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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비 May 24. 2016

흙화덕 (Earthen Oven) 만들기

오래된 집에 머물다 |맨발에 흙이 닿는 느낌

느리지만 나태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단조롭지 않고, 조용하지만 적막하지 않고, 재미있지만 시끄럽지 않고, 철학적이지만 어렵지 않은 삶을 위한 공간 만들기







(번외 편 : 2015.11.28 흙화덕 만들기)





  흙화덕 (Earthen Oven) 만들기의 시작은 이러했다. J는 늘 무언가를 만드는 것 (이왕이면 자연재료로)에 흥미가 있다. 하나에 빠지면 그것과 관련된 것만 주구장창 찾아보고, 하루 종일 관련 영상만 틀어놓는다. 집 공사를 마치고 여유가 생긴 J는 흙화덕에 빠져버렸다. 사실, 그는 공사를 할 때부터 마당에 반드시 화덕을 만들겠다는 의견을 나에게 피력하곤 했다. J는 몇 날 며칠을 흙화덕에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고, 공부하고, 워크숍 영상들을 하루 종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 J를 보고 있자니, 그래... 내 텃밭의 한 부분을 그에게 내어주어야겠다 싶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화덕에게 말이다. 그렇게 흙화덕을 만들기로 하고 나니, 여럿이서 모여 함께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작은 워크숍(workshop)을 기획했다. 





 흙화덕(Earthen Oven)을 만들기 위해서는 바닥 기초가 우선되어야 하는데, 기초를 하고 굳히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워크숍 날짜가 다가오기 전에 J와 먼저 기초 준비를 해두었다. 우리는 가장 기초적인 형태의 배기구 없는 작은 흙화덕을 만들기로 했고, 화덕의 높이도 낮게 앉아서 할 수 있도록 정했다. 공터에 굴러다니던 현무암 돌덩어리들을 주워와 기초를 쌓고 높이를 맞췄다. 그 위에 단열을 위해 송이석을 깔아준다. 그리고 그 위에는 미장을 하고, 현무암 판석을 화덕의 바닥으로 사용한다. 












 흙화덕(Earthen Oven) 만들기 Workshop의 날이 다가왔다. J는 사람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화덕 만드는 과정을 쉽게 그림으로 그려 벽에 붙여놓았다.


 1. 기초 만들기 : 현무암으로 높이를 맞추고, 그 위에 자갈과 송이석으로 단열층을 만들고, 시멘트로 미장을 한다.

 2. 판석 (내화벽돌) 올리기 : 화덕 안의 열을 견딜 수 있는 현무암 판석이나 내화벽돌로 화덕의 바닥을 만든다.

 3. 모래 모형 만들기 : 흙으로 화덕을 만들기 위해서는 안의 둥근 모양을 잡아주기 위해 젖은 모래로 모형을 만들고, 젖은 종이로 덮어준다. (흙과 모래가 붙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4. 흙 반죽 / 흙 쌓기 / 방수 :  흙 반죽은 흙과 모래를 4:6의 비율로 하고, 물과 건초(단열, 구조 보강재)를 넣어 반죽한다. 1단으로 흙과 모래 반죽을 쌓고, 그 위에 2단으로 흙, 모래, 톱밥, 짚 반죽을 쌓는다. 그리고 흙이 완전히 마른 후 방수를 한다. 









 11월 말, 꽤 추운 날씨의 연속이었지만 다행히도 이 날은 해가 쨍쨍 났고, 맨발로 흙을 밟아 반죽하는 데에 그리 힘들지는 않은 날씨였다. 사람들이 모였고 J의 설명이 끝나고, 우리는 열심히 흙반죽을 시작했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양말을 벗어던지고 흙 위에 올라섰다. 조금 발이 시리긴 해도 모두가 즐거워했다. 노래를 틀어놓고, 춤추듯이 빙글빙글 돌면서.. 맨발로 이렇게 흙을 밟아 보는 것도 어렸을 때 이후로 참 오랜만이라 했고, 흙이 발에 닿는 느낌이 참 좋다고도 말했다. 









 이런 식으로 젖은 모래를 쌓아 화덕 안쪽의 둥근 모양을 잡아준다. 엄마를 따라온 꼬맹이 친구도 흙과 모래를 만지는 일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손과 발에 진흙을 치덕치덕 묻히고, 어릴 적 엄마에게 야단맞으면서도 신나게 놀았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는 왜 흙을 만질 일이 없어지는 걸까. 어른들이 이렇게 마음 편하게 작정하고 흙을 만지고 노는 날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우리는 시골에 살고, 텃밭을 가꾸고, 집을 고치며 흙을 만지는 일이 많지만.. 도시에 흙 없이 살아가는 많은 어른들을 위해서- 









 모래 모형 위에 젖은 신문지를 덮고, 그 위에 진흙 반죽을 쌓아 올리면 된다. 1단을 쌓고, 1단의 표면을 포크나 빗 같은 것으로 긁어 거칠게 만든 후에 2단을 쌓는다. (1단과 2단의 흙이 서로 잘 결합되게 하기 위함이다.)



 2단까지 모두 쌓은 후, 흙이 천천히 마르기를 며칠 기다린다. 그리고 어느 정도 흙이 굳으면 안쪽에 모래를 조금씩 파내는 것이다. 그리고 안쪽에서 조그마한 불을 조금씩 때우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화덕의 안쪽을 조금씩 말리는 것이다. 



J가 나무 쪼가리를 붙여 만든 화덕의 문. 



흙화덕 만들기 워크샵에 함께한 사람들. 









 시간이 흘러 흙이 완전히 말라 화덕이 완성되었다. J와 둘이서 여러 번 피자를 구워보았는데, 시행착오가 많았다. 처음 몇 번은 피자의 도우가 다 익지도 않아 밀가루 반죽 맛이 나는 피자를 먹어야 했고, 다음 몇 번은 새까맣게 탄 피자를 먹어야 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피자를 잘 굽게 된 J는 함께 화덕을 만들었던 사람들과 이웃, 손님을 초대해서 피자 파티를 열었다. 고구마 피자, 고르곤졸라 피자, 브로콜리 피자 등등 여러 피자를 구워서 맛있게 먹었다. (우리가 채식을 시작하기 이전의 일. 조만간 맛있는 채식 피자를 만들어 볼 계획이 있다!) 통밀 반죽을 해서 꽤 그럴싸한 통밀빵도 만들어 먹었다. 


 직접 만든 화덕에 피자를 구워 먹다니.. 다들 신기해했고, 생각보다 맛이 좋은 피자에 놀라 했다. 하하. 

다만, 직접 피자를 구워보니. 화덕이 너무 작아서 한 번에 자그만 피자를 한 판 씩 밖에 구울 수가 없다. 그래서 J는 한 시간 내내 화덕 앞에 앉아 피자를 구워야 했다. 다음번에는 좀 더 크게 화덕을 만들자고 얘기했다. 










 사실, 흙화덕은 외부에 노출된 상태로 만들어 놓기에는 참 취약하다. 비나 눈이 오면 흙이 다 젖어 흘러내려가 흔적도 남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보통 지붕을 만드는데, 바람이 많은 제주에서는 지붕을 만들어도 아마 무용지물일 것이다. 그래서 비가 올 때마다 넓은 포대로 덮어놓고는 했는데, 아무래도 위에 방수코팅을 해주는 게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백시멘트로 흙화덕의 위를 덮어주었다. (흙으로 된 모습이 아무래도 가장 아름답고 좋지만..) 그 위를 파랗게 칠해주고, J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봄이 되었고, 텃밭에 심은 채소들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날이 풀렸으니, 이제 맛있는 채식피자를 한 번 구워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흙화덕 (Earthen Oven) 만들기 워크숍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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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남서쪽 조용한 마을 모슬포에 작고, 낮은 오래된 집. '게스트하우스 활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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