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팔 사기 사건

집단과 분위기

by 김태호


“지금 안 들어오면, 나중에는 기회가 없습니다.”

조희팔 사기사건은 대한민국에서 다단계·유사수신 범죄가 대규모·조직적 형태로 확산되는 계기가 된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조희팔 사기사건이 시작된 2004년경 대한민국은 외환위기 이후 비교적 빠른 경제 회복을 이루었지만, 그 과정에서 심각한 양극화와 불안정성이 누적된 시기였습니다.

금융 상품은 복잡해졌고, 개인들은 낮은 금리와 불안정한 미래 속에서 안정적이면서도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처를 찾고 있었습니다.


IMF 이후, ‘한 방 신화’의 탄생


역설적으로 IMF 외환위기는 단기간에 큰 자산을 축적한 이른바 ‘신흥 부자’들을 대거 탄생시켰습니다. 구조조정과 자산 가격의 급변 속에서 누군가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누군가는 같은 환경 속에서 큰 수익을 거두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목격되었습니다.


필자가 아는 어떤 분은 평소라면 절대로 매물로 나오지 않았을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는 건물을 가진 기업이 부도가 나면서 그 부지와 건물이 경매에 나왔는데, 당시 시장 분위기는 냉담했습니다. "아무리 입지가 좋아도 지금 같은 시국에 저 건물을 낙찰받는 건 정신 나간 짓"이라며 손가락질하는 이들이 태반이었습니다. 모두가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설 때, 그분은 탁월한 결단력과 실행력으로 집안의 모든 자금을 동원해 낙찰을 받았습니다. 이후 낡은 건물을 허물고 주상복합을 지어 올린 그분은 현재까지 막대한 월세 수입을 올리며 인근 건물까지 매수하여 자산가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대한민국 대중의 무의식에는 “위기 때 한 방을 잡은 사람이 인생을 바꾼다”라는 강력한 인식이 뿌리 내렸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실력이나 장기적인 자산의 축적보다, 결정적인 찰나에 내리는 단 한 번의 선택이 생의 경로를 영구히 갈라놓는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위기 속에서 모든 것을 잃고 스러져간 비극적인 이야기보다, 같은 위기를 틈타 단기간에 자산을 수십, 수백 배로 불린 극소수의 성공담이 훨씬 더 강렬하고 자극적으로 소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차근차근 쌓아가라”는 조언은 현실을 모르는 말처럼 취급되었고,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없다”는 말이 합리적인 판단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습니다. - 이런 인식은 현재에도 팽배합니다.

이 인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위험을 감수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위험을 정상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습니다.

1957년 경상북도 영천군(현재 영천시)에서 태어난 조희팔은 성인이 되어 소규모 장사나 유통업을 전전 하였고,금융권이나 대기업 출신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조희팔 사진-

그러나 그는 사업가로서의 외형을 갖추고, 지역 사회와 종교 단체, 지인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며 자신을 ‘성공한 실업가’로 포장하는 데 능숙했습니다.

조희팔의 핵심 수법은 의료기기·바이오·신기술 투자 등을 내세운 유사수신 방식이었습니다.


현대의 ‘리츠(REITs)’ 처럼 보였던 사기 구조


피해자들에게 설명된 구조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피해자들이 회사에 자금을 투자하면, 회사는 그 자금으로 의료기기를 매수하고, 이를 병원 등에 임대하여 발생하는 임대료를수익의 재원으로 삼아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지급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피해자들에게 설명된 구조만 놓고 보면, 투자자가 자금을 출연하고, 회사는 그 자금으로 실체 있는 자산을 매입한 뒤 임대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그 수익을 투자자에게 배분한다는 설명은 오늘날의 리츠 구조와 매우 닮아 있고,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부동산 리츠는 어떤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지, 임대차 계약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임대수익이 얼마인지가 외부에서 검증되는 구조이고, 리츠사가 설립되기 위해서는 자기자본 50억원 이상에 자산구성이 부동산 70%, 증권 및 현금 포함 80% 이상 (최저자본금 확보 이후 현금출자 가능) 보유 하여야 하며, 국토교통부나 금융위원회의 까다로운 감독을 받습니다.

반면 조희팔의 구조에서는 자산의 실체와 임대수익의 발생 여부를 투자자가 확인할 방법이 없었고, 수익은 검증된 결과가 아니라 설명된 이야기에 불과했습니다. 리츠는 수익이 줄어들면 배당도 줄어들지만, 조희팔의 구조에서는 수익이 줄어들 가능성 자체가 처음부터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사업의 구조와 설명 단계부터 사기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습니다.


전형적인 폰지 구조


결국 조희팔이 피해자들에게 설명한 사업구조는 ‘안정적인 임대수익’이라는 외형만 빌려 검증과 책임을 제거한 유사수신 구조였습니다. 투자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누군가의 신규 자금이 다른 누군가의 수익으로 전환되는 구조였던 것입니다.

의료기기 임대수익만으로 약속된 수익을 감당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고, 애초에 의료기기 임대 같은 사업구조는 홍보물이나 사업설명회에서나 존재 했었습니다. 실제 의료기기를 매수하거나 임대가 이루어지긴 하였으나, 이는 투자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일 뿐이었습니다.

실제로는 새로운 투자자의 자금이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으로 지급되는 전형적인 유사수신·폰지 구조에 불과하였으며, 초창기 이루어진 배당은 더 많은 돈의 재투자와 신규투자자를 유입시키기 위한 미끼였습니다.

자금 유입이 계속되는 초기에는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투자자 모집이 둔화되거나, 조희팔이 설정한 특정한 시점에는 그 순환 구조가 순식간에 붕괴되었고, 배당은 중단되었으며, 조희팔 일당은 그 때 까지 모은 돈을 가지고 사라졌습니다.


개인이 아닌 ‘집단’을 속인 사기


조희팔 사기의 가장 큰 특징은 사기가 개인 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과 집단을 통해 확산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개개인을 직접 설득하기보다 투자 설명회, 간증, 수익 인증, 기존 투자자의 성공 사례를 반복 노출 시켰고, 사기 피해자가 중간책이 되어 다른 피해자를 모집 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판단을 개인의 이성보다 집단의 분위기에 맡기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의심은 신중함이 아니라 ‘기회를 놓치는 행동’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 참여자들이 더 많은 배당을 받고, 등급상승, 포상 해외연수를 위해 인맥과 관계망을 총동원하여 모집한 신규 회원들의 투자금 유입에 의존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조희팔은


고정 수익 보장!

원금 손실 없음!

일정 기간 후 수익 지급!


이라는 조건을 제시하며 자금을 모집하였고, 초기 투자자에게는 실제로 약속한 수익을 지급하여 신뢰를 강화했습니다.


조희팔 사기사건의 피해자는 전국적으로 수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피해 금액 역시 약 4조 원 이상으로 평가되며, 개별 사건으로는 대한민국 사기사건 중 최대 규모 중 하나로 꼽힙니다.

피해자들은 전문 투자자가 아니라, 은퇴자, 자영업자, 주부 등

평범한 일상 속의 시민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자기가 모은 돈은 물론 빌려서 까지 조희팔에게 상납 했습니다. 그리고 지인 관계를 통해 사기에 노출되었다는 점에서 정신적·사회적 피해 역시 막대했습니다.

조희팔은 수사가 본격화되기 전 뇌물을 먹인 경찰들과 검사들의 도움을 받아 해외로 도피하였고, 중국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실제 장례식 영상도 공개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망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오랫동안 이어졌으며, 조희팔이 살아있는지 사망 하였는지 여부는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이라면 사망을 조작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조희팔의 유사수신행위 사건이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뒤흔들었고, 뉴스 등 미디어를 통해 수많은 국민이 그 심각성과 구조, 문제점을 뼈아프게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이와 소름 돋게 닮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 조희팔이 '의료기기'를 내세웠다면, 최근의 사기꾼들은 그 자리에 '가상자산(코인)', 'AI 산업', 'NFT‘, ’태양광 사업' 등 대중이 체감하기엔 어렵지만 유망해 보이는 최첨단 용어들을 갈아 끼웁니다.


불행히도 아직도 서울 중앙지방법원 앞에서는 유사수신행위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이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장영자 어음사기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