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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린 Jan 20. 2023

자유롭고자 덜어냅니다

작은 삶은 곧 보험일지니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아기가 생기면서 하나둘씩 집을 사거나 큰 집으로 옮기고 있는 요즘, 나와 남편은 여전히 도심에서 좀 30분가량 떨어진 10평 월세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작은 아파트에서도 쾌적하게 살고자 하는 욕구는 꽤나 강렬해서 물건을 정리해 버리고 기부하기를 여러 번, 아파트 안의 물건은 점점 줄어들고 빈 서랍장은 하나둘씩 늘어가는 중이다. 이게 바로 임산부의 nesting instinct라는 것인가. 


그렇게 살림살이를 줄여나가던 와중, 어제 저녁에는 거의 10년 동안 알고 지내고 있는 옛 회사 동료들을 만났다. 올해 하반기부터 6개월의 출산 휴가를 앞두고 있는 나와 달리, 한 명은 세상을 누비며 삶을 즐기며, 또 한 명은 진지하게 자신의 커리어의 다음 단계를 물색하며 커리어 우먼으로서의 시간들을 쌓아가며 앞으로, 또 위로 전진하고 있었다. 


서로의 근황과 나의 임밍아웃으로 시작된 대화는 여느 때처럼 돈과 욕망, 인생의 목표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홍콩처럼 고소득자와 야망가들이 넘쳐나는 도시에서는 굉장히 당연한 수다의 귀결이다. 돈은 얼마나 있으면 충분한지, 인생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는 무엇인지, 어느 방향을 향해 얼마나 달려야 하는지. 오랜 토론 끝에 나온 결론은 사람은 각자 성격도 원하는 것도 다르듯, 각자에게 맞는 소유의 "규모", 소망, 그리고 추구해야 할 인생의 방향과 속도가 다르다는 점이었다. 


돈을 쓰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류의 사람이라면 (예를 들어 럭셔리한 여행이나 파인 다이닝, 명품 구입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그것들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할 것이며, 그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스트레스는 더 크더라도 소득이 더 큰 직업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쟁취하고 나서 허탈함만 몰려온다면, 소망하던 그 무언가는 사실은 내가 진짜 소망하던 바가 아니라 타인, 혹은 사회에 의해 주입된 피상적인 욕망일 가능성이 크며, 그런 피상적인 욕망만 쫒으면 하나를 쟁취할 시 계속 새로운 욕망으로 대체해야 하기에 끝이 없는 허탈함과 욕망의 반복 속에 살게 된다. 그러니 내가 이 인생에서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고자 한다면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가 필수일 것이다. 그 "소망"이라는 것은 특정한 성취, 소유, 이상적인 어떤 모습, 라이프 스타일 일수도 있으며 그 모든 것을 망라한 포괄적인 무엇일 수도 있겠다.


홍콩에서는 대부분이 전문직으로 과중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때문에 주변에 공황장애나 불안발작을 겪어봤거나 정기적으로 카운슬링이나 정신과 상담을 받는 사람들이 꽤 많은 편이다. 차로 따지자면 계속 빠른 속도로 달려서 엔진이 과열된 상태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다. 나의 남편도 그중 하나이고. 그리고 그런 삶을 계속 살다가 번아웃을 겪고 안식년을 다녀온 주변 사람들은, 안식년은 도움이 되었긴 하지만 자신 속의 무언가가 영구적으로 고장 난 느낌이라며, 계속해서 달릴 수는 있지만 결코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얼마나 더 벌어야 하고, 그를 위해 얼마나 더 희생할 것인가? 언제까지 이렇게 빨리 달릴 것인가? 더 가지면 더 가지고 싶어 지는 게 인간의 본능이고, 그 본능에 충실한 게 오늘날 극단으로 치달은 자본주의일 것이고 우리는 그 한복판, 홍콩에서 살아간다.


언젠가는 내 남편도 엑셀에서 발을 떼어야 할 순간이 올 것이다. 아직은 계속 달리고 싶어 하는 그를 위해서, 그가 엔진 고장으로 나가떨어지기 전에 발을 뗄 수 있도록 나는 그를 내 역량 안에서 정서적으로, 또 가능한 선에서 일적으로 서포트할 것이다. 또한 발을 뗀 후에도 같은 일상을 안정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도록 약간은 불편하지만 작은 지금의 삶의 모습을 유지할 것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삶의 크기를 줄일 수 있는 한, 우리는 언제든 떠날 수 있으니까. 떠나야 할 그 순간이 오면 아기 한 명 메고, 배낭 하나 메고 "홍콩아 고마웠어, 잘 있어!" 가벼운 인사만 남긴 채 더 답답하고 심심하겠지만 더 느리고 고요한 곳에서 우리의 작은 삶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을 테니까. 


작은 삶은 나에겐 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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