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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at Aug 03. 2023

뉴욕 안 작은 섬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루즈벨트 아일랜드 정착기

미국 오기 전엔 한국에서 줄곧 살아왔지만 단 한 번도 섬에서 생활해 본 적은 없었다. 그저 제주도 몇 차례 가본 것과 어렸을 적 이름도 기억에 나지 않는 몇몇 섬들을 여행으로 가본 게 전부일뿐. 섬은 그저 내가 살지는 못하지만 여행으로만 가볼 수 있는 외딴 세계 같은 곳이었다. 그랬던 내가 뉴욕에 와서 섬에 정착하게 됐다. 그 이름도 생소한 루즈벨트 아일랜드. 섬이라고 하기엔 부끄러울 정도로 맨해튼과 붙어 있지만 그래도 나름 여기도 섬이다.


맨해튼이 정확히 어디를 지칭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나 역시도 미국 오기 전엔 뉴욕 = 맨해튼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이 지역에 대해 무지했다. 뉴욕이라는 이름은 크게 두 곳을 가리킨다. 첫 번째는 뉴욕 주 (State of New York)이고, 두 번째는 뉴욕 시 (New York City)이다. 전자는 미국 전체 50개 주 중 하나인 큰 뉴욕 주(state) 전체를 가리키고, 후자는 그 주 안에 있는 하나의 시(city)이다. 굳이 한국을 예로 들자면 경기도 안에 있는 수원, 충청남도 안에 있는 천안이라고 생각하면 편하지 않을까 싶다. 뉴욕시는 총 다섯 개의 자치구(맨해튼, 브루클린, 브롱스, 퀸즈, 스태튼 아일랜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뉴욕이 바로 맨해튼이다. 크기가 생각보다 그렇게 크진 않지만 이 안에 모두가 알만한 관광지, 박물관, 음식점, 카페, 옷가게, 공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여기 루즈벨트 아일랜드는 주소상으로 맨해튼에 속하지만, 맨해튼과 퀸즈를 나누는 East River에 놓여 있어 지리적으로는 맨해튼도 아니고 퀸즈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섬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원래 생활하던 맨해튼의 아파트는 계약이 이번 7월까지였기에 5월부터 아내와 집을 열심히 (정말 열심히) 알아봤다. 뉴욕의 살인적인 렌트 가격에 맞서기 위해 가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여러 집들을 알아봤지만 알아보는 족족 가격과 맞지 않는 조건 앞에 매번 무너지기 일쑤였다. 뉴욕이 좋아지던 시기에 하마터면 뉴욕이 싫어질 수 있었던 시기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뉴욕 그것도 맨해튼 안에서 집을 구하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마땅한 집이 없어 실망만 늘어갈 때쯤 나도 모르게 루즈벨트 아일랜드가 떠올랐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정말 불현듯 갑자기 떠올라 이 쪽 집들을 찾아봤고,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에 나름 고급 아파트라는 곳에 "에라 모르겠다" 마인드로 투어를 예약했다. 지금 와서야 아내가 말하기를 어차피 가지도 않을 아파트를 왜 보러 가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동네가 궁금했다. 그리고 이때 아니면 굳이 여길 와볼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맨해튼에 있는 섬이라는 명칭 자체가 궁금증을 자아냈던 걸까?


루즈벨트 아일랜드의 첫인상. 평화롭고 조용하고 맨해튼 같지 않은 한적함이 좋았다.


큰 기대 없었던 나와 아무런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아내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이미 마음만은 이곳에 거주하고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을 정도로 맨해튼과 가까운 위치였지만 전혀 맨해튼 같지 않은 참 이상한 곳이었다. 맨해튼과는 다르게 매우 한적했고 한없이 평화로웠으며 곳곳엔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유럽에 가보진 않았지만 유럽의 한 작은 마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동네 주민들이 각자의 일터로 나간 오후 시간대 섬은 더더욱 평화로워진다.


미국에서 집을 알아볼 때 그 집과 그 주변 지역하고는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그 집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당부를 수차례 들었지만 아내와 나는 이미 이곳에 푹 빠져 있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냥 쓱 보고 가려고 했던 집까지 마음에 들어버렸다. 그렇게 하루 만에 이 섬의 공식 주민이 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게 된다.


섬에서 한 커플의 결혼식. 이 날은 날씨와 하늘 그리고 이곳에서의 뷰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멀리서나마 새 출발을 축복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이제 막 한 달이 되어간다. 새내기 뉴요커와 더불어 새내기 섬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서일까? 뉴욕을 알아가는 것만큼 이 작은 섬에 대해서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직은 낯선 섬, 그것도 뉴욕 안 작은 섬에서의 생활이지만 뉴욕이 내 터전이 되어 가듯 이곳도 서서히 나의 터전 및 보금자리가 되어가고 있다.


섬에서 즐기는 야경. 저 멀리 작게나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인다.


섬에서의 첫 번째 여름을 이제 막 맛보기 시작한 요즘, 언제 더웠냐는 듯 아침저녁으로 부쩍 쌀쌀해졌다. 아직은 낯선 선선한 바람을 맞을 때마다 이곳에서의 겨울은 어떨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그때는 새내기 섬사람 딱지를 조금은 떼어 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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