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시작 앞에서의 기록
평소 전시를 보고 글 쓰는 걸 좋아하던 나는 20대 중반 문화예술 기업의 홍보팀에서 인턴으로 일을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걸 다 할 수 있다니!' 합격 전화에 설레고 기뻐하던 것도 잠시, 출근 첫날 내가 팀장님에게서 들은 말은 “여기서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였다.
사회생활 N년 차인 지금은 '그렇다면 날 왜 뽑았나요?' 반항심이라도 들었겠지만, 그때의 나는 무겁고도 숨 막히는 분위기에 눈물을 흘렸다. 맘먹으면 다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조금은 뻔뻔하고 자신감 넘치던 사회초년생은 그렇게 점차 시들어갔다. 그런 에너지를 숨길 수 없었는지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진행된 임원진과의 면접에서 나는 "생기가 없다."라는 코멘트와 함께 인턴 연장이란 결과를 받았다.
'생기가 없다니! 이렇게 만든 게 누군데.' 나는 생애 처음 들어보는 말에 충격을 받았고, 하루하루 쌓여가는 무력감에 짓눌려 결국 퇴사를 했다. 이로 인해 비전공자가 문화예술 분야에서 일한다는 건 성벽이 높은 성을 우러러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필 회사도 진짜 언덕 위에 있었다.)
이후 나는 국제회의 PM으로 또 다른 일을 했다. 고등학생 때는 신문에 소개된 이 직업이 멋있어 보여 스크랩까지 해두었는데, 실제로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마라탕을 먹을 만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시간을 보냈다. 행사가 임박해서는 새벽 2-3시에 퇴근하기 일쑤였고, 하루에도 50통이 넘는 통화 목록이 찍혀 있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서 내가 기획한 행사가 실현되는 순간에는 성취감을 느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이 성취감마저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고, 나는 변화의 흐름을 따라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로 이직했다. 처음으로 '직장에서도 안전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을 만큼 신뢰할 수 있는 상사와 동료들과 함께 했다. 하지만 사람들 틈에 껴있는 9호선 급행의 출퇴근길은 너무도 힘들었다. 가끔은 숨을 쉬기 위해 이전 정거장에서 내리기도 했고, 집에 돌아오면 지쳐 쓰러지곤 했다. 그러던 중, 회사에도 예기지 못한 변화와 긴장이 찾아왔다.
본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길, 기차 밖으로 높은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면 '하,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그렇다고 다른 지역에서 살 방법이 있나?' 나는 늘 그렇게 체념했다. 어느 순간 서울은 긴장 속에 버티는 삶이 되었다. 서울에서 표류하던 나는 문득 10년 뒤에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내 모습을 마주했다. 정신이 번쩍 들면서 지금이라도 서울 밖의 삶을 도전해 봐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고정적인 월급과 익숙한 회사, 일상은 더 이상 나에게 안정이 아니었다. 당시 나에겐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감각이 더 큰 안정감으로 다가올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2024년 11월, 퇴사를 하고 전라남도 강진으로 향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퇴사를 했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삶을 다시 한번 그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숨 돌릴 생각으로 방문했던 강진에서의 한 달 살기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청소년 전시기획 워크숍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2025년에는 강진과 서울을 오가며 문화예술 워크숍을 기획하고, 운영하며 관련된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제안을 받았을 때 별다른 고민 없이 '좋아요!'라고 대답했는데, 1년 동안 내가 원하던 삶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술을 매개로 나다움을 함께 이야기하고, 그 장면을 콘텐츠로 담아내는 일이 의미 있고 재밌었다. 그 사이 코칭 자격증도 취득했는데, 대화를 통해서 고객의 고유함을 발견해 가는 순간, 관점의 변화를 통해 에너지를 얻는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나 또한 마음이 충만해졌다. 하지만 새로운 지역으로 터전을 옮기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쓰이는 일이었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서울이란 도시에 더 큰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그 사이 결혼도 하고, 수많은 변화들을 지나오는 동안 1년의 실험이 어느새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프리랜서로 일할지 또는 서울에 있는 조직으로 돌아갈지, 서울과 강진을 계속 오갈 수 있을지 또다시 수많은 선택의 기로 앞에 놓였다. 1년이 지나면 무언가 답을 얻을 수 있었는데, 또다시 고민하는 모습이라니! 당혹스럽고 허무하기도 했다.
프리랜서로 나의 일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막막함, 두려움 앞에 취업을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 돌아가더라도 '내 일'을 할 수 있는 기반만큼은 만들어두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마음을 정했다. 프리랜서로 한번 도전해 보자고. 그런데 그 결심을 하고 며칠 뒤, 한해를 함께한 동료들과 지난 일 년을 회고하던 중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나는 왜 매번 시작만 하는 것 같지?" 왠지 모를 울분과 함께 눈물이 났다.
그동안 나는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도전하고, 경험하고 성찰하며 나의 세계를 확장해 왔다고 믿었는데, 이 모든 시간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내가 찍어온 점들을 돌아보니 도무지 연결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또다시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는 사실 앞에 지나온 경험들이 모두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최근 단단님과의 미팅에서 앞으로 나아갈 힌트를 얻었다. 프리랜서로서의 브랜딩을 새로운 계정으로 시작해야 할지, 기존 계정을 활용하는 게 좋을지 묻는 나의 질문에 단단님은 "매번 0부터 다시 시작할 순 없어요! 기존 계정에 9개의 게시물만 쌓으면, 방향은 달라질 수 있어요."라고 했다.
이전까지 나에게 '성장'은 확장하는 모습이었는데, 이제는 벽돌을 하나씩 쌓아가는 수직적인 모습이 그려졌다. 직감적으로 이제는 다른 챕터에 들어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에 뿌려놓은 씨앗들이 아직 열매를 맺지는 않았지만, 그것들을 가꾸어 가야 할 때라는 것을. 내 이야기를, 나의 일을 하나씩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 다채로운 풍경이 펼쳐질 것이라는 믿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