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골프의 즐거움
호주에 처음 왔을 때 곁눈질로 본 골프장에서 가장 놀랐던 건,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골프를 걸어서 플레이하는 모습이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꽤 충격적이었다.
노캐디에 노카트라니, 저 미는 버기가 그렇게 편한가?
6~7km를 걸으며 캐디도 없이 어떻게 공을 찾고, 어떻게 공 라이를 보고,
룰을 어떻게 다 알고 골프를 칠까?
그런 생각을 하던 나도, 골프를 시작하자마자 버기를 사게 되었다.
의문문 가득이었던 그 신기한 ‘버기’를 사게 된 이유는 바로 ‘트와일라잇 골프’
때문이었다.
일에 치여 평일엔 오후 4시쯤 겨우 시간이 나고,
주말엔 여유가 있지만 홈클럽이 없는 상태여서 대부분 9홀밖에 못 도는 상황.
그런데 호주는 여름에 서머타임이라는 국가적 시간제도 덕분에
해가 더~길어지는 저녁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8시 30분까지 골프를 칠 수 있는 환경이 된다.
트와일라잇시간은 3시 30분부터, 해질 때까지 칠 수 있다.
사람도 그 시간엔 비교적 붐비지 않고, 9홀 가격만 내고 플레이할 수 있는 건 참 매력적 여보였다.
하지만 호주는 카트가 무조건 5시~6시에 반납이 되어야 하니 버기 없이는 플레이가 불가능했다.
결국 나는 수동 풀버기를 샀고, 그 후 더 편한 전동버기로 바꿨다.
그리고 홈 클럽이 생겼고 그 버기로 인해 골프가 더 편해지고 즐거워졌다.
걷는 게 힘들기는커녕 몸이 더 가벼워지고 라운딩이 기다려졌다.
억지로라도 걷기 싫던 내가, 이제는 일주일에 최소 12km 이상을 걷는다.
가끔 배터리 충전을 깜빡하면 낭패지만, 전동 버기는 18홀 두 번, 9홀 한 번 정도는
충분히 돌아준다.
버기 덕분에 퇴근 후 4시에 라운딩을 나가도 18홀은 가뿐하다.
리모컨으로 방향조절이 다 되니 내 몸은 그저 걷기만 하면 된다.
전동 버기는 가방, 우산, 의자까지 모두 장착되니 완벽한 내 골프 파트너다.
무엇보다 걷는 골프는 건강에도 정말 좋다.
70~80대의 플레이어들을 종종 만날 수 있는데, 그들은 항상 따박따박
앞으로 걸어가며 라운딩을 즐기고, 끝나고는 클럽하우스에서 맥주 한잔 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건 단순한 운동을 넘어서 삶의 활력이다.
단순히 걷기 운동으로만 봐도 거리가 6km이지만 힘들지가 않다.
동반자들과 함께 이야기하며 걷다 보면 정신건강까지 좋아지는 걸 느낀다.
또한 걷는 골프는 플레이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
내 공만 따라가며 걷는 동안, 어떤 클럽을 선택할지, 공의 위치를 예측하며 전략을 세우게 된다.
카트를 타면 운전하고, 동반자 공 찾고, 내 공 찾느라 오히려 정신없이
연습스윙 두 번 후 샷을 하게 되니 실수가 더 많게 느껴진다.
하지만 전동버기로 운전하며 걸으면 어떻게 공략할지, 저쯤에 있을 테이니
어떤 것으로 어떤 샷을 구사할지 고민하면서 갈 시간이 생긴다.
물론, 이런 걷는 골프가 가능하려면 코스가 평지에 가까워야 한다.
호주는 땅이 넓고 코스 설계에 여유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나에겐 이 전동버기가 이젠 없어서는 안 될 둘도 없는 골프동반자가 되었다.
한국도 이게 가능하면 얼마나 좋을까,
산을 깎아 만들어 그럴 수밖에 없음이 너무 아쉽다.
걷는다고 불편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젠 걷지 않는 게 더 어색하고 힘들다,
그래서 내 발로 직접 걷고, 직접 생각하고, 판단하며,
내 템포에 맞춰 정직하게 걷고, 또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