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명문장에는 좋은 단어가 있다.
그렇다면 왜 어떤 단어는 훌륭한 재료가 되는 걸까?
내가 내린 나름의 결론은 이것이다.
그 단어 안에는 이미 감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단어를 소리 내어 읊어보자.
첫사랑
세 음절뿐인 이 단어는 짧은 울림에도 불구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감정을 불러내는 메아리처럼 퍼진다. 그 이유는 ‘첫사랑’이라는 단어 안에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공유했을 설렘의 기억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감성이 담긴 단어가 꼭 이렇게 노골적인 어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겨울바다, 대양, 빙하.
이 단어들은 어떤가. 모두 실제로 존재하는 자연이다. 심지어 빙하를 직접 마주한 사람은 많지 않음에도, 이 단어들은 거대한 자연의 이미지와 압도적인 감각을 이미 품고 있다.
요즘 유행하는 MBTI로 치면, T 성향의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른다.
“그냥 단어잖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예를 하나 들어보자. 감성을 지닌 단어를 사용해 아주 짧은 문장을 만들어보겠다.
사표를 내고 겨울바다에 갔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쓸쓸한 한 사람의 뒷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지 않는가. 일부러 강한 상징을 지닌 단어를 썼지만, 문장 자체는 지극히 간결하다. 나는 어떤 기교도 부리지 않았다. 그저 좋은 단어를 선택했을 뿐이다.
이때 깨달았다. 단어 자체가 이미 하나의 심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런 단어들을 스스로 ‘감성 단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작은 깨달음 이후로, 책을 읽다 마음에 드는 감성 단어가 나오면 보석을 모으듯 하나씩 담아두는 버릇이 생겼다. 더 나아가 그런 단어를 찾기 위해 사전을 뒤적이며 적극적으로 정리하기도 했다.
지금 이 글을 따라 읽고 있는 예비 작가가 있다면, 나는 감성 단어 찾기를 권하고 싶다.
‘왜 이 단어는 감성 단어가 되었을까?’를 고민하다 보면, 문장을 기계적으로 소비하지 않게 되고 자연스럽게 글의 감각도 함께 자라난다. 흔한 말로 하자면, 꽁 먹고 알 먹기다.
이제 내가 모아 온 감성 단어의 작은 비밀 레시피를 공개하려 한다.
이것을 참고해, 각자의 단어장을 채워가길 바란다.
강력한 감성 단어
잔잔한 바다, 겨울, 그림자, 섬, 장거리 운행버스, 교회
우울 감성을 담은 단어 : 시든 꽃, 금이 간, 흐느껴 운다, 흙탕물, 눈보라, 심연
밝은 감성 단어 : 꽃, 술, 정원
사람 표현 감성 단어 : 이방인, 작은 심장을 가진, 하얀 손등, 17살의 소녀
시기를 표현하는 감성 단어 : 아침, 태양, 겨울밤, 가을저녁, 여름태양, 빗발이 가늘어지는, 여명, 늘, 때때로
겨울에 쓰기 좋은 단어 : 붕어빵, 풀빵, 호빵, 찐빵
어두운 형용사 감성단어 : 눅눅한, 눍스구레한, 온화한, 멍한, 어둑한, 적적히
어렵지만 좋은 감성 단어
물질: 잔광
장소: 광막한 초원
감정: 열락
형용사 : 청신한, 낭창한
이 단어들은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장면과 감정을 품고 있다.
문장을 살리는 것은 기교가 아니라, 결국 단어의 선택이다.
아래 문장은 즉석에서, 감성 단어장에 적어둔 재료를 꺼내 손 가는 대로 써 내려간 것이다.
잔잔한 바다에 섰다. 열일곱 살의 소녀.
풀 죽은 꽃이 흔들리듯 위태롭게 산기슭을 내려온 참이다. 고개를 들어 겨울밤의 대양을 바라보니, 짠내 사이로 동백꽃 향기가 스며든다.
이곳이 어머니가 말하던 바다라는 곳이구나.
한 방울, 눈물이 떨어진다.
이런 식으로, 단어를 써보자
이 글은 마흔 이후 브런치에서 독학으로 글을 쓰며 출판 제안을 받고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를 출간하기까지의 과정과 기술을 솔직하게 나누는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