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인 거래의 외피를 쓴 구조적 범죄
불특정 다수인이 불특정 다수인을 사기친다
장영자 사기사건이나 조희팔 사기사건은 비록 그 규모와 방식은 달랐지만 적어도 사기 범행을 주도한 인물 혹은 대표적인 가해자가 분명히 존재하였습니다. 사건의 책임을 귀속시킬 대상 역시 비교적 명확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전세사기 사건은 이와 본질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전세사기는 특정 개인이 주도하여 다수를 속인 사건이라기보다는 임대인, 중개인, 투자자, 그리고 세입자가 각자의 위치에서 통상적인 행위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사기가 완성되는 구조적 범죄에 가깝습니다.
이 과정에서 누구도 스스로를 ‘사기범’이라고 인식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불특정 다수인이 불특정 다수인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히는 구조가 형성되었습니다.
전세사기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기존의 대형 사기사건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전세사기가 발생한 경우 피의자로 지목되는 사람의 1순위는 임대인 즉 집주인일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발생하는 전세사기 범행에서 가장 비난 가능성이 크고, 또 범행에 따른 수익을 가장 많이 챙겨가는 사람은 집의 소유자가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2010년경부터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수한 뒤 집값이 오르면 다시 전세를 끼고 매도하는 이른바 ‘갭투자’가 하나의 투자 방식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는 일정한 자본력과 신용 그리고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정보 접근성이 필요하였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를 원하더라도 직접 실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점을 이용하여 부동산 컨설팅 업체, 일부 부동산 중개업자, 분양대행사 등의 명칭을 가진 회사나 개인들 즉 ‘설계자’들이 등장하였습니다. 이들은 분양되지 않고 있는 신축빌라를 이용하여 인근 시세보다 저렴한 전세가격으로 세입자들을 유치한 후 자산 거의 없고, 신용 상태가 불량한 사람들에게 자기자본 없이 부동산 투자를 할 수 있는 것처럼 설명하며 주택의 명의상 빌라의 소유자 명의를 변경 하였습니다.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상태에서 소유자가 변경되면 새로운 소유자가 임대차계약을 그대로 승계하고, 그 과정에서 임차인에게 별도의 통지를 하거나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이용한 것입니다.
그러한 상태에서 새로운 소유자가 일부 빌라들에 설정된 근저당권에 관한 이자를 내지 못하거나, 막대한 종합부동산세, 재산세를 내지 못하면 그자가 가진 빌라들은 강제경매에 넘어가게 되고, 그 과정에서 비로소 세입자들은 빌라의 소유자 즉 임대인이 변경되었다는 것과 본인이 계약한 전세계약의 전세가격이나 집의 가격이 터무니 없이 부풀려 졌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시점에서 세입자에게 남은 선택지는 거의 없습니다. 보증금의 상당 부분을 떼이고 거리로 나앉거나, 아니면 보증금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세보다 비싼 값에 그 빌라를 직접 낙찰받는 ‘울며 겨자 먹기’식 해결뿐입니다.
사기꾼들은 세입자가 전 재산을 잃지 않기 위해 결국 스스로 집을 사게 될 것이라는 점까지도 그들의 추악한 계산기 속에 미리 넣어두었을 것입니다.
필자가 다룬 사건중에 별다른 자산이나 소득이 없는 40대 후반의 인물이 명의상으로만 약 1,500억 원 상당의 다수의 빌라를소유하고 있는 사례도 존재하였습니다. 나중에 엄청난 액수의 종합부동산세가 그 남성에게 부과 되었고, 결국 남성의 명의의 빌라들이 경매에 넘어가게 되면서 임차인들이 비로서 전세사기임을 알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설계자들은 은행직원들과 공모하여 주택의 감정가를 인위적으로 부풀려 대출을 많이 받을 수 있게 하거나, 시세에 비해 과도한 전세보증금으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도록 유도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도 실질적으로는 공범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이를 형사적으로 공범으로 적발하고 책임을 묻는 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합니다.
이처럼 최근의 사기 범죄는 조직화 된 형태로 이루어지면서도,겉으로는 합법적인 거래와 절차를 가장하고, 투자나 거래를 넘어 주거와 금융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영역까지 깊숙이 파고들고 있습니다.
과거의 사기는 비교적 특정한 계층이나 일부 사람들만 당하는
이른바 ‘남의 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기는 누구라도 일상 속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이 사기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조차 즉시 인식하지 못한 채 빠져들게 되고, 사기임을 알아챘을 때, 피해자에게 남은 선택은 사실상 없습니다.
이미 법적으로는 임대인이 바뀌어 있고, 어음은 유통되었으며, 코인 지갑은 비워진 상태입니다. 사기꾼들은 법과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피해자를 '선택지가 없는 외통수'로 몰아넣은 뒤 사라집니다. 이때부터 피해자는 "사기를 당하지 않을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또 다른 빚을 내야 하는" 비극적인 결정을 강요받게 됩니다. 전세 보증금을 지키기 위해 원치 않는 집을 낙찰받거나, 소송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생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바로 그것입니다.
더 큰 문제는 사기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진짜 가해자가 명확히 특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여러 단계와 여러 주체가 관여한 구조 속에서 누가 실제로 범행을 설계하고 주도했는지 또 수많은 가담자 중 누가 주범인지 가려내는 일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그 결과 피해자는 명백한 손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물을 대상조차 명확히 특정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법률 Tip] 전세사기 당했다면 어떻게 해야
전세사기임을 깨닫는 순간(경매 통지서를 받거나 임대인과 연락이 두절되었을 때), 감정에 휩싸여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됩니다.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습니다.
1. 대항력과 우선변제권 사수 (가장 중요)
경매 절차에서 보증금을 배당받거나 낙찰자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점유'와 '전입신고'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만약 피치 못하게 이사를 가야 한다면, 반드시 법원에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하고 등기부등본에 기재된 것을 확인한 후에 움직여야 합니다.
2. 권리관계 재확인 및 서류 확보
인터넷 등기소에서 현재 시점의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다시 받아야 합니다. 계약 당시에는 없던 세금 체납으로 인한 압류, 근저당권 설정, 소유권 변경 내역을 확인해야 합니다.
3. 전세사기피해자 결정신청
전세사기피해자 지원관리시스템 홈페이지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결정신청을 하시기 바랍니다.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피해자로 결정되면, 경매 유예·정지 신청, 저리 대출 지원, 우선매수권 부여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4. 형사 고소와 민사 소송의 병행
형사 고소: 임대인뿐만 아니라 배후의 설계자, 공인중개사 등을 사기죄로 고소하십시오. 수사 과정에서 드러나는 공범 관계와 자금 흐름은 향후 민사 소송의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민사 소송: 보증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하여 판결문을 확보하십시오. 이는 강제경매를 신청하거나 배당 요구를 하기 위한 기초가 됩니다.
[법률 Tip] 경매 통지서를 받았다면? 세입자 행동 요령
경매 통지서에 사건번호가 기재되어 있을 것입니다. 법원경매정보-경매사건검색 사이트에서 사건번호(예:2026타경1234)를 입력하고 사건검색을 하여 관할법원과 관할경매계 전화번호,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매절차를 확인해야 하고, 특히 배당요구 종기일을 확인 한 후 배당요구 종기전 까지 반드시 배당요구를 해야 합니다.
경매 기일이 정해지면 경매기일에 출석하여 해당 주택을 낙찰받고 낙찰대금을 보증금 반환채권으로 상계신청을 하시는 것이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입니다. 다만, 주택에 심각한 하자가 있는 경우에는 낙찰을 신중히 결정해야 합니다.
결국 사기는 그 시대상을 투영하는 가장 정직한 거울입니다. 서민의 자산이 전세에 묶여 있을 때는 보금자리를 정조준한 전세 사기가 득세하고, 가상화폐나 주식 투자가 신분 상승의 유일한 사다리로 여겨지면 그 갈망을 이용한 리딩방 사기가 기승을 부립니다. SNS의 화려함 뒤로 외로움이 깊어질 때 로맨스 스캠은 그 빈틈을 파고들며, 때로는 국가의 권위마저 빌려 정부 정책의 탈을 쓴 채 우리를 현혹합니다.
우리가 사기의 역사를 되짚어본 이유는 명확합니다. 사기꾼이 시대의 흐름을 이용해 껍데기를 바꿀 때, 우리는 그 속의 변하지 않는 '사기의 공식'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파는 아이템은 매번 달라지지만, 그 본질은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당신만 뒤처진다"는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을 건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사기꾼들이 파놓은 그 뻔한 함정에, 왜 당대 최고의 지성들조차 그토록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가? 사기꾼이 건네는 달콤한 마취제가 우리 뇌의 어떤 취약점을 공략하는지, 이제 그 답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