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동안 입안에서만 굴리던 한 문장이 있었다. 분홍색 연필이 똑 소리를 내며 부러지던 날부터 시작된 말이었다. 여름 운동장은 달궈진 철판처럼 숨을 토했고, 은행나무 잎사귀는 눈이 시릴 만큼 노랗게 빛났다. 하윤과 지안은 맨발로 모래 위를 달렸고, 그늘에 앉으면 어깨가 자연스럽게 맞닿았다. 계절은 너무 눈부셔서, 그 순간이 끝날 거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둘은 늘 붙어 다녔다. 급식 시간에는 싫어하는 반찬을 몰래 바꿔 먹었고, 체육 시간에는 서로의 머리끈을 고쳐 묶어주었다. 운동회가 끝난 날, 둘은 아무도 없는 운동장 한가운데 모래 위에 나란히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노을은 분홍빛으로 번져 있었고, “우리 어른 돼도 여기 다시 오자.”라는 약속은 웃음 사이에 섞여 가볍게 흩어졌다. 그때 하윤은 지안이 손등에 살짝 그려준 하트 모양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비가 하루 종일 내리던 날, 교실에는 젖은 흙냄새와 분필 가루가 뒤섞여 있었다. 창문을 타고 흐르던 빗물은 유리 위에 가느다란 길을 만들었고, 매미 소리 대신 빗소리가 교실을 채웠다. 지안은 분홍 연필로 하윤의 공책 맨 뒤에 이름을 적어주며 “지워져도 괜찮아. 우리가 쓴 건 우리가 알잖아.”라고 속삭였다. 번져가는 글씨 위로 두 사람의 웃음이 포개졌다. 그날의 분홍은 유난히 따뜻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공기 속에 보이지 않는 틈이 생겼다. 선생님의 칭찬이 지안을 향해 쏟아지던 오후, 박수 소리는 유난히 크게 울렸다. 하윤의 손끝은 이유 없이 차가워졌고, 공책 모서리를 괜히 세게 눌렀다. 시험이 끝난 뒤, 지안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연필을 손에 쥐었다. 매끈한 촉감이 괜히 거슬렸고, 아주 잠깐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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