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골프

by Even today




엄마가 호주에 온 건 무려 6년 만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6일.

일도 바쁘고, 해야 할 일도 끝이 없었지만, 시드니에 딸 둘이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상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엄마의 마음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우리는 20대 대부분을 불안하게 버티며 살아냈고, 이제야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그 여유가 생기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도, 초대하고 싶은 사람도, 보여주고 싶은 풍경도…

모두 엄마였다.


언니는 비행기표를 끊고 엄마의 잠자리를 정성껏 준비했고,

나는 여행 동선을 고민하며 “어떤 순간을 보여드리면 엄마가 가장 행복할까”를 수없이 떠올렸다.

엄마는 나만큼이나 골프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한국에서는 여러 사정 때문에 한 달 세 번, 네 번 칠까 말까였던 걸 생각하면, 일주일에 두세번 이곳에서 골프를 치는 건 엄마에게 좋은 추억일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레 골프 + 모녀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6년 만에 공항에서 다시 마주한 우리는 말 그대로 ‘설렘’ 그 자체였다.

창원 → 인천 → 시드니.

만 57세의 여자가 오기에는 너무 기나긴 여정이었다.


잠자리가 예민한 엄마는 비행 내내 한숨도 못 주무셨고,

그 탓에 첫날부터 스케줄은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예약해둔 골프도, 투어도 계속 바뀌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느낀 건 한 가지였다.




“엄마에게 새로운 경험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엄마를 위한 게 아니라 사실은 나를 위한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카메라를 들고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여기 봐“ 를 외쳤다.

그 순간들이 벌써 그립다.


나는 내 위주가 아니라 엄마의 리듬에 노력을 맞추며 여행을 구성했지만,

잠을 많이 설친 엄마는 결국 내가 준비한 걸 다 즐기지 못했다.

그런데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 마음은 엄마에게 전해졌겠지?”



골프장은 세 군데 정도 생각해두었지만,

6일 안에 3일을 치는 건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래도 우리는 이틀이나 라운드를 했다.


나는 거의 캐디나 다름없는 역할을 했지만

그조차 너무 좋았다.

내 일상은 늘 골프였고,

그 일상을 엄마와 나누는 느낌이 참 따뜻했다.




특히 내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해온 The Coast.

남태평양 바다가 그대로 쏟아지는 풍경 속에서

엄마가 스윙하는 모습을 보고 박수를 치고

시원한 바람과 물회 한 숟가락 떠먹던 시원한 추억.

그건 그 어떤 여행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친구와 치는 골프와는 완전히 다른 뭉클한 감정들.

엄마가 “인생사진이야!”라고 말해줄 만큼 마음에 든 사진들.


엄마가 퍼팅을 하고 자연스럽게 내게 퍼터를 건네던 그 순간,

캐디 문화가 몸에 밴 엄마의 귀여운 습관이었고

나는 그게 너무 웃기고 사랑스러웠다.



마지막 날 하기로 했던 스카이다이빙은 바람이 너무 강해 취소되었다.

대신 예쁜 길을 드라이브하고,

커피와 브런치를 먹고 집에 오니 오후 1시.


그런데 떠나는 날이 바로 다음 새벽이라

무언가를 하기 애매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홈코스에 연락했는데

기적처럼 예약이 잡혔다.

우리는 오후 3시에 티오프했고,

결국 18홀을 다 돌았다.

내가 매일 치는 그 골프장에서

엄마와 라운드를 하는 순간이 오다니.


연습장에서, 그린 앞에서, 페어웨이를 걸으며

나는 내 엄마를 자랑하듯 손을 꼭 잡아 친구들 앞에 소개했다.

홀당 만원빵을 하며 서로 놀리고 웃고

구찌를 넣고 환호하고

엄마는 아마 꽤 피곤했을 테지만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 뭉클했다.


“엄마와 치는 골프는,

누구와 치는 것과도 완전히 다르구나.”



엄마가 오기 2주 전부터 나는 정말 바쁘게 일했다.

엄마가 오는 순간엔 일로 마음을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 순간은 진짜 소중했고, 그만큼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


마지막 날은 나는 공항을 가지못할거같아

저녁시간을 함께 보내고 작별인사를 하며 서로를 안고 울었다.

평생 못 볼 사이도 아닌데,

각자의 인생을 살다 보면 또 만날 텐데…

대체 왜 그렇게 눈물이 났을까?


아마도

앞으로 1년이 될지, 2년이 될지 모르는

그 ‘기약 없는 다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말로 닿지 않는 묘한 슬픔.


하지만 이번 여행으로

우리는 평생을 꺼내 볼 수 있는 추억을 만들었다.

사진, 영상, 그리고 이 기록까지.

내 공보다, 내 스윙보다

엄마의 표정을 더 많이 살폈던 일주일이었다.


“잘 못 쳐도 기분이 좋을 수 있구나.”

“이게 진짜 동반자구나.”


어렸을 땐 엄마가 나의 영원한 캐디 같았는데,

이제는 내가 엄마의 캐디가 되고 싶었다.

도움을 주는 든든한 딸처럼.


엄마가 좋아하는 걸 보고 있으면

그냥 자연스럽게 행복이 따라왔다.

효도라기보단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차 안에서 들었던 조용필의 모나리자.

이동하며 나눈 골프 이야기.

어릴 때 있었던 소소한 에피소드들.

필터 하나 없는 우리의 대화들.

서로 배려하는 마음, 말하지 않아도 아는 묵직함.


이 여행이 엄마에게 ‘여행 후유증’ 같은 슬픔이 아니라

은근한 미소를 남겼으면 좋겠다.


골프가 내게 준 선물은 참 많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는

엄마와 함께 만든 이 기억이다.


엄마, 한국에서도…

어디 해외에서도…

우리 꼭 다시 골프 치자.

그때도 지금처럼 웃으면서.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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