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요
헌정글이라며 글을 써주신 분이 계시다.
고마운 동기작가님♡
난 그저 내가 하고팠던 말을 이야기 했을 뿐인데.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엄청 어리바리하게 이야기한 거 같은데 다들 귀 기울여 듣고 있었구나.. 생각하니 새삼 감사하고 또 감사한 시간이었다.
코로나 직전, 엄마들을 대상으로 <엄마표생활중국어> 수업을 할 때에도 여섯 명이 넘어가면 여전히 후들후들했던 나.
내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도 몰랐는데
동기작가님의 글을 읽고,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었구나..
그 자리가 여러 출간 작가와 교수와 교사와 유학파와 서울 명문대 출신이 수두룩한 자리인 줄 인식 못하고 한말들이었다. (인식했더라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었을까..)
그냥 우리가 글동무로 만나, 글쓰기에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동기작가인 것만 인식하고 한 이야기였는데, 이렇게 글로 남겨주시니 감개가 무량하다.
대학, 그것도 전문대를 졸업하고 보니 대학보다 더 중요한 건 자존감이라고 생각한다. 명문대를 나와도 취업이 되지 않거나 해외유학파여도 나보다 결혼을 늦게 하게 되면서 자존감이 떨어지는 이들을 주변에서 쉽게 보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서른 중반이 넘어서 결혼을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와 가장 친한 친구는 늘 공부를 잘했다.
그래서 이름 앞에 수식어로 붙여진 반장절친, 반장이랑 친한 아이 OOO였다. 나쁘지 않았다. 내가 마치 공부를 잘하는 것 같은 착각.
중학교 때는 중위권, 고등학교 가면서 성적은 더 떨어졌지만. 열심히 하는 내가 원하는 성적을 얻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아시는 부모님은 내가 공부 못하는 것에 대해 한 번도 불안해하거나 걱정하지는 않으셨다.
고3임에도 잠실야구장을 가는 것도 모른 척 눈감아주시고.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서울대가 지척에 있지만 서울대는커녕 인서울대학도 가기 어려운 성적이었다. 아버지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고
나는 그 조치에 응했다 (궁금하신 분은 저의 첫 작품을 읽어주셔요)
(실은 특단의 조치가 있기 전에 원서를 넣으러 전국투어를 한 이야기도 곧 글로 쓸 예정이다.)
그렇게 들어간 전문대학에서 나는 나를 찾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읽고 또 읽게되는 동기작가님의 따뜻한 아래글로
오늘 하루를 시작하련다.
감사합니다. 작가님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