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이토록 힘든 글쓰기를 놓지 못할까

15화

by 효롱이

흑백요리사 2를 봤다.

요리 천국처럼 커다란 선반에 신선한 재료가 가득 채워진 장면이 나왔다. 작가, 특히 글을 연구하는 내 입장에서는 좋은 단어들, 앞서 말한 감성 단어들이 빼곡히 적힌 단어장처럼 보였다.


영상을 보며 저런 구도에서 글쓰기 생각을 하는 내가 정상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걸 어쩌겠는가. 아마도 내가 먹방이나 음식 프로그램을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작가를 셰프에 비유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음식이나 글이나, 만드는 사람보다 먹는 사람, 읽는 사람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결국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설이 길어졌지만, 앞서 좋은 단어의 중요성을 강조했어도 거기서 끝은 아니다. 요리사 앞에 재료가 있다고 그것을 요리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다만, 이제 요리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일 뿐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감성 있는 단어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면, 이제 막 진짜 출발선에 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미 안목을 갖춘 사람이라면, 썩 마음에 드는 문장을 조합할 수 있는 시기에 들어섰다고 말해도 된다. SNS로 인해 쉽게 자신을 드러내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겸손은 더 이상 갖추면 좋은 미덕이 아니라, 생존의 필수 요소에 가까워졌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다 보면 오히려 평가절하되기 쉬운 것이 또 세상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개인적으로 이 정도까지 연습했을 때부터 타인의 시선을 끄는 글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 수준이 대단했느냐고 묻는다면 전혀 아니다. 그저 앞서 말한 것들을 꾸준히 훈련했을 뿐이다. 문장은 간결하게 쓰고, 단어는 조금 더 신중하게 고르는 것. 누차 강조하지만, 이 정도만 연습해도 타인미 보기에는 흡족한 글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렇게 적고 보니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이야기다. 하지만 직장을 다니며 독학으로 글을 쓰다 보니, 이 사실을 깨닫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반년은 족히 쏟은 것 같다.


나 역시 늦은 나이에 글쓰기에 몰입했다. 회사까지 가는 한 시간 남짓한 지하철 안에서도 시간을 쪼개 스마트폰 메모장으로 글을 썼다. 어깨가 부딪히는 비좁은 좌석에 몸을 구겨 넣고, 나만의 세계에 빠져 글을 적는 감성에 종종 취했다. 평소 약속에 늦는 법이 없는 성격인데, 정신이 팔려 지하철을 한참 지나쳐 내렸다가 놀라서 다시 반대편으로 타고, 또 목적지를 지나쳐 버린 적도 있다. 그만큼 글 쓰는 맛에 푹 빠져 있었다.


지금까지 글쓰기 이야기를 다소 따분할 만큼 많이 적어왔다. 말이 나온 김에, 왜 나는, 그리고 당신은 글을 쓰고 있는지 묻고 싶다.


내게 글쓰기는 마냥 즐거운 오락은 아니다. 누군가 글쓰기가 재미있냐고, 왜 그렇게 글을 쓰냐고 묻는다면 한참을 고민할 것 같다. 그리고 아마 이렇게 답할 것이다.


“글쓰기는 오랫동안 나를 힘들게 하고, 가끔 카타르시스를 줍니다.”


그 짧은 즐거움은 이유도 없이, 우연처럼 찾아온다. 아이는 없지만 아이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와 닮았다. “애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라며 늘 불평하던 사람에게 정말 싫으냐고 물으면, 그래도 세상에서 대체할 수 없는 기쁨을 준다고 말하지 않는가. 내게도 글쓰기는 그렇다. 이따금 터지는 벅차오르는 감정. 때로는 벼락처럼, 때로는 따뜻한 차 한 잔처럼 스며드는 충만감. 그것이 내가 다시 글을 쓰게 만드는 힘이다.


글을 쓰며 힐링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노트를 펼치는 손이 무거울 때는 이해되지 않지만, 운 좋게 글이 술술 나올 때는 그 말에 격하게 공감하게 된다. 왜 재미있고, 왜 치유가 될까 생각해 보면 이 문장이 떠오른다.


“글쓰기는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하는 행위다.”


나는 글을 쓸 때 이 연약한 몸이 신처럼 느껴진다. 철자로 세상을 구축한다. 최소한 머릿속의 창작 공간에서만큼은 무한한 자유를 체감한다. 거기에 더해, 도구에서도 자유롭다. 글은 펜과 종이만 있으면 된다. 내가 지구 어디에 있든, 나만 존재한다면 가능한 예술이다.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이 곧 작업장이 된다.


상상의 자유와 도구의 자유가 합쳐진 글쓰기. 내성적이지만 세상을 향해 분출하고 싶은 열망을 지닌 사람이라면, 글쓰기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다른 의도는 없다. 글쓰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꾸준함이 필요하다. 다만 나는 인생에서 인내의 총량에는 한계가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더 오래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글쓰기에서 무엇이 즐거운지 한 번쯤은 꼭 생각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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