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가 바뀌는 순간, 나는 한 발을 내딛지 못했다. 초록불이 번지듯 켜지며 세상이 나를 재촉했지만, 발끝은 흰 선 위에 붙은 그림자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아주 짧은 망설임이었다고,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 짧음은 귓속에 남은 한 줄의 소리처럼, 시간이 흘러도 끊어지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한 걸음의 길이를 다르게 배우게 되었다.
초등학교 1학년의 오후는 언제나 밝고 단순했다. 햇살은 교실 바닥 위에 네모난 빛을 내려놓고, 분필 가루는 공기 속에서 조용히 떠다녔다. 아이들의 웃음은 종이 울린 뒤에도 복도를 따라 길게 이어졌고, 작은 발소리들은 웃음을 따라 흩어졌다. 그 속에서 서윤과 지우는 늘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같은 속도로 웃고, 같은 시간에 멈추던 두 아이였다.
지우는 먼저 웃는 아이였다. 단발머리는 바람을 만나면 가볍게 흔들렸고, 눈꼬리는 늘 웃음을 머금은 채 살짝 올라가 있었다. 손을 잡을 때도, 누군가를 부를 때도 주저하지 않았고, 세상은 늘 한 걸음 먼저 건너는 쪽이라고 믿는 아이였다. 반대로 서윤은 한 박자 늦는 아이였다. 대답하기 전 잠깐, 발을 떼기 전 잠깐, 늘 보이지 않는 틈이 존재했다. 틈 사이로 스며드는 감정은 작았지만 오래 남았다.
그날도 별다르지 않게 시작되었다. 가방을 메고 교실을 나서려던 순간, 서윤의 시선이 책상 서랍에 붙잡혔다. 그 안에, 햇빛을 받아 조용히 반짝이던 펜 하나가 남아 있었다. 오늘 꼭 쓰겠다고 마음먹었던, 손에서 놓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물건이었다. “먼저 가, 금방 올게.”라는 말은 가볍게 떨어졌고, 지우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빨리 와.”라는 짧은 말이 공기 속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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