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 브런치에 많은 구독자와 글이 쌓여있지만 아무도 모르게 새 계정을 팠다. 주변 사람들이 알게 되고 하나 둘 들어와 글을 읽어보고 종종 아는 척도 하는데, 그 때문에 언제부턴가 글을 쓰는 손놀림이 너무 무거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글을 보고 있을지도 모를 주변의 누군가를 너무 의식해서였다.
나는 그저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는 흔한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 내가 무슨 대작 작가라도 되는 것처럼 한 획을 그을 때마다 세상에 남을 작품을 창작하겠다는 듯 심각한 표정을 짓는 건 웃긴 일이다. (근데 요즘 늘 그러고 있었다) 내가 글을 가장 재미있게 썼던 때는, 아무 가진 것도 없고 지켜보는 사람도 없었던 긴 백수 시절이었다. 버티고 견디는 하루하루에 토악질하듯 썼다. 그래도 그때는 글 쓰는 것만큼 재밌는 일이 없었다.
이제 다시 그냥 내가 되는 글을 쓰려고 한다. 회사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심지어 집에서도 나는 자주 내가 아닌 모습을 요구받는다. 그런 삶에 징징대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이렇게 생각한다.
어떤 날은 내가 바라는 나로 살아야 한다
이 글방은 내가 나로 살 수 있는 작은 틈이다. 전에 그 무거운 글방에서 나는 '남기려고' 썼다면 여기서는 버리려고 쓸 것이다. 원래 나는 쓸데없는 말도 많이 하고 망상도 많은 닝겐이다. 다만 좀 그럴듯하게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나를 다듬고 검열해서 내놓는다. 그 과정에서 대단한 에너지가 쓰이고, 그렇다 보니 남은 나는 자주 방전된다. 싫다 싫다 하면서도 또 그렇게 대부분의 시간 살아야겠지만, 어떤 날은 내가 바라는 나로 살고 싶고, 그런 순간 중 하나가 이 글방에 글을 쓰는 일이 될 것이다.
섬세한 것이 옳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섬세하면 느려진다. 보고 생각할 게 많아지기 때문이다. 섬세한 사람의 마음에는 자갈돌이 많이 굴러다닌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입장과 마음이 자그락 자그락 밟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느려지고 생각이 많아지는데, 어쨌거나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야 하니 애써 만든 결들을 다림질하듯 밀어낸다. 내가 속한 방송국이라는 곳의 투박함은 정말이지 중장비 급이다. 여기서 있다 보면 자존감이 정 맞은 돌처럼 쪼개져 나가곤 한다.
그러니 적어도 이 공간에서 글을 쓰는 시간 동안에 나는 내가 바라는 나로 돌아갈 것이다. 내가 바라는 나로 돌아가는 만큼 나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더 부드러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