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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언 Sep 15. 2021

쾌락.

From. Boracay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친구와 보라카이를 갔다. '왜 여행지를 보라카이로 정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따위의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입대를 한 달 앞두고 한국이 아닌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지만, 돌아올 때는 적잖은 충격과 경험을 한 여행이다.


보라카이 해변에는 야외 클럽이 몇 군데 있다. 그 때문에 밖에서 안을 볼 수 있는데, 수많은 남, 여가 한 손에는 맥주병을 들고 서로의 신체를 밀접시킨 뒤, 춤인지 구애의 행동인지 모를 움직임을 선보였다. 신기한 건 그들 중 대부분은 초면인 듯 보였다. 나와 친구는 그 광경을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듯 구경한 뒤 다시 길을 걸었다.


한 5분쯤 걸었을까? 누군가 내 친구 어깨에 살포시 손을 올렸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나보다 더 건장한 남성과 여성 그 경계의 사람이 치명적인 미소를 발사하고 있었다. 그 혹은 그녀는 같이 술 한잔하자며 내 친구의 팔을 사정없이 잡아당겼다. 범상치 않은 힘에 신변의 위협을 느낀 우리는 손을 뿌리치고 헐레벌떡 숙소로 돌아왔다.


이후 일정이 진행되는 동안 비슷한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만 동떨어진 섬에 있었다. 적어도 우리와 함께 여행 패키지를 진행했던 사람들은 쾌락의 맛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기 위해 몸부림치는 짐승처럼 보였다.


'쾌락'의 사전적 의미는 감성의 만족, 욕망의 충족에서 오는 유쾌하고 즐거운 감정이다.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쾌락을 느끼며 원한다. 이는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는 '한순간의 쾌락'을 위해 시간을 허비하는 모습을 이곳저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의 문제점은 당사자에게 거대한 후폭풍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당사자는 알지 못한다.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쾌락만 보이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바이러스처럼 퍼져버린 쾌락의 대가는 자신을 무너뜨리기에 이른다. 중장기적으로 자신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술로 예를 들자면,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부분적인 이유는 자신들의 책임을 없애기 위함이다. 정확히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마시는 경우가 많다. 이는 마치 '나는 술을 많이 마실 거야. 왜냐하면 앞으로 중장기적으로 일어날 결과에 대해 신경 쓰고 싶지 않거든.'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것이 정확히 술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술은 중장기적인 미래를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게 한다. 부분적으로 걱정을 약화시키기 때문인데, 걱정을 약화시킨다는 것은 긍정적인 감정 회로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술을 진탕 마시고 제어 불능한 상태로 어리석고 재미있는 일들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놓고 볼 때 결코 긍정적인 영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분명 다른 좋은 선택지도 존재할 것이다. 


순간의 쾌락이 우리의 장기적인 인생을 좀먹지 않길 바란다.


 


우리는 오후에 도착했기 때문에 관광지를 돌아다니기보다 해변가를 거닐며 모처럼의 여유를 즐겼다. 

보라카이는 해가 지는 시점부터 180도 달라지는데 온 동네가 클럽 음악으로 뒤덮인다. 


보라카이는 처음 가는 분들은 조심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는데, 곳곳에 보이는 조형물과 음식이다. 확실히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돈벌이를 하다 보니 소위 뒤통수치는 기술이 상당 부분 발전되었다. 


아름다운 조형물을 사진으로 담는 순간 그들은 막무가내로 당신의 지갑을 열려고 할 것이다. 또한 크레이지피시 두 마리 가격을 딜하고 들어간 음식점은 당신이 식사를 마칠 즈음 무게로 가격을 측정한 영수증을 내밀 것이다. 실한 놈이 들어왔다며 우리에게 실물을 보여줄 때 눈치챘어야 했다... 


꼭!! 음식점은 미리 검색하길 바란다.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보라카이의 바다는 아름다웠고 여러 익스트림 스포츠는 한 달 뒤의 미래를 잠시 잊게 해 주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보라카이는 연인과 오는 곳이다. 



비행기 창밖은 언제나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내가 비행기 좌석을 구매할 때 비상구 쪽을 선호하는 이유다. 비상구 바로 옆 좌석은 다른 좌석에 비해 앞 공간이 넓다는 장점이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무시무시한 영수증을 받기 전 아무런 걱정 없이 관람했던 불쇼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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