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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비 May 13. 2016

5월의 섬 여행.

제주 속의 작은 섬, 가파도

가파도 바당 미끄럼틀.


 나는 가파도를 참 좋아한다. 섬 속의 섬은 그냥 섬이 갖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어쩌다 보면 완벽한 고립의 상태에 처할 수 있는 무한의 가능성은 참 떨쳐버릴 수 없는 묘한 매력이 된다. 올해도 또다시 가파도를 찾았다. 제주에 내려온 후, 거의 매년 가파도에 갔더랬다. 처음에 간 것은 그 누구도 배를 타고 갈 것 같지 않은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한 겨울이었다. 섬은 거친 겨울바람이 몰고 오는 성난 파도에 먹혀버릴 듯이 얕고 얕았다. 이 작고 얕은 섬에 섬사람들은 어찌 그 오랜 세월들을 버텨왔을까.. 생각하며 바람에 맞서 걸었다. 실제로 섬은 바다 위에 얇은 종잇장을 한 장 얹어놓은 듯한 모양이다.


 그 후로도 여러 번 섬을 찾았다. 특히, 봄의 가파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이다. 섬을 가득 채운 청보리밭이 그 주인공이다. 푸릇푸릇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청보리들이 섬을 가득 채우고, 불어오는 봄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린다. 흔들리며, 자기들끼리 부딪히며 내는 소리 또한 아름다움이다. 청보리 가득 피는 봄이 되면 섬을 찾는 사람들이 몰려온다. 알록달록 색색의 등산복을 입은 등산객을 가장한 관광객들도 끊임없이 몰려온다. 하루에 몇 편 되지 않는 배편도 이 기간 동안에는 '청보리 축제'라는 이름표를 달고 여러 편이 증편된다. 때문에 다른 계절에 느낄 수 있는 여유는 조금 부족하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올해는 '청보리 축제' 기간이 지난 후 조금 늦은 봄. 섬을 다시 찾았다.


 

바닷빛 미끄럼틀을 타고 싶어.



가자! 바다로! 가파도 바다 미끄럼틀.



이대로 쭈욱 미끄러져 내려가 바다에 풍덩 빠지고픈 유혹.



가파도 바다 미끄럼틀에 앉아.


 날씨는 무슨 소설책 속에서나 읽을 법한 거짓말처럼 쨍하고 맑고 아름다운 날씨였다. 단언컨대 내가 제주에 온 후, 아니 내가 살면서 만나 본 중 가장 아름다운 날씨였다. 20여분 배를 타고 들어간 섬에서는 제주 본 섬에 있는 한라산, 산방산, 송악산, 단산, 모슬봉.. 여러 오름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거짓말... 정말 이건 너무 멋지잖아..' 연신 중얼거렸다.


 섬에는 바다로 가는 커다란 미끄럼틀이 있었다. 바닷빛의 커다란 미끄럼틀은 분명히 바다로 향해있었다. 나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한 걸음에 미끄럼틀로 달려갔다. 커다란 미끄럼틀에 앉아 나는 이대로 미끄럼틀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려 바다에 풍덩-! 하고 빠지고픈 유혹에 시달렸다. 하지만 이내 곧 나는 겁이 났고, 옷이 젖은 채로 돌아다닐 용기도 없었다. 그 대신 나는 여름이면 이 미끄럼틀을 타고 바다로 풍덩 들어가 꺄르륵- 웃으며 신나게 놀 섬 아이들을 상상했다. 그러니 이내 기분이 좋아졌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 자연 놀이터인가!



묘한 빛깔의 해초들.



가파도의 가파호.



작은 섬은 바다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태왁.


 작은 섬에서는 어딜 가나 바다 냄새가 난다. 내가 살고 있는 제주는 꽤나 크기가 커서 중산간 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바다 냄새가 별로 나지 않는다. 오히려 숲의 냄새가 짙게 나고, 나무의 냄새가 나고, 산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작고 얕은 섬, 가파도에서는 아무리 바다에서 멀리 간다고 섬의 가운데로 향해도 어딜 가나 바다가 있다. 바다 냄새가 나고, 그물에 걸려 말라가고 있는 해초들이 있고, 집집마다 벽에는 해녀 할망들이 물질 나갈 때 쓰는 태왁이며, 수경 같은 것들이 걸려있다.




거짓말 같이 맑은 5월의 가파도.


 또 길을 따라 조금만 걷다 보면, 파랗게 파랗게 끝이 없는 바다가 나타난다. 작은 섬은 그냥 바다인 것 같다. 바다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했다. 누릇누릇 익어가는 청보리밭의 저 너머로 또다시 파란 바다가 보였다. 지난번에 청보리 푸릇하던 날에 왔을 적에는 자전거 한 대를 빌려서 타고 섬을 돌았었다. 생각보다 섬이 많이 작았고, 생각보다 자전거는 내 느린 걸음보다 많이 빨랐다. 돌아가는 배 시간 까지 시간은 많이 넉넉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섬을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르겠다. 자전거는 발걸음 보다 많이 빨라서 섬을 가로지르면 금방 또 바다가 나오고, 방향을 바꿔 페달을 몇 번 돌리면 또 바다였다.






섬에 가득 피어있던 꽃.



5월 가파도의 하늘.





가파 초등학교.


 이 작은 섬의 가운데 즈음에는 작은 초등학교가 하나 있다. 섬의 이름을 그대로 닮아 '가파 초등학교'. 평일 낮이어서 아직은 수업 중인 학교 운동장에 조심스레 들어갔다. 학교 건물 어딘가 한쪽에서 시끌벅적 아이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와르르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이지 않지만 이내 또 두 볼이 발갛게 상기된 채 이것저것 질문하고, 웃고 떠드는 섬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 아이들이 바다 미끄럼틀의 주인들이겠구나.. 생각했다. 더운 여름날, 학교를 마치고 와르르 바다로 달려가 어떤 아이는 바다로 내달리고, 어떤 아이는 다이빙을 하고, 어떤 아이는 바다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겠지.. 바다로! 생각만 해도 사랑스럽다.




누릇누릇 익어가는 청보리밭에서.



부드럽고, 따뜻하고, 우아하고, 근사한 청보리밭.



5월의 가파도에서 남편과.


 청보리는 누릇누릇 익어가고 있었다. 푸릇푸릇한 청보리는 예쁘고, 청초하다면 누릇누릇 익어가는 청보리는 부드럽고, 따뜻하고, 우아하고, 근사하다. 각자 다른 매력이 있다. 그래서 언제고 가면 좋은 곳이다.





 짧은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내 얼굴은 온통 불긋불긋 물들어 있었고, 뜨끈하게 열이 올라있었다. 이게 맑은 날의 뜨거웠던 태양 때문인지, 아니면 섬을 걷는 내내 기분 좋게 들떠있던 내 마음 때문인지 여간 분간이 가지 않았다.






제주 모슬포 낮고, 자그마한 옛집. 

활엽수 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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