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히기

사람이 그리웁다 #15

by 채온




나는 아내인가. 아닌가.

나는 이미 아내의 자리를 포기한 사람이다.

더불어 누군가 나의 남편이 되는 것조차

동시에 포기한 사람이다.

다만 나에게 남겨진 것은 어미의 자리이다.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내가 어미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누구든 그 어미가 되어본 자는

다 이해할 것이다.


그가 나의 이런 돌발적인 행동으로 인해서

자신이 아비의 역할을 할 기회를

빼앗겼다고 한다면,

나는 사실 너무나 할 말이 많다.


아내와 자식이 곁에 있을 때,

그는 그 역할을 사랑하며

충실히 이행했어야 했다.

혹은 너무 어린 나이라 철이 없었다고,

이제 다시 그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기회를 다시 달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지나가버린 버스처럼

그렇게 될 수 없는 상황이다.

인생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혹은 잡을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은

그다지 많지가 않다.


애써 그 기회를 잡았을 때,

정말 최선을 다하는 것 밖에 없는 것이다.

나의 직장으로 찾아와서

나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기 위해서

몇 번이나 억지를 써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동안 뛰지 않던 내 가슴이

공포와 두려움으로

순식간에 내려앉는 것을

경험해야 했다.

다시... 시작인가...


이 보이지 않는 숨바꼭질을

다시 시작해야만 하는가.

잡히지 않기 위해서,

들키지 않기 위해서

또 미친 듯이 뛰어야 하는가.


그로 인해 죄 없는 아이들은 또

얼마나, 어떻게 시달려야 하는 것일까.


서류 정리도 하지 못하겠다.

무조건 같이 살겠다 억지를 쓰면

싫은 사람도 함께 살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일까.


그렇다고 아이들을 키우려는 의지도 없으면서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것은.

순전히 그래, 순전히 미움과 원망 때문일까.

나는 미칠 듯이 나를 증오한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배우자를

제대로 선택하지 못했던

내 어리석음 때문에.


2008. 9. 6.




2026. 4. 8.


이 날 것의 표현을

블로그에서

그대로 옮겨와야 하나 고민했다.

솔직히 며칠을 고민했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으며

순전히 편향된 시각이군

할 수 있다.

당연하다. 어쩔 수 없다.


원래 이혼은

상황에 미치고, 사람에 미치고,

적나라한 현실에 뒤통수를 맞지 않으면

맨 정신에 할 수 없는 것이다.


새파란 새끼 둘을 안고

이혼장에 도장을 찍는 게

말처럼 쉬울 것 같은가.


말없이 블로그의

자간을 며칠째 읽어 내렸다.

지금은 무의식의

뒤편으로 보내버린

서른일곱의 나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혹을 달고 태어난 아기.

그 아기는 모두 네 탓이라는 말.

딸도 낳지 못한다는 비웃음.

어느새 공중으로 올라가 있던 그의 손.


그것으로 내 결혼은 이미 부서져 있었다.

억지로 끌고 가려고 마음먹었다면

그래, 난 참 잘 해냈을 것이다.

하지만, 대신에 나는 죽었을 것이다.

껍데기만 살아있었겠지.


결과적으로는 그와 나는

올바른 선택을 한 셈이다.

부서진 것은 부서진 것이다.

서로를 망가뜨리기 전에

돌아설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다.


다만, 그에게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그래서 시간을 주었다.

그 시간 동안 그는 온갖 난장을 쳤다.

수습은 오로지 내 몫이었다.




이 기간 동안 나의 우울증이 심해졌다.

나는 나를 저주했고, 증오했고, 죽이고 싶어 했다.

모든 화살이 나를 향했다.

상대를 탓할 수가 없었다.

인생의 모든 선택은 본인 책임이다.

그 화살을 지나치게 나에게 쏘아댔다.


그리고.

내 성격이 바뀌었다.

완벽주의였던 내가 구멍이 숭숭 났다.

술술술 흘리고 다녔다.

기억도 깜박깜박했다.




혹을 단 아기…..

나는 첫째의 혹을 보며 생각했다.

이걸 떼어내도 아기에게 이상이 없나?

저렇게 큰 혹을 달고

어떻게 내 뱃속에서

열 달이나 있었을까.

힘들지는 않았을까.


어릴 때, 유난히 좋아했다.

<혹부리 영감> 이야기를.

혹부리 영감의 혹에서

노래가 나온다는 말을 믿고

도깨비는 혹부리 영감의 혹을 떼어 간다.

나중에 속은 걸 알고

동네 심술쟁이 혹부리 영감에게

오히려 혹을 하나 더 척 갖다 붙여버리는 장면은

어린 나의 배꼽을 잡게 했다.


그래서 물었다.

내가 너무 나쁜 마음으로 웃었나.

이야기 속 심술쟁이 혹부리 영감이지만

원래 혹 하나에 또 혹을 하나 더

달게 된 심정은 얼마나 슬프고 괴로웠을까.

그 마음을 생각지 못하고

나는 너무 많이 깔깔거렸던 걸까


그래서 생각했다.

서른 세 해 동안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입혔던가

누군가의 마음에 원한을 아로새겼던가

대체 내가 뭘 잘못한 게 있을까.

기억나지 않아도 빌었다.

잘못했다고. 무조건 잘못했다고.

제발 내 아기의 혹을 무사히 가져가 달라고.


첫째는 노래를 잘했다.

음악적 감수성이 뛰어났다.

사물을 바라보는 창의적인 시각도 독특했다.


가끔은 생각했다.

나는 지독한 꿈을 꾸었다고.

그 꿈속에서 도깨비는

내 아기의 혹을 가져갔다.

착한 도깨비는 심술을 부리지 않았다.

어느 누구에게도 혹을 팔지 않았다.

동화는 끝이 났다.

아무도 아프지 않은.

아무도 슬프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