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시간의 틈새

by 꿈담은나현


사진 한 장이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희뿌연 윤곽은 뿌연 유리창처럼 흐릿했고,

그 속 인물은 마치 잉크 번짐처럼 두 겹의 형체로 겹쳐 있었다.


강이안은 고개를 기울였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동자, 경계선이 무너진 어깨선, 그리고

그림자처럼 겹친 또 하나의 실루엣.


손끝이 떨렸다.

사진 속 인물의 눈동자가, 그를 보고 있었다.

선명하지 않은 얼굴인데도, 그는 분명히 느꼈다.

그 시선이 자신을 관통하고 있다는걸.


‘이건……. 한 사람이 아니야.’

속으로 내뱉은 말이 공간 안을 떠돌았다.

말의 형체는 없었지만, 공기가 묘하게 울렸다.


그 순간, 사진관의 벽시계가 툭 하고 멈췄다.

초침이 추락하듯 고꾸라졌고,

고요는 마치 유리잔 속, 고인 물처럼 탁하게 고여 들었다.

시간이 숨을 죽였다.


“흐려져 있어요.”

하루가 다가와 사진을 들여다봤다.

목소리는 종이 위를 스치는 빗방울처럼 낮고 떨렸다.

그녀의 손이 살짝 떨리는 걸 이안은 알아차렸다.


작고 가는 손가락.

그 안에서 느껴진 떨림은 단순한 놀람이 아닌, 공포에 가까웠다.

“감정이 겹치면, 그림자도 겹쳐요.”

그 말은 경고 같기도, 체념 같기도 했다.


사진의 가장자리는 오래된 벽지처럼 벗겨져 있었고,

중앙에는 흐릿한 두 인물이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그러나 그 사이엔 어긋난 손끝, 닿을 듯 말 듯한 거리.


“……. 이건, 아직 끝나지 못한 감정인가요?”

이안의 목소리가 그의 심장보다 늦게 울렸다.

감정을 꺼내어 붙잡고자 할수록,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흘러내리는 기분.


하루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놓치기도 했어요.

그러면 감정은 이렇게……. 엉켜요.

사랑이었던 건지, 죄의식이었던 건지,

죽은 뒤엔 그걸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요.”


그녀의 눈동자엔 희미한 어둠이 드리워졌다.

그건 마치, 오래전 자신이 겪은 이야기처럼 들렸다.

문이 열렸다.

종은 울리지 않았다.

대신 공기 속에 껄끄러운 마찰음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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