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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우탱고 Jan 20. 2024

비 오는 날의 백바지

 비가 내리는 날 백바지를 입었다. 아니 아주 오랜만에 백바지를 꺼내 입은 날 하필 비가 내린다. 새 차 받자마자 비를 맞은 느낌이 들었다.


 바람까지 부니 우산과 조심스러움만으로는 흰색 바지가 얼룩지는 걸 막을 길이 없어서 포기하는 심정으로 강습장소로 향했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젊은 남녀 한쌍의 기운이 예사롭지 않더니 여성은 나를 향하고 남성은 나의 좌측으로 살짝 방향을 틀면서 나와의 거리를 좁히더니 어느새 한두 걸음 앞에 선 여성이 나에게 말을 던졌다.


 "혹시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으실까요?


 헉! 이거 뭐지? 난 순간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답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나의 응답에 남성은 나의 좌측에서 여성은 나의 정면으로 반걸음 더 다가섰다.


 "선생님에게는 거대한 에너지가 감돌고 있고 그 주변에 그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여요"


 앗! 빠져든다. 그러면 안 되는데도 인생에서 거의 30년을 가르치는 일을 했으니 거부할 수 없는 당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군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저는 바빠서 이만."


 더 있다가는 나도 모르게 어딘가에 갈 것 같아서 서둘러 둘 사이를 빠져나와 가던 길을 재촉했는데 뒤에서 들리는 여성의 유혹의 목소리.


 "선생님의 거대한 에너지가 지금은 막혀있어요. 그것을 뚫어야 많은 분들에게 그 에너지를 전할 수 있어요."


 흔들린다. 그래도 흔들리지 말자. 나는 돌아보지 않은 채 손을 번쩍 들어 엄지를 세워주었고 손을 흔들며 더 빠른 걸음으로 그들과의 거리를 벌렸다.


 무엇을 가르치는 사람처럼 보이는지? 물어보기라도 할걸.  


 조심성을 잃은 걸음에 백바지는 온통 빗물에 젖어 있었다. 진짜 신통한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 오는 날의 백바지가 그들의 신통력에 한 몫했을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고 막힌 곳이 있으면 나 스스로 해결하리라는 다짐도 하게 된 비 오는 날의 토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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