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신뢰
장영자 어음사기 사건 – 권력과 신뢰
“위에서 다 알고 있는 일입니다.”
장영자 어음사기 사건이 발생하던 1980년대 초반의 대한민국은 국가 주도의 고도성장이 막바지에 이르던 시기였습니다. 금융 시장은 아직 충분히 개방되지 않았고, 많은 것들이 불투명 했으며, 정부나 고위관료의 입김은 막강했습니다.
기업과 금융은 제도보다는 인맥과 신뢰, 그리고 ‘위와의 연결’이라는 비공식적 요소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장영자는 군사정권 핵심 인사인 중앙정보부 차장 출신 전직 국회의원 이철희와의 혼인 관계를 통해 강력한 사회적 신뢰를 확보하고 있었고, 늘 돈을 뿌리고 다녀 주위에 ‘난 돈 많은 사람이다’ 라고 광고를 하고 다녔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권력과의 연결은 그 자체로 신용을 의미하는 요소였고, 돈이 많다는 이미지를 장영자는 가장 큰 자산으로 활용하였습니다. 그녀는 공식 직함이나 제도권 지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재계 인사들과의 접촉을 통해 자신을 ‘위에서 모든 것을 조율할 수 있는 인물’로 인식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장영자⦁이철희는 자금난을 겪는 기업들에게 접근하여 자기들이 정부의 특수자금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그 돈을 재원으로 하여 기업들에게 현금을 빌려주고, 그 댓가로 빌려준 돈의 몇 배 많게는 9배에 이르는 약속어음 발행을 요구 했습니다. 불안해 하는 기업들에게는 이를 할인하지 않을 것이고, 담보 목적으로 받는 다고 거짓말 하였습니다.
자기가 빌린 돈 보다 터무니 없이 많은 액수의 어음을 발행하는 행위는가 얼마나 위험한지 기업의 대표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업대표들은 장영자와 이철희 부부의 정치적인 배경과 나중에 철저히 어겨진 약속을 믿고 빌린 돈 보다 훨씬 많은 액수의 약속어음을 발행해 주었습니다.
당연히 장영자·이철희는 기업들로부터 받은 어음을 약속대로 금고에 보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어음을 사채시장에 즉각 유통하여 현금을 마련했고, 그 돈을 가지고 다시 다른 기업에게 빌려주며 더 큰 액수의 어음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그 어음을 또다시 할인·재유통하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기업의 생사여탈권인 어음을 가지고 벌인 이 잔인한 돌려막기 게임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그들이 유통한 어음의 총액은 무려 6,404억 원에 달했습니다. 결국에는 터져 버려 연쇄 어음부도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기업들은 만성적인 자금 부족에 시달렸고, 공식 금융권을 통한 자금 조달은 까다롭고 느렸습니다. 그 결과 어음과 차관, 보증을 통한 비공식 금융 거래가 사실상 관행처럼 이루어지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가뜩이나 자금이 간절한 상황이었지만, 문턱 높은 은행은 냉정하게 등을 돌렸고 제도권 금융 어디에서도 활로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장영자라는 '믿을 만한(?)' 구원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녀는 단순한 전주(錢主)가 아니었습니다. 장영자의 제안은 파격적이었습니다. 까다로운 부동산 담보나 연대보증 대신, 오로지 ‘어음 발행’만을 요구하며 거액의 현금을 내놓았습니다. 자금줄이 말랐던 기업 대표들에게 담보도 없이 돈을 빌려준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특혜였습니다.
그들은 의심하기보다 안도했습니다. "저 정도 권력 배경을 가진 거물이라면, 감당하기 힘든 거액의 어음을 발행하더라도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충분히 뒤를 봐줄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에 빠져들었습니다.
하지만 사기꾼에게 '무담보'란 배려가 아니라 탈취의 기술이었습니다. 자금 압박에 시달리던 기업가들에게 그녀의 제안은 가뭄 끝에 만난 단비와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대지를 적시는 단비가 아니라, 마시는 순간 몸을 마비시키는 '독이 든 성수'였습니다.
기업인들은 당장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그 물잔을 들었습니다. "이 어음이 유통되면 망한다"는 상식적인 경고음은 "저 배경이라면 설마 큰일이야 나겠어?"라는 안일한 기대와 "일단 살고 보자"는 절박함에 묻혀버렸습니다. 사기꾼은 기업가들의 그 ‘절박한 간절함’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 간절함은 사기 설계가 완벽하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가장 강력한 연료가 되었습니다.
기업의 생사와는 별개로 당시 기업의 대표들은 장영자가 빌려준 금액에 비해 훨씬 많은 액수의 약속어음 발행을 요구하는 단계나 당시 금융권에서도 쉽게 보기 어려웠던 거액의 약속어음 할인을 요구하는 대목에서 나중에 자신에게 개인적으로 다가올 형사적 피해에 대하여 진지하게 의문을 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문은 있었지만 장영자가 앞에서 흔드는 현금 다발을 보는 순간 그 의문은 빠르게 흐려졌을 것이고, 곧 장영자의 말에 동조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장영자⦁이철희의 배경을 믿었고, 사고가 터지더라도 그들이 막아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설마 정권 핵심과 연결된 사람이 사기를 치겠어?”
“이 정도 인맥이면 함부로 어음을 돌리진 못하겠지..”
“문제가 생겨도 정치적으로 정리가 될 거야..”
어음은 무서운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번 발행되는 순간, 그것은 원래의 원인 거래(장영자와의 금전 소비대차)와 완전히 분리됩니다. 이를 법적으로는 ‘어음의 무인성(無因性)’이라 부르는데, 사기꾼들은 이 법리를 누구보다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기업 대표들이 "절대 유통하지 않겠다"는 장영자의 사적인 약속을 믿고 펜을 굴리는 사이 그들이 발행한 어음은 채무자인 기업의 동의나 통지도 없이 제3자에게 무차별적으로 양도되었습니다. 시장에서 할인되고 재유통되는 과정에서 어음은 더 이상 '담보'가 아닌, 누군가는 반드시 터뜨려야 할 ‘폭탄돌리기 게임’의 폭탄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발행자는 전혀 모르는 제3자가 적법한 소지인이라며 나타나 거액의 대금을 청구할 때, 기업은 "사기를 당했으니 못 주겠다"는 항변조차 할 수 없게 됩니다. 장영자가 약속을 어겼다는 사실은 기업과 장영자 사이의 문제일 뿐 어음의 독립적인 생명력 앞에서는 무력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담보로만 보관될 것이라는 어음”은 기업의 통제 밖으로 나가 위험한 시한폭탄이 되어버렸습니다. 기업들이 철썩 같이 믿었던 장영자⦁이철희는 이제 그 거래와는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 되어 버리죠.
장영자·이철희는 바로 그 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정상적인 기업이 아니라, 이미 벼랑 끝에 서 있던 회사들을 골라 접근했습니다.그리고 그 회사들이 “이 제안마저 거부하면 끝”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점을 자기들의 무기로 삼았습니다. 어차피 부도를 앞둔 회사들을 이용해 그들은 기업의 명의와 신용을 빌리고, 그 명의로 발행된 약속어음을 사채시장에 유통시켜 현금을 끌어왔습니다.
회사는 잠시 숨을 돌리는 것 같았지만 그 대가는 자기 능력을 훨씬 초과하는 채무였고, 그 채무는 회사가 무너지는 순간 시장과 제3자에게 전가되었습니다. 장영자⦁이철희 사건에서 기업은 사기를 굴리기 위한 도구였을 뿐입니다. 기업 대표들은 허위 또는 과다한 약속어음을 발행한 혐의로 사기, 배임, 그리고 부정수표단속법 위반 등으로 줄줄이 형사처벌을 받았습니다.
"위에서 다 알고 있다"는 말 한마디에 기업가들은 자본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원칙인 '상환 능력'과 '유가증권의 위험성'마저 망각했습니다.
장영자·이철희는 단순히 돈을 훔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국가 전체의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훔쳤고, 기업이라는 조직의 명의를 사기 행각의 '숙주'로 활용했습니다. 결국, 주인이 떠난 자리에는 휴지조각이 된 어음 다발과 일터를 잃은 노동자들 그리고 무너진 경제 질서만이 남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수법은 달라졌지만 본질은 같습니다. "정치권 누가 밀어준다", "고위직 누구와 친하다"는 말로 투자자를 안심시키는 모든 행위는 1982년 장영자가 뿌렸던 독초의 씨앗과 그 유전자가 정확히 일치합니다.
아직도 과거 군사독재시절 최고권력자의 비자금, 중정의 비밀자금, 필리핀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수천억원 상당의 금괴 등을 들먹이며 그 당시를 기억하고 있는 노인들의 돈을 사기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장영자 어음사기 사건의 피해자는 기업, 금융 관계자, 중견 사업가 등 당시 사회에서 일정한 지위와 판단 능력을 갖춘 이들이었고, 피해 규모는 당시 기준으로 수천억 원대에 달하였으며, 이는 단일 사건으로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수준이었고, 공영토건이나 일신제강 등은 부도까지 났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개인 피해를 넘어 금융 질서 전반에 대한 신뢰를 크게 흔들었고, 대한민국에 '금융실명제' 논의가 본격화되었습니다.
1982년 장영자와 이철희는 구속·기소되었고, 각각 징역 15년형과 함께 몰수 및 추징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형 전부를 복역하지는 않았고, 가석방 등을 거쳐 약 10년이 지난 1992년 전후 사회로 복귀하였습니다.
장영자는 출소 이후에도 다시 사기 범행을 저질러 수차례 처벌을 받았으며, 최근 2026년 1월 14일 82세의 나이로 이미 구속중인 상태에서 사기죄 유죄를 선고받아 징역 10개월을 선고 받았습니다.
장영자가 '권력의 그림자'와 '비공식적 인맥'을 무기로 소수의 거물과 기업을 사냥했다면, 시대가 변하면서 사기는 더 넓고, 더 깊고, 더 대중적인 영역으로 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사기꾼들은 권력자의 이름을 빌리는 대신, '우리'라는 집단의 열망을 빌리기 시작합니다.
그 진화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조희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