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는 예의

사람이 그리웁다 #16

by 채온




누구에게나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참으로 조심스럽고,

어려운 것들 몇 가지.


무엇보다 나는

상대방 마음의 가장 아픈 부분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물론 살다 보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공격적으로

상대방을 몰아세우기 위해서,

상대방을 비방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약점과 아픈 부분을 지적하는 것은

참으로 치졸한 처사 중의

첫 번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러한 의도가 없었다고 정색을 한다면,

그는 더더욱 나쁜 사람이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없기 때문이다.

나와 대화를 나누고,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어떤 상황인지,

그의 아픔이 무엇인지,

그의 생각이 무엇인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통렬히 비판하고 있지만.

사실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행동들을 무심결에 저지르고 있다.


나는 지금 너무 심하게 얻어맞아서

멍한 상태이다.

한동안 그로기 상태로

쓰러져 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나 역시

무심결에 상대방의 상처를 건드리는

씻지 못할 행위를 한 적은 없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돌아볼 것을 권고한다.

* 마음이 참 많이 아픕니다. 하지만.


2008. 10. 1.




2026. 4. 14.


인간관계는 참 힘들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정말로 불가사의한 존재다.


타인의 상처를 알아차리는 데는

시간이 제법 걸릴 수도 있고

섬세하지 않으면 실수를 할 수도 있다.


학생에게 메일이 왔다.

모친상을 당해서 수업에 빠진다고.

이럴 때가 가장 어렵다.

어린 친구에게 어떤 위로가 위로일 수 있을까.

한 청년에게 이 봄밤은 어떤 의미로 남을까.




어제는 나의 생일이었다.

군대에서 큰 아들이 휴가를 나왔다.

엄마에게 글 열심히 쓰라고

의자도 새것으로 사 주었다.


작은 아들은 편지지 석 장을 꽉 채워

정성을 다해 손 편지를 써 주었다.

더불어 하얗고 풍성한 꽃다발.

나는 꽃처럼 환한 하루를 보냈다.


오랜만에 셋이서 고깃집에 갔다.

작은 아들이 고기를 이렇게

잘 구워주는지 첨 알았다.

큰 아들은 소맥을 잘 만든다.


이 봄에 나는 이상하게 입맛이 생겼다.

지난겨울 내내 입맛을 잃고 아팠는데

입맛이 돈다는 말에

“거, 참 반가운 말이네” 하며

큰 아들이 나를 보고 웃었다.


큰 아들이 못 마시는 술을 좀 마셨다.

지난 1, 2월에 마음고생이 심했다.

잘 극복했다고 여겼는데

참고 참은 마음이 터져 나온 것인가.

미안한 사람, 고마운 사람을 늘어놓다가

엄마에게 제일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렸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다.

아들의 어깨를 끌어당겨 안았다.

힘든 거 참느라고 애썼어.

스물둘의 아들은 겸연쩍어한다.

내가 오늘 왜 이러지. 하며 쑥스러워한다.


불쑥 큰 아들이 작은 아들을 보고 말했다.

“고마워.

가끔은 아빠가 보고 싶을 때도 있었는데

네 얼굴에서 아빠가 보여. “

작은 아들의 얼굴이 점점 아빠를 닮아간다.


“힘들 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게 아빠가 있었으면 그때 무슨 말을 해주었을까. “

이제야 큰 아들이 진심을 드러내었다.

그래. 아빠가 있었으면 많이 위로가 되었겠지.


“난 그냥 아빠가 있는 건, 어떤 걸까 생각하는 정도지,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 “

작은 아들은 고기 굽는 손을 멈추지 않고

무심하게 말을 던졌다. 계속해서

“뭐, 아빠가 없는 결핍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거지. 그냥 딱 그 정도야. “

두 아들이 오늘은 편하게 말을 꺼냈다.


아들 둘은 나의 블로그를 읽지 않았다.

이 브런치의 글도 읽지 않는다.

엄마가 뭘 아파하는지 알아.

그래서 더더욱 못 읽는 거지.

큰 아들이 읽지 않는 이유를 말했다.

작은 아들이 덧붙였다.

난 글 읽다가 울고 싶지 않거든.


그런데 아는지 모르겠다.

작은 아들의 장문의 편지는

오늘 나를 다섯 번 웃겼고.

한 번 울렸다.


큰 아들은 엄마 오래 살아

안아 주고 뽀뽀해 주었다.

오늘은 두 아들이 나를

돌보고 챙겨 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어느새 라일락이 피어 있었다.

봄밤, 라일락 향기가

내 맘에, 두 아들의 얼굴에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