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카톡으로 매일 보내주시는 예쁜 글.그림이 담겨있는 사진
결혼하고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서른일곱 살 상반기까지 함께 살던 딸이 출가를 하여,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곳으로 가서 살게 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 어느 날이 허전해서이셨을까.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는 카톡으로 먼저 보내주신다. 여기저기서 받은 문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아침에 아니, 새벽에 일어나시자마자 보내주시는 그 마음을 받아들이는 내 마음도 예전 같지 않다.
기다려진다. 엄마의 카톡이.
사실 엄마와 나는 결혼 전, 서른이 넘어 결혼하지 않은 딸은 누구나 그렇듯 항상 사이좋은 모녀지간은 아니었다.
(서른이 넘어가면서 시집도 안 간 딸이 항상 엄마와 사이좋게 지내기가 쉽지 않을 것..)
잘 지내다가도 모임만 다녀오시면,
"그래서 넌 언제 시집갈 거야?
"OO집 막내 알지? 올해 서른인데 올 가을에 결혼한다더라!"
결혼 전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들이다.
나도 질세라 못 박는 말을 내뱉곤 했었다.
"난 일찍 결혼하면 이혼수 있대! 엄마는 내가 이혼하는 결혼을 했으면 좋겠어?
"길 가는 사람 아무랑 결혼했으면 좋겠어?"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까지 못되게 이야기했는지 모르겠으나, 엄마도 나도 이젠 떨어져 있는 시간이 애틋하기만 하다.
그리고 서른여섯. 아버지 칠순을 맞이하여 엄마, 아빠, 나 셋이 베트남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다낭도 하노이도 아닌, 호찌민으로.
칠순잔치보다는 베트남전 참전용사로, 호찌민이 얼마나 달라졌을지 다시 가보고 싶어 하셨기에.
호찌민 어느 노포에서 아버지와 맥주 한 잔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든 생각.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며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
'부모님이 마흔 넘은 쉰 넘은 딸과 함께 사는 게 부모님께 효도하는 길인가!'
물론 일하며, 나의 인생을 즐기며 살고 있는 그 때도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그 여행을 계기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나는 미친 듯이 간절한 마음으로 <배우자의 기도>를 시작했다.
<배우자를 위한 기도>
하느님,
어느 곳엔가 있을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제 운명의 그 사람을 지켜주소서.
그 사람이 하는 일이 힘겨워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자신의 인생을 밝고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리고 우리가 만나게 될 때 서로 자신들의 삶에 충실하고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자신의 삶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그런 사람들로서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서로를 이해하고 자신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주는
그런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서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렇게 서로 준비하여 만나면,
이 사람이 하느님께서 지켜주셨던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두 사람 모두 노력하며
하느님께서 주신 삶에 충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그다음 해에 지금 함께 살고 있는 그를 만나 알콩달콩, 지지고 볶고 살고 있는 것.
엄마가 보내주시는 아침 메시지.
나의 행복을 빌어주는 엄마를 위해서라도 오늘 내가 행복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