "대화는 사람끼리 하는거야" 이태신은 일갈한다. 사람이 아니라는 일침. 온갖 질책과 비난에도 끄떡없던 전두광의 동요가 짧고 굵게, 결말에 다가가서야 처음으로 화면에 비친다.


 이태신이 항복하고 사태가 마무리되었다. 전두광은 기쁨에 몸부림치고 싶었고 본부로 돌아가는 차를 세워 내린다. 기껏 대로로 걸어 나가지만 보는 사람이 많다. 하나회가 모여있는 본부도 마뜩잖다. 그는 더러운 화장실로 숨어서야 자신의 이악스러움을 밑바닥이 보일 때까지 토해내며 기뻐한다. 그의 숨는 행동은 자기 잘못의 인지라기보다는 오염된 거처로 돌아가는 시궁쥐의 본능적 반응에 가깝다. 이에 조응하듯 영화 시작부터 그를 위엄 있게 쏘아보던 낮은 앵글의 클로즈업은 화장실의 낮은 천장에 찬탈자를 가두는 롱쇼트로 격하된다.


 이렇듯 <서울의 봄>은 선역과 악역을 확실하게 선 긋는 연출로 나이브한 대립 구도를 조성한다. 그 부작용으로 인해 적당히 인간답고 비인간적일 수밖에 없는 보통의 인물들은 탐구 대상에서 배제된다. 실제 역사는 그런 인물들에 의해 굴러가는데 말이다. 하지만 반역자를 전력으로 부정하는 영화로서 이런 스탠스는 한편으론 정직하다. 나아가 캐릭터의 어투 하나하나까지 챙긴 성실한 각본과 배우들의 호연, 목적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연출은 최대 다수의 관객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다. 다큐멘터리에서 볼 법한 잘 만들어진 인포그래픽도 관객이 복잡한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하는 장치로 제대로 기능한다. 준수한 대중 영화다.


 연말 연초라 모임이 잦다. 한 해를 정산하는 만남이니 다양한 이야기들이 각자의 사정에서 오간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다뤄지지 않은 모임은 없었다. 사실 관계에 대한 비판도, 결말에 대한 호불호도 있을 테다. 그 평가가 어떻든 영화는 대중을 감정적으로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이 감상을 지렛대 삼아 근현대사의 상흔을 공통의 대화 주제로 들어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서울의 봄>의 성공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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