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2개월, 행사 1시간 30분. 이런 것이 행사 아니겠나.
스타트업의 가장 큰 장점을 꼽자면 새로운 시도를 다양하게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외부적인 활동이라면 어느 정도 체면은 차리겠지만,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사내컴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재미있을 것 같으니 해보자’는 말과 함께 바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것이 바로 스타트업의 매력 아니겠나.
다방은 보통 매달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사내행사를 연다. 단체 영화나 재테크 강의처럼 무난할 때도 있고, 여름 휴가 사진 공모전이나 복날 삼계탕 퀴즈대회처럼 시기에 맞는 행사를 할 때도 있다. 이런 다방에서 매년 한 번씩 꼭 하는 사내행사가 있는데 그건 바로 제자리마켓이다.
제자리마켓은 일종의 플리마켓인 셈인데 직원들이 자기 자리에서 물건을 판다고 해서 제자리마켓이다. 판매 물건은 뭐... 자기 마음이다. 집에서 놀고 있는 물건을 가져와서 사고팔자는 취지다 보니까 별의별 물건이 다 나온다. 소소한 필기구류, 다이어리부터 시작해서 옷, 신발, 레고 등등은 물론 명품 브랜드의 가방과 화장품 등이 나오기도 한다. 핸드폰에 있는 사진 인화를 하는 사람도 있고, 즉석에서 캐리커처를 그리면서 용돈 벌이를 하는 사람도 있더라.
올해 역시 제자리마켓을 언제 하냐는 직원들의 문의가 꾸준히 이어왔던 만큼 연말쯤 할 계획이었다. 그러던 중 셰리오크 특유의 깊은 향과 강하고 진득한 맛을 자랑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싱글 몰트 위스키 브랜드 맥캘란(보고 계십니까 관계자분들!)에서 기업들을 대상으로 위스키 클래스 또는 칵테일 시음회를 무료로 진행하는 행사가 있다는 소식을 건너건너 알게 됐다.
술을 주는데 공짜다! 직접 회사로 와서 말아준단다! 업무시간에 당당히 놀 수 있다!
이런 좋은 기회를 왜 마다하겠나. 당연히 바로 하겠다고 했다. 여기에 단순히 술만 먹기보단 조금 더 알찬 컨텐츠로 발전시키고 싶어서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제자리마켓을 붙이기로 했다. 칵테일 마시면서 제자리마켓을 구경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서로 대화를 이어가는 사내행사. 정말 이상적이지 않은가? 서로 어색한 사람들을 억지로 붙여다 놓고 하하호호 하다가 끝나는 구성이 아니다 보니 내부적으로도 기대감이 높았다. 되돌아보면 홍보팀에서도 평소보다 더 신나게 행사를 준비하지 않았나 싶다.
첫 번째, 이름 정하기
행사에 대한 이미지는 이름에서부터 시작한다. 특히나 이렇게 색다른 행사라면 말 그대로 힙-한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맥캘란과 함께 하는 다방 제자리마켓’이라던가 ‘칵테일 한마당 축제’와 같은 이름이라면 흥이 나겠나. 그래서 인맥을 활용해서 홍보∙광고∙마케팅에 몸담고 있는 여러 사람에게 행사 이름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다.
제자리술판, 술자리마켓, 살롱 드 다방, 다방술빛마켓 등등 여러 이름이 나왔지만 먼가 성에 차지 않았다. (물론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한테 부어이스키야라던가, 부어라 팔아라 같은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다가 모두가 한마음으로 찬성한 이름이 있었으니 바로 마켓꽐리다.
제자리마켓의 ‘마켓’과 꽐라(?)의 꽐(?)을 활용해서 같은 체계적인 이유보다는 그냥 재미있는 이름이라서 이렇게 정해졌다. 우리가 무슨 행사를 하는지 다 담겨있는 이름인 데다 한 번만 들어도 기억에 잘 남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다들 반응이 좋았고, 행사 이름을 수월하게 확정 지을 수 있었다.
두 번째, 세부 기획
사내행사지만 외부 업체와 함께 하는 구성인 만큼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 직원들 다 모아놓고 못난 모양새를 보여줄 순 없지 않나. 그래서 시간, 장소, 행사 내 구성, 타임테이블 등 전반적인 요소들에 대해 평소보다 더 꼼꼼하게 준비했다. 또한, 맥캘란 측과 꾸준히 업무 공유를 하며 서로가 맡아야 할 부분들을 나눴고, 이를 바탕으로 행사를 준비했다.
그 결과 라운지에서 맥캘란 칵테일이 말아지고, 대회의실-공용마켓, 소회의실-간식코너, 각자의 자리-제자리마켓이 열리는 구성이 탄생했다. 회사 모든 사람에게 넉넉하게 칵테일을 나눠주려다 보니 여유 공간이 많이 필요했다. 여기에다가 맥캘란 측에서 분위기를 살릴만한 장식을 가져오기로 하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알찬 구성이 되어버렸다.
세 번째, 행사 꾸미기
아무래도 판이 커져버린 행사인 만큼 분위기를 내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싶었다. 으리으리하게 꾸미지 않더라도 모든 직원이 미리 사내행사를 얘기하면서 기대감을 높이고, 그러면서 행사 당일에 즐겁게 보냈으면 했다. 그래서 나온 방안이 사무실 안에 붙일 포스터였다. 왔다 갔다 하면서 포스터를 보다 보면 행사에 대해 계속 인지하게 될 것 아닌가. 그래서 미리 분위기를 띄울 사전 포스터와 행사를 안내하는 메인 포스터를 준비하기로 정했고, 어쩌다 보니 고등학교 문과-대학교 국문과를 거쳐 글 쓰는 일만 하던 내가 포스터 제작에 돌입했다.
물론 본인은 포토샵을 할 줄 모르는 만큼 이 모든 것은 파워포인트와 그림판으로 해냈다. 이 포스터를 보고 이 세상 모든 문과가 힘을 냈으면 좋겠다. 시작하기 전에는 너무나 걱정하던 부분이었지만 막상 해보니 재미있어서 한 개씩 더 만들어버렸다. 곱게 뽑아서 사무실 곳곳에 붙이고 보니 뭔가 뿌듯하더라. 이 세상 모든 디자이너도 힘내면 좋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포스터 다음에는 전 직원이 볼 수 있는 구글 엑셀 시트를 하나 만들어서 본인이 팔 물건들을 미리 홍보할 수 있게 했다. 팔고자 하는 물건과 간단한 설명을 적고, 다른 사람들은 한 마디씩 남길 수 있는 페이지였다. 장난기 넘치는 사람들이 많은 회사다 보니 모두가 적극적으로 달려들었고, 그 페이지는 금방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지금 페이지를 다시 살펴보니.. 역시나 다들 제정신이 아니다.
네 번째, 즐기기
모든 준비는 끝났고 행사 당일이 되었다. 행사 시작 한 시간 전에 맥캘란 분들이 오셨는데, 전문가다 보니 야무지게 라운지를 뚝딱뚝딱 꾸미시더라. 평소에 잔잔한 음악이 흐르던 라운지에는 신나는 음악이 거침없이 틀어졌고, 업무 시간에 당당하게 술 먹고 놀 수 있다 보니 사람들 표정도 꽤 밝았다.
결과적으로 얘기해보자면 행사는 아주 잘 끝났다. 맥캘란 측에서 1인당 2잔 가까이 마실 수 있도록 넉넉하게 준비한 덕분에 모든 사람이 여유 있게 칵테일을 즐길 수 있었다. 제자리마켓 역시 왁자지껄하게 진행되었고, 서로가 만족스러운 거래가 꽤 이루어졌다. 마케팅팀에서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는 직원은 아이들 사진을 보고 야무진 캐리커처를 그려줬고, 저 멀리서는 화장품 경쟁이 치열해지다가 결국 사다리 타기로 한 명을 고르기도 했다. 행사 마치고 다 같이 청소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뒷정리도 무난하게 할 수 있었다.
다방에 입사한 이후 이런저런 사내행사를 준비해봤지만, 이번 행사가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외부 업체와 함께 준비한 행사다 보니 전반적으로 조금 더 신경 쓰기도 했고, 행사에 대한 사람들의 만족도가 직접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준비하는 일은 참 쉽지 않지만, 그만큼 느끼는 보람도 많다. 마켓꽐리를 준비하면서 배운 것도 많고, 새롭게 해본 것도 많아서 스스로도 성장한 기분이었다. 다음번에는 무슨 행사를 어떻게 진행하게 될까. 벌써 기대되고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