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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보일 Jul 29. 2023

선생님이 울적해서 미안해

가르칠 권리와 배울 권리

  "선생님, 오늘은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시네요."


  내 기분을 매일 살피는 학생이 물었다.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 많았다. 전 학교와의 비교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했다. 전에 있던 학교는 손이 가지 않는 아이들이 많았다. 소위 알아서 잘하는 아이들이라고 불렀다. 학교가 끝나면 노란 차에 납치당하는 아이들이 가련하면서도 나는 그 덕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교과시간에는 교과시간에 배우지 못하는 것들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내가 가르치고 싶은 것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 학교는 달랐다. 손이 가는 아이들만 있었다. 소위 별표가 붙는 아이들이 한 학급 전체를 이루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정이 불안정하거나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폭력적이거나 학력이 매우 떨어지거나.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려 시도 때도 없이 포기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전에는 내 사랑을 두세 명의 아이들에게 나누어주면 되었거늘 올해는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나누어줘야 했다.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어떤 직업을 계속함에 있어서 사명감은 어쩔 수 없는 필수요소 같다는 말. 동료이자 남자친구인 교사도 그랬다. 우리는 모르는 걸 가르쳐주고, 모자란 걸 채워주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나는 내 온 힘을 이끌어냈다. 5일 중에 5일을 방과 후에 수학과 영어를 가르쳤다. 정규 수업시간에 배웠던 것을 더듬거리는 아이들을 보며 얼마나 기특했는지. 어떤 일에든 입을 꾹 다물고 아무것도 하지 않던 아이가 편지 쓰기 시간에 '조금만 써도 되냐'는 쪽지를 줬을 때 얼마나 찡했는지. 줄넘기 대회에서 꼴등을 해도 괜찮다며 다독이는 아이들을 보며 얼마나 행복했는지. 나는 그것이 아이들과 나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온 힘을 다해도 닿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카톡으로 서로가 서로를 따돌리고, 서로를 비난하며 다툰 두 학생 중 한 학생이 우리 반이었다. 옆반 부모님은 우리 반 아이의 모든 어투와 행동을 비난하며 옆반 선생님께 매일 전화했다. 옆반 선생님은 내게 토로했다. 너무 힘들다며. 우리 반 아이에게도 잘못이 있는 것 같으니 전화해서 확인을 해보고 내일 화해를 시키자고 말이다. 아이의 전화번호가 없으니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곧이어 아이를 바꿔주셨다.


"○○아, 너 카톡방에서 이렇게 한 사실이 있니?"

"잘 모르겠어요."

"음, 잘 생각해 보렴. 카톡방에서는 이미 나왔어?"

"네."

"그래서 이렇게 한 적이 있어, 없어?"

"있는 것 같아요."


  보통 아이들의 '있는 것 같다, 한 것 같다'라는 말은 '했지만 선생님께, 부모님께 말하기 부끄러울 만큼 잘못한 걸 알고 있어요'라는 뜻이다. 모든 걸 다 배운 것 같은 어른들도 아는 걸 실수하는 마당에, 모든 걸 배우는 과정에 있는 아이들은 오죽 실수를 하겠는가. 다독여줘야 한다. 실수가 아니라면 옳지 않음을, 먼 미래의 너에게 미안한 일임을 가르치는 것 또한 나의 역할이다. 


  옆반 선생님과 이야기한 끝에 내일 어떻게 지도할지 의논하는 중이었다. 그때 다시 우리 반 아이의 부모님께 전화가 왔다. 다소 격앙된 목소리셨다.


  "제가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요. 우리 아이가 지금 울고 있어요. 선생님의 말투가 물어보는 것 같았냐, 다그치는 것 같았냐고 물어봤더니 아이는 자기를 가르쳐주려고 그러는 거라고 대답하더라고요. 하... 제가 가만히 있으니까 자꾸 우리 아이가 잘못한 것처럼 되는 것 같네요."


  나는 울적해졌다. 쪼그라들었다. 아이를 다독여주고 싶지도, 가르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정말 다그쳤었나, 아이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몇 분 전의 나를 끊임없이 검열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을 열심히 걸어온 내가 한심했다. 세금 도둑 취급받으면서,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 소리를 들으면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들도 사랑하면서, 온몸이 아파도 아이들을 생각하며 출근하면서도 교사를 하는 내가 싫었다. 이런 마음으로 교사를 하는 나는 내게도, 아이들에게도 잘못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온갖 잘못들이 나오니 눈물도 나왔다. 엎드려 울었다. 




  "선생님, 오늘도 기운 없어 보이시네요."


  해맑은 학생에게 모든 고민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


  "선생님 집에서 엄마한테 혼나서 그래. 너희들 때문 아니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나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그 아이와 옆반 아이를 화해시켰다. 그리고 우리 반의 아이를 따로 불러 말했다. 이번 일로 상했을 네 마음을 이해하며, 어제 선생님의 말투가 무서웠다면 그것조차 미안하다고 안아주었다. 아이는 눈물을 닦으며 교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내게 편지를 건넸다. 늘 자신을 혼내는 선생님은 있었지만, 자신을 안아준 선생님은 없었다고 한다. 나는 너덜너덜해진 마음에 그 편지를 담는 것이 맞는지 생각했다. 너를 혼내는 선생님도 너를 사랑했을 텐데. 어쩌면 나는 지금 너를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마이크를 들었다.


  "선생님이 울적해서 미안해. 너희들 때문은 아니야. 그렇지만 너희 질문에 힘 없이 대답할 수도 있어. 너희 장난을 받아주지 못할 수도 있고. 이해해 줄 수 있을까?"


  그 아이를 포함한 우리 반 아이들은 힘차게 '네'라고 대답했다. 준비한 모든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은 하나둘 떠나며 내게 말한다.


  "선생님, 내일은 힘내서 밝은 모습으로 만나요!"

  "선생님, 아프지 마세요!"


가르치게, 배울 수 있게 해 주세요




  저는 제 번호를 학부모님들에게 공개하지 않은지 꽤 되었습니다. 새벽에 술에 취해 쌍욕을 하던 아버님, 알림장에 쓰인 준비물을 물어보려 퇴근 후 전화주시던 어머님, 밤 11시가 늦은 시간이냐며 저를 너무하다고 하셨던 부모님들 덕분입니다. 전화번호를 공개하지 않는 것에 서운해하시는 부모님들 덕에 저는 더더욱 다짐합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며, 그러려면 저를 먼저 지켜야 한다는 것을요. 


  제 혼자만의 일이 아닙니다. 옆반 선생님도, 친구도, 남자친구도 모두 한 해에 한두 번은 겪고 있습니다. 부디 가르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아이들이 배울 수 있도록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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